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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금발에 파란 눈 아기 주세요”

성형 맞춤형 아기 조만간 출산 예정 … ‘진열대 상품이냐’ 논란 가열

  •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금발에 파란 눈 아기 주세요”

“금발에 파란 눈 아기 주세요”
최근 개봉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배우 브래드 피트가 80대 노인에서 20대 청년까지 역할을 소화해내 큰 화제가 됐다. 이 영화는 ‘위대한 개츠비’로 불멸의 작가가 된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영화화하면서 스토리가 많이 바뀌어 아이디어만 따왔다고 생각될 정도다.

아무튼 영화에서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노인으로 태어나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젊어지는데, 어느 날 아내가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수심에 잠긴다. 자신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 아이가 태어날까 걱정을 한 것. 출산을 앞두고 초조해하는 주인공은 아이가 태어나자 얼굴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 다음 손가락과 발가락 수를 헤아린 뒤 10개라며 기뻐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동서양이 똑같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아기를 가진 부모는, 그것도 첫째일 경우 아무리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해도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혹시 어디가 잘못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을 지니게 마련이다. 아는 게 병이라고 요즘은 많은 질병의 유전적 요인이 밝혀지면서 ‘우리 집안에 대장암 병력이 있는데 그 유전자를 가질 확률이 50%겠지…’ 같은 아이에게 당장 나타나지 않을 상황까지 걱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매스컴에서 ‘디자이너 베이비(designer baby)’, 즉 ‘맞춤형 아기’ 얘기가 나오면 비윤리적이라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한편으론 귀가 솔깃해진다. 우리나라에서 맞춤형 아기가 그렇게 낯선 용어는 아니다. 오래전부터 가장 초보적인 맞춤형 아기라고 볼 수 있는 태아 성별을 보고 출산 여부를 결정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법적으로 태아의 성별을 얘기하는 것을 금지했을까.

물론 수년 전부터 이슈가 되고 있는 맞춤형 아기는 인공수정으로 만든 배아세포의 유전자를 분석해 원하는 특성을 지닌 것만 자궁에 착상시키는 ‘첨단’ 생명과학의 산물이다. 인공수정을 하는 병원이라면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D)’이라고 부르는 이 방법을 도입할 수 있다. 2006년 11월 영국 런던 가이스 앤드 성토머스 병원에서 부모의 선천성 질병을 물려받지 않도록 유전자 검사를 거쳐 선별한 배아를 착상시킨 쌍둥이가 태어나자 논란이 일었다. 이 아기들의 부모는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데, 이전에 낳은 딸이 이 유전자를 물려받아 발병한 상태였다.



아이를 더 낳고 싶지만 불운이 반복될까 고민하던 부부가 맞춤형 아기 쪽으로 결단을 내렸던 것. 낭포성 섬유증뿐 아니라 헌팅턴병이나 루게릭병, 유방암, 대장암 같은 질병은 이미 관련 유전자가 밝혀졌기 때문에 배아에서 세포 하나만 떼어내 검사하면 해당 유전자 보유 여부를 알 수 있다. 이 경우를 두고 생명윤리 논란이 있었던 건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 배아는 폐기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를 외부에서 집어넣을 수도

영국은 지난해 5월 불치병 치료 목적으로 ‘쓰일’ 맞춤형 아기 출산을 세계에서 처음 허용해 또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즉 아이가 불치병에 걸렸을 때 면역 거부반응이 없는 배아를 골라 동생을 낳아 골수이식을 할 수 있게 법적으로 보장한 것이다. 물론 맞지 않는 배아는 폐기해도 된다. 지난 1월에는 역시 영국에서 같은 방법으로 유방암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없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자식을 낳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좀더 건강한 아이를 낳고 싶다는 부모들의 소망을 나무랄 수만도 없을 듯하다.

그런데 최근 ‘설마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지’라고 우려했던 맞춤형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라는 미국발 뉴스가 들린다. 치명적인 질병을 피하려는 기존의 맞춤형 아기 범위를 벗어나 외모가 번듯한 ‘성형’ 맞춤형 아기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로스앤젤레스 임산연구소의 제프 스타인버그 박사는 아이의 성별 선택은 기본이고 눈이나 머리 색깔 같은 외모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유전자 검사의 폭을 확대했다는 것. 물론 기존 맞춤형 아기의 주관심사인 질병 유전자 검사도 해준다고. 이런 광고를 보고 이미 6쌍의 부부가 성형 맞춤형 아기 시술을 신청했고, 내년에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현실화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왕립산부인과의사협회의 질리언 록우드 박사는 “아기를 진열대 위의 상품처럼 만드는 일”이라며 경고했다. 맞춤형 아기의 리더인 영국에서 이런 반응이 나온 게 의외인 듯 보이지만, 영국에선 현재 맞춤형 아기로 아들딸을 골라 낳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오로지 건강에 관해서만 허용되고 있는 것. 반면 미국은 인공수정을 통한 성별 선택이 합법적인 행위다.

물건을 고를 때 선별 기준이 많을수록 더 많은 물건을 봐야 하듯, 각종 질병 유전자는 없으면서 멋진 외모를 부여하는 유전자를 갖춘 배아를 찾으려면 그만큼 많은 배아가 폐기돼야 한다. 결국에는 이런 선별에 만족하지 않고 원하는 유전자를 외부에서 집어넣는 방법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토종 한국 사람끼리 결혼했을 경우 아무리 유전자를 조합해도 금발에 파란 눈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위험한 길이 아니라 미지의 길일 뿐이다.”

제프 스타인버그 박사처럼 오늘날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첨단 과학기술을 손안에 만지작거리면서 ‘세계 최초’라는 레이블이 붙을 뭔가를 하고 싶어한다. 문득 14세기 일본 승려 요시다 겐코의 수필집 ‘도연초’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무엇이나 진귀한 것을 찾고, 기발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천박한 사람이 흔히 하는 짓이다.”



주간동아 2009.03.24 678호 (p72~73)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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