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9

2017.03.15

사회

얘야, 취직보다 농사짓는 게 어때?”

농고, 농대 진학한 젊은이들…부모가 이해하고 끌어주는 게 중요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7-03-13 16: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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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몰리고 있다. 평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직업 선택 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농업 분야에서 미래를 발견하고 일찌감치 농고나 농대에 진학해 미래 농업에 도전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그 뒤에는 자녀에게 ‘농업에서 미래를 발견하고 길을 개척하라’며 적극 후원하는 부모들이 있다. 6차 산업의 주역으로 성장하길 기대하며 창농(創農)의 꿈을 키우는 이들을 만나봤다. 



    # 자신만의 독자 브랜드를 만들어라

    경남 함안군에서 철강 관련 사업을 하는 서진교(49) 씨. 그는 한때 은행 지점장을 하고 생명회사도 다닌 금융맨이었다. 하지만 치열한 실적 경쟁과 잦은 야근 등 업무에 시달렸고, 고심 끝에 금융회사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여러 일을 해보다 어렵사리 철강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사업이 웬만큼 자리 잡았지만, 그동안 그가 한 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서씨는 사업을 하면서 자식들에게는 한 가지 기술이라도 꼭 가르쳐 삶의 경쟁력을 키워주고 싶었다. 자기만의 특별한 브랜드(기술)가 있으면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서씨는 아들 덕준 씨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바쁜 시간을 쪼개 직업 및 미래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오랫동안 대화하면서 내린 결론은 농업 관련 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인문계 고교를 다니던 덕준 씨는 연암대 친환경원예계열을 선택했고, 올해 졸업한다. 덕준 씨는 요즘 원예농업 회사를 알아보고 있는데, 거기서 몇 년 동안 실무를 익힌 뒤 원예농업과 관련된 새로운 일을 해볼 생각이다.  



    # 농고 이어 농대로…일찌감치 미래설계

    충북 청주시청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는 박모(53) 씨도 일찌감치 딸에게 농고와 농대에 진학하라고 권유한 사례다. 박씨는 20여 년 동안 청주시 공원 녹지 업무를 담당했는데, 자연환경 관련 일을 하면서 현장 사람을 많이 만나온 덕에 조경의 장점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박씨는 딸이 중학교 3학년일 때 농고 진학을 강력히 권유했다. 그러나 유치원 교사인 아내가 딸의 농고 진학을 반대하고 나섰다. 아무리 농업의 미래가 밝다 해도 남들 보기에 민망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아직 생각이 깊지 않은 어린 자녀의 미래를 부모가 결정하는 것이 성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씨의 생각은 확고했다. 인문계열을 졸업한 뒤 몇 년씩 취업 공부를 해도 쉽게 취직하지 못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많이 봐왔기에 딸의 농고 진학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결국 농고 조경과에 입학한 딸 세연 씨는 올해 대학 입시에서 환경조경과에 합격했다. 그는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 조경 관련 회사에 취직하거나 경험이 쌓이면 조경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 정직한 노력과 결과, 농사의 비전 제시

    충남 홍성군에 사는 김현주 씨도 부모가 적극 권유해 농대를 선택했다. 농고를 나온 아버지 김길호(48) 씨는 소규모 영농을 거쳐 현재 축산업을 하고 있다. 김씨는 도시에 살고 있는 친척들이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하나 둘 퇴직하는 모습을 보고 딸에게 농업을 권유했다.  

    김씨는 “‘농사가 힘은 들어도 정직하게 땀을 흘리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는다’고 딸을 설득했다. 물론 처음 몇 년은 고생하겠지만 농사는 어느 정도 기반을 잡으면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앞으로도 농업이 유망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딸에게 농대 진학을 적극 권유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유기농 분야가 유망하다고 내다본다. 홍성군 지역에는 유기농 원예 농사를 짓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딸에게 이들과 교류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 남다른 선택, 부모가 적극 지지

    한국농수산대 특용작물과 2학년 김바다 씨는 본인이 농업의 길을 모색하고 부모가 적극 밀어준 사례다. 김씨는 2월 19일 미국 종자회사 농장으로 현장 실습을 떠났다. 앞으로 1년 동안 세계 종자산업의 흐름을 배우고 현장을 체험할 계획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3년제 한국농수산대는 농수산업 경영자를 양성하고자 설립된 학교로, 1학년을 마치면 2학년 때 농장 실습시간을 갖는다. 미국 종자회사 실습생으로 매년 1명을 뽑는데 이번에 바다 씨가 선발된 것.

    바다 씨는 외고 2학년 때 농업을 전공해보고 싶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처음 꺼냈다. 다른 친구들처럼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해 열심히 준비할 시기에 농업을 선택하겠다는 아들의 생각이 의외였을 터. 하지만 교사로 재직 중인 아버지 김순근(55) 씨는 아들의 선택을 전적으로 믿고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어릴 때 몸이 아팠던 아들이 자연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고, 틈틈이 텃밭을 가꾸는 부모를 도우며 농사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은 만큼 앞으로도 기쁜 마음으로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부부가 함께 농사짓고 식당 운영

    충남 논산시에 터를 잡은 정광하(38) 씨와 부인 오남도 씨는 농대 원예과 선후배로 만나 결혼했다. 3년 전 부부는 6611㎡(약 2000평) 남짓한 땅에 사과와 배나무를 심고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부부는 다품종, 소량재배를 고집한다. 2030세대의 취향에 맞는 허브와 제철 토종농산물을 생산하면서 도시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부부는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논산시내에 ‘꽃비원 키친’ 식당도 열었다.

    직접 기른 채소로 요리한 밥상을 내는 것은 물론, 제철 채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워크숍도 운영한다. 남는 농산물은 잼이나 차, 소스로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부부는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도시 사람과 소통하면서 농산물을 가공해 건강한 자연재료에 감성을 담아 전달하고 있다.

    농업 분야에 뛰어드는 젊은이의 모습은 입시 경쟁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농수산대를 살펴보면 2015학년도 4.57 대 1, 2016학년도 5.21 대 1, 모집인원이 80명 늘어난 2017학년도는 4.1 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표 참조).

    중학교 3학년 딸에게 농고에 진학하라고 권유하는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내 주변에는 농고와 농대를 가라고 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희소성과 사회적 가치로 따져볼 때 농업은 유망한 미래다. 현재 농촌 인구가 전체의 15%밖에 안 되고 평균 연령은 60세로,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어려서부터 농업 지식을 쌓고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하면 소수의 전문인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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