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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강유정의 ‘영화에 수작 걸기’

동유럽 하층 ‘마더’의 처절한 싸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언노운 우먼’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동유럽 하층 ‘마더’의 처절한 싸움

동유럽 하층 ‘마더’의 처절한 싸움

토르나토레 감독은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우며 입양된 자신의 아이를 찾아나선 한 엄마의 이야기를 스릴러로 그려낸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에는 일종의 문법이 있다. 그 문법은 바로 시간의 흐름이다. 대표작 ‘시네마 천국’은 아동기에서부터 장년기까지 40여 년의 시간을 스크린에 담는다.

또 그의 영화에는 낭만적 회고와 쓸쓸함이 있다. 사라진 사람과 장소에 대한 향수가 ‘시네마 천국’ 곳곳에 스며 있다면 ‘말레나’에는 전쟁 중에 훼손될 수밖에 없었던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기억이 자리한다. 달콤하지만 씁쓸한 시간의 흔적, 토르나토레 감독은 이 흔적을 그려내는 데 일품이다.

영화 ‘언노운 우먼’은 토르나토레 감독의 특징과 새로운 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단 이 작품은 스릴러라는 점에서 기존의 토르나토레 영화와 구분된다. 낭만적 로맨스와 추억담을 주로 그린 감독에게 스릴러는 완전히 다른 영화 언어를 주문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언노운 우먼’이 긴장을 창출하는 방식은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여자가 속옷 차림으로 서 있다. 지명당한 여자는 속옷마저 벗고 맨몸으로 나선다.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들은 값을 매기듯이 그녀를 앞뒤로 훑어본다. 그리고 이야기는 갑자기 현재,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금발에서 갈색 머리로 달라진 여자는 지금 누군가를 수소문하는 듯싶다.

영화는 곳곳에 과거의 이야기를 단서처럼 묻어두고 여자의 현재 삶을 추적한다. 이레나라는 여자는 아다처라는 사람의 집 주위를 맴돈다. 바로 건너편에 아파트를 얻어 그 집안사람의 행동을 낱낱이 관찰하려고 한다. 심지어 그녀는 아다처 집의 가사도우미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외국인인 그녀에게 집 안에서의 일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이레나는 아다처 집의 유모를 다치게 해 그 빈자리를 채운다. 그러니까 아다처 집에 들어가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을 기세인 것이다. 호기심은 여기서 생긴다. 이레나는 왜 그 집에 들어가려 하는 것일까? 왜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이레나의 추적은 떼아라는 어린 여자아이에 대한 것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이제 비밀은 이레나와 떼아의 관계로 좁혀진다. 순간순간 백일몽처럼 끼어드는 기억들은 이레나가 절실히 찾고 있는 무엇이 그 참혹한 기억과 연관된 것임을 암시한다. 떼아는 이레나가 언젠가 낳았지만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는 아이일 수 있다는 추측도 보태진다.

악덕 포주에게 시달리는 매춘부의 이야기로 압축될 만한 과거사에는, 현재 유럽의 고민 한 가지가 더 포함돼 있다. 그것은 바로 동유럽의 여성들이 매춘부나 유모 같은 직업으로 서유럽에 틈입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언노운 우먼’은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서유럽에 입양될 아이를 낳아주는, 출산 기계로 살아가는 동유럽 하층계급 여성을 보여준다.

제목이 ‘언노운 우먼’이지만 사실 그 여자는 동유럽의 ‘엄마’를 대표한다. 봉준호의 ‘마더’가 자식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탐정으로 등장한 엄마의 스릴러였듯 ‘언노운 우먼’에서도 엄마가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우며 자신의 아이를 찾아 나선다. 무엇인가 세상이 어긋나 있다고 판단될 때, 엄마는 목숨을 걸고 그것을 교정한다. 이레나의 무참한 과거가 순결한 현재로 표백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녀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언노운 우먼’의 이야기는 르포나 다큐멘터리에 어울릴 법한 스토리다. 그런데 토르나토레 감독은 이 이야기를 스릴러라는 다른 방식으로 전달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토르나토레 스타일의 감각이다.

감독은 이레나의 참혹한 과거에도 ‘딸기’로 연상되는 달콤한 사랑의 추억을 선사하고, 갑갑한 미래의 시간에 예쁘게 성장한 떼아의 그림을 놓아둔다. 감독은 이 참혹한 인생 가운데에도 달콤한 시간을 부여해 자기만의 낭만적 공간을 완성한다. 성장한 떼아가 이레나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 관객은 용서와 화해의 낭만적 공간을 만난다.



주간동아 2009.07.14 694호 (p82~82)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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