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8

2009.03.24

글로벌 경영, 전용기 높이 난다

‘시간이 돈’ 고객 이용 꾸준히 증가 … 몇몇 대기업 도입 검토 중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9-03-20 14: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글로벌 경영, 전용기 높이 난다

    퍼스트 클래스 수준 이상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한항공 비즈니스 특별기‘G-Ⅳ’ 의 기내 모습과 외관.

    TV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 구준표는 즉흥적으로 뉴칼레도니아로 떠날 때,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하는 비즈니스 출장 때마다 전용기에 올라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 비슷한 시기, 드라마 밖에서도 비즈니스 제트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보잉사의 ‘BBJ2’를 도입, 전용기로 운용하기로 한 것이 계기였다. 현대차 노조는 “긴축경영 시기에 900억원대에 이르는 전용기를 도입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3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전용기를 타고 구제금융 요청을 하러 의회 청문회장에 참석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새삼 비즈니스 제트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설왕설래가 계속되자 워런 버핏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나 역시 전용기를 소유한 것이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됐다. 기업 CEO들의 전용기 사용을 사악하게 보는 것은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회의실·위성전화기까지 시설 완비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김포공항을 이용해 출입국한 전용기 운항 실적(외국 항공기 포함)은 2005년 179회, 2006년 429회, 2007년 625회, 2008년 719회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국내외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이 가속화되면서 임원들의 출장이 잦아진 것이 증가세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3월10일 김포공항 격납고에서 만난 대한항공 비즈니스 제트기 ‘G-Ⅳ’는 작지만 날렵한 제비 같은 자태를 자랑했다. 미국의 걸프스트림 에어로스페이스사(社)가 제작한 이 특별기는 원래 1995년 한진그룹의 전용기로 들여왔지만, 2006년 대한항공이 전세기 사업에 뛰어들면서 일반 고객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총 14석이 배치된 실내는 앞뒤로 놓인 4개 좌석을 마주 보게 돌려놓으면 함께 앉아 회의를 할 수 있고, 옆으로 나란히 붙은 3개 좌석의 팔걸이를 분리하면 침대로 활용할 수 있게 제작됐다. 포터블 DVD, 집무용 탁자, 위성전화기 등은 ‘날아다니는 집무실’을 구현하기 위한 장비들. 승무원 1명과 정비사 1명이 동승해 기내 서비스를 돕는다. 최대 비행거리는 7267km(최대 운항시간 9시간12분).

    대한항공 전세사업팀 정병만 팀장은 “보통 일본 중국 극동러시아 인도 동부까지 운항하나, 중간 급유를 하면 유럽과 미주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고객의 70%는 대기업 총수나 임원진 등의 비즈니스맨. 나머지는 한류 및 스포츠 스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같은 귀빈들이 차지한다. 이용 요금은 시간당 400만~500만원 선으로 이 회사의 정기편 퍼스트 클래스보다 장거리는 1.5~2배, 단거리는 3배 정도 비싼 편이다.

    글로벌 경영, 전용기 높이 난다

    위성전화기 이용, 주문형 식사 제공 등이 가능하다. 대한항공 여객기 중 유일하게 창문이 달린 화장실도 있다(왼쪽부터).

    대한항공 전세사업팀 김우희 과장은 “그럼에도 직항 노선이 없는 도시로 급히 가야 할 경우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 자국 여객기가 취항하지 않는 도시라도 근처 대한항공 지점의 직원이 파견돼 의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 기내 출입국 수속과 전용기 전용 터미널 이용 등으로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는 장점 덕에 ‘시간이 돈’인 고객들의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역시 비즈니스 전세기 개념으로 대한항공이 2005년부터 운영해온 시콜스키 헬기(S-76C+)는 투자지 및 공장단지 시찰에 주로 활용된다. 다국적 기업의 본사 회장 방한 시 국내 도시 간 이동 등의 목적으로도 사용된다.

    ‘틈새시장’을 노린 항공 서비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구 한서우주항공)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전세기 임대 서비스인 ‘에어 택시’ 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사가 도입한 ‘에어 사파리’는 저공비행을 할 때 제주도 울릉도 독도 등 국내 관광명소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일종의 항공 관광 서비스. 노상래 마케팅 부장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국내 14개 공항 및 군공항으로 모두 이동할 수 있어 대형 항공사들이 취항하지 않는 지역에 갈 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항공기도 할부로 산다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가 운행하는 기종은 18인승(조종사 제외)인 ‘레이시온 비치크래프트 1900D’와 7인승인 ‘킹에어 C-90’으로 이용금액은 시간당 약 200만원. 노 부장은 “김포-제주 노선을 18명의 승객이 이용한다고 가정할 때 일반 항공기보다 1인당 1만원 정도씩만 더 부담하면 된다”고 말했다.

    2005년 출범 당시 전용기 멤버십 프로그램을 도입한 GFI코리아는 수요 부족으로 2007년 말부터 차터기(임대)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승객 요청이 있을 경우 중국 일본 동남아 지역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사용 가능한 비행기를 연결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재 전용기를 보유한 국내 대기업은 삼성(‘BBJ2’ 1대, ‘글로벌 익스프레스’ 2대), LG(‘걸프스트림 G550’ 1대), 한진(‘걸프스트림 G-Ⅳ’ 1대), 현대·기아차그룹(‘BBJ2’ 1대)이다. 삼성은 ‘글로벌 익스프레스’ 가운데 1대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0인승 보잉 ‘737-700’을 개조한 ‘BBJ2’는 현재 국내 대기업이 소유한 비즈니스 제트기 가운데 가장 큰 기종. 18~20인승이며 한국-미국을 중간 급유 없이 이동할 수 있다. LG의 18인승 ‘걸프스트림 G550’ 역시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비즈니스 제트기종 가운데 하나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른 기업들 역시 편리성을 고려해 전용기 도입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여론의 눈치를 살펴 도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경영, 전용기 높이 난다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의 18인승 ‘레이시온 비치크래프트 1900D’((좌). LG그룹의 비즈니스 전용기 ‘걸프스트림 G550’(우).

    한편 항공기 구매 대행업체 ‘펀스카이’는 최근 미국 항공기 파이낸싱 회사와 계약을 체결, 국내 최초로 항공기 할부 구입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처럼 계약 당시 일정액을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을 10년 또는 20년 분할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한 것. 펀스카이 박용호 대표는 “과거에 전용기를 구입하려면 전액 현금으로 결제해야 해 부담이 컸지만 이제는 연식, 가격에 상관없이 원하는 비행기를 좀더 마음 편히 구입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출범 초기, 공동구매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인 박 대표는 “구매자끼리의 신뢰 확보 등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아 판매 형태를 수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구매자들이 파일럿과 정비사를 공유하므로 운항 인력 운용에 따른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박 대표는 “5억원 안팎의 중고 프로펠러기를 장기 분할로 구입할 경우 매달 70만원 정도 부담하면 된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