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7

2009.03.17

싼 교복 구입, 고쳐 입고 물려주고

영국 교복, 전통과 실용 조화 체육복도 티셔츠와 반바지

  •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입력2009-03-12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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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싼 교복 구입, 고쳐 입고 물려주고
    영국이나 한국이나 학부모들에게 자녀의 교복은 신경 쓰이는 문제다. 특히 학교의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영국 사회에서 교복이라는 아이콘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학기 초마다 ‘교복 스트레스’를 겪는 학부모를 찾아보기 힘들다. 워낙 중저가 제품이 일상화돼 있고, 헌 옷 물려입기가 활성화된 데다 색깔과 디자인이 같으면 됐지 특정 교복 브랜드를 선호하는 현상도 없기 때문이다.

    영국 어린이들은 공식 취학연령이 시작되는 만 4세부터 대학에 진학하기 직전까지 교복을 입는다. 하지만 자유롭게 활동해야 할 학교에서 ‘고급 교복을 입어야 한다’는 선입관으로부터 자유롭다. 1만원 정도면 정장 바지 한 벌이나 영국인이 ‘점퍼’라 부르는 스웨터형 겉옷 한 장을 어디에서든 구입할 수 있다. 품질보다는 실용성이 최우선 요소다.

    특히 만 4~7세에 해당하는 초등학교 저학년은 카펫 바닥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걸핏하면 교복 바지에 구멍을 내온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비슷한 헌 교복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디자인과 업체를 강요하지 않는 유연성은 더욱 돋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대부분 학교가 학생들의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학교 로고가 새겨진 상의를 직접 판매한다. 그러나 같은 색깔의 상의라면 학교보다 싼 동네 슈퍼마켓에서 사도 괜찮다.



    일부 학교에서 학교 로고가 새겨지지 않았더라도 같은 색상의 상의를 허용하는 것도 영국식 ‘융통성’의 또 다른 표현이다. 옷의 재질이나 일부 형태가 다르더라도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여름에 어떤 학생은 긴 정장 바지를, 어떤 학생은 반바지를 입고 등교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바지 색깔도 짙은 회색, 검은색 두 가지로 정해 학생들이 통일성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여학생 교복 역시 바지와 치마 중 선택해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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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육복도 땀을 흡수할 수 있는 티셔츠와 반바지 정도면 족하다. 학교별로 체육복을 지정해 학부모에게 부담을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사립 초중등학교는 공립학교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교복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명문 학교일수록 전통을 강조하는 영국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학교 로고가 새겨진 고급 슈트와 넥타이를 착용한다. 심지어 비옷이나 신발까지 학교 방침을 따라야 해 수십만원의 목돈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립학교에서도 졸업생들이 기증한 중고 교복을 반값 이하에 판매하는 등 ‘재활용 정신’이 일상화돼 있다. 물론 공립학교도 마찬가지다. 일반 공립학교에서 학기가 끝날 때쯤 학부모회의 가장 큰 사업 중 하나는 1년 내내 학교 주변에서 수거한 교복을 수선한 뒤 재판매하는 것이다. 가격은 기껏해야 2000~ 3000원을 넘지 않는다.

    학기 초가 되면 대형 슈퍼마켓들은 교복 판매를 위한 별도 코너를 마련하고 판촉 활동에 나선다. 그러나 10대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 위해 연예인을 동원하는 광고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영국의 교복문화는 전통 속에서 실용과 개성을 추구하는 영국인의 생활습관의 산물이다. 재활용이 일상화한 교복문화에는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도 담겨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할수록 이러한 전통은 더욱 빛을 발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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