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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나의 미실은 모든 행복을 꿈꿨던 여자”

역사소설 ‘미실’ 작가 김별아 씨 “8색조 욕망 추구 … 드라마 속 미실과 달라”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나의 미실은 모든 행복을 꿈꿨던 여자”

“나의 미실은 모든 행복을 꿈꿨던 여자”

소설 ‘미실’의 작가 김별아 씨는 “본질적 여성 그 자체인 미실, 성녀이면서 요부이고 어머니이면서 정부인 미실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2005년 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역사소설 ‘미실’은 ‘화랑세기’에 단 몇 줄로 묘사된 신라 여인 미실을 처음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신라 왕 3대를 ‘성’으로 모시고 수많은 남성을 애인으로 거느린 미실의 화려한 ‘남성 편력’이 주는 흥미와 파격적인 성애 묘사 등으로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최근 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를 끌고 톱스타 고현정이 미실 역을 맡으면서 소설 ‘미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교보문고와 인터파크 등의 판매 순위에서 10위 안에 오르며 4년 만에 다시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7월1일 오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소설 ‘미실’의 작가 김별아(40) 씨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 미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을 환영한다”면서도 “나의 미실과 드라마 속 미실은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를 끌면서 소설 ‘미실’도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제 책이 다시 많이 팔린다고 하니 기분이야 좋죠.(웃음) 그런데 제가 처음 ‘미실’을 발표했던 2005년과 지금의 2009년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2005년 당시엔 여러 남성을 거느리고 성을 통해 권력을 좌지우지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미실의 캐릭터만으로도 사회에 충격을 던졌죠. 호평도 많았지만, 혹평도 만만치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미실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관대해진 것 같아요.”



‘선덕여왕’ 속 미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또 미실로 분한 탤런트 고현정은 본인이 그렸던 미실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고 보나요.

“드라마 속 미실은 권력욕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악녀’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인 여성이에요. 하지만 시청자의 주목을 끌기 위해 선악구도를 강조해야 하는 드라마의 장르적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미실의 ‘권력욕’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또 기존 역사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와 차별되지 않아 다소 진부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고현정 씨의 경우 솔직히 제가 이 작품을 쓸 때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인물이에요.(웃음) 저는 탤런트 수애 씨가 미실의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고 봤어요. 청순하면서도 요염하고, 그러면서 반항적인 느낌이 드는 자연 미인이잖아요. 물론 고현정 씨도 그런 이미지와 잘 맞는 부분이 있어요.”

그렇다면 김별아의 미실은 어떤 인물인가요.

“저의 미실은 본질적인 여성 그 자체예요. 즉 성녀이면서 요부이고, 어머니이면서 정부(情婦)죠. 그동안 문학에 등장했던 여성들은 성녀 아니면 창녀로 구분됐지만, 저는 모든 여성이 이 두 가지 측면을 다 갖고 있다고 봐요. 모성에 대한 욕망도 있지만, 성적 매력에 대한 갈망도 있고, 사회적 성공을 꿈꾸면서도 한 남성에게 완벽한 사랑도 받고 싶어하죠.

저는 미실의 권력욕 역시 단지 왕후가 되기 위해 발현된 것은 아니라고 봐요. 화랑 사다함과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자신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은 후 미실은 ‘내 사랑을 지키기 위해’ 권력과 정치에 개입하죠. 이런 모든 욕구에 충실한 여성을 그리고 싶었고, 그 여성이 바로 저의 미실이에요.”

소설 ‘미실’은 신라 성덕왕 때 김대문이 썼다는 ‘화랑세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 32명의 전기를 싣고 있는 ‘화랑세기’는 근친혼, 통정, 사통, 색공(色供·권력자에게 자신의 아내를 바치는 일종의 성상납) 등 성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이라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바로 이 ‘화랑세기’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여성이 미실. 하지만 몇 줄로만 묘사된 미실에게 김씨는 숨을 불어넣고 살을 붙였다.

그는 “역사 속에서 소외됐던 약자들, 특히 권력층의 애첩이나 나라를 팔아먹는 요부로만 묘사된 여성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실’ 이후의 작품인 ‘영영이별 영이별’에서는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의 생애를 다뤘고, ‘논개’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왜장을 끌어안고 강에 떨어져 우국충정의 대명사가 된 관기 논개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아름답게 써내려갔다. 최근 발표한 신작 ‘열애’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였던 박열(1902~74)과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1903~26)의 비극적 사랑을 그렸다.

신작 ‘열애’를 포함해 그동안의 작품들을 보면 역사물을 다루면서도, 역사적 상황과 배경보다는 그 속에 있는 인물의 삶과 사랑에 더 주목하는 것 같아요.

“태평양 전쟁에 대한 작품을 쓰려고 자료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무정부주의자들에게 관심이 쏠렸어요. 당시 그들은 민족주의자나 사회주의자 등 하나의 이데올로기로만 정의되기엔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었죠. 쉽게 말해 당시 그들은 최첨단 멋쟁이였고, 자유연애를 즐겼어요. 그만큼 이들에 대한 비화도 엄청 많았죠.

그런데 다양한 이야기 속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어요. 바로 ‘아모르파티(amor fati)’, 즉 운명에 대한 치명적인 사랑이에요. ‘열애’의 박열과 후미코 역시 모국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넘어 자기 운명을 끝까지 사랑한 사람들이에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은 인간의 본능이자 문학의 변하지 않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역사소설 속에서도 여성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금까지의 역사소설은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제 여성 작가들도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담아 역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태평양 전쟁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역사 속에서 소외된 여성과 약자의 삶을 치밀하게 다뤄볼 예정이에요.

이후엔 ‘조선왕조실록’에 몇 줄로만 묘사된 당대의 문제 여성 3인의 삶을 그리고자 해요. 3명 모두 국가 권력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죠. 생각해보면 조선시대에도 성질 더럽고 날라리며 바람둥이인 여성들이 있었을 거예요. 물론 남성들의 시각에 의해 문제아로만 다뤄졌겠지만. 사실 남성들은 그런 여성을 좋아하면서 말이죠.”

중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한 김씨는 아이가 학교에 가면 글쓰기 작업을 시작하고,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작업을 멈춘 뒤 엄마로서의 본분에 충실한다고 한다. 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크루아상을 구워주고, 동네 아줌마들과 맥주 한잔 하며 수다 떠는 것을 즐기며, 아들과는 여자친구에 대한 고민상담은 물론 ‘성’ 관련 이야기까지 거리낌 없이 나눈다고.

“나이 마흔이 되자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 당장 행복하자’가 인생관이 됐다”는 김씨에게 성녀이면서 요부, 어머니이면서 정부였던 미실의 모습이 겹쳐진다면 과언일까.



주간동아 2009.07.14 694호 (p64~65)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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