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가 순국직전 억류됐던 가나자와 성.
광복 직후 유해 옮겨와 효창공원 묘역에 안장
1932년 4월 26일 윤 의사가 한인애국단 선서식에서 찍은 사진.
윤 의사의 순국기념비는 잘 꾸며져 있고, 그 위로 10분쯤 걸어가니 언덕 한쪽에 그의 암장지가 있었다. 암장지에는 무덤과 함께 두 개의 작은 태극기가 걸려 있고, 그의 생전 사진과 공적을 기록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윤 의사는 이곳에서 광복까지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광복 다음 날인 1945년 8월16일 윤 의사 유해봉환위원회가 발족되고, 이듬해 5월 초 재일동포 서상한 이강운 등이 윤 의사 유해를 찾게 된다. 사흘 동안 이곳저곳을 팠으나 발견하지 못했는데 윤 의사 사형 당시 일본국군묘지 관리인 부인이던 노파가 일러주는 쓰레기 하치장을 파서 가매장된 윤 의사의 관과 십자가 형틀, 기타 유품을 순국 14년 만에 찾아냈다.
그해 5월 중순 윤 의사를 비롯한 이봉창 백정기 등 열사 3인의 유해가 부산에 도착했고, 7월7일 10여 만명의 추도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서울운동장에서 세 열사의 유해가 처음 국민장으로 엄수되고 효창공원 묘역에 안장됐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윤 의사 암장지 앞에 서니 뜨거운 감정이 일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의 독립의지가 굳건하다는 것을 널리 알려 뒷날 한국이 독립국이 되는 데 크게 이바지한 분의 묘소이기 때문이리라. 당시 일본과 싸우던 연합군은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이 되어 자기들에게 대항한다고 생각해 조선을 일본과 같은 부류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한 시점에서 윤 의사의 상하이 폭탄 투척은 뜻깊은 의거였다.
상하이 근교 자싱(嘉興)에 자리한 김구 피난처 기념관의 전시물(왼쪽 위)과 상하이 임시정부 박물관에 전시된 윤봉길 의사의 사료(아래). 김구 선생은 윤 의사의 거사 이후 일본 경찰을 피해 자싱피난처에서 2년간 생활했다. 가나자와 시에 있는 윤 의사의 암장지 무덤과 돌 비석.
1932년 윤 의사의 의거가 없었다면, 김구 선생이 이끄는 상하이 임시정부는 사실상 해체될 상황이었다. 외부의 자금지원도 없었다. 하지만 윤 의사의 의거가 있은 직후 크게 감동한 중국 국민당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중국의 백만 군대도 하지 못할 일을 한국의 한 의사가 능히 해냈으니 장하도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 주석은 부하들에게 당장 백범 선생을 모셔다가 적극적으로 도와드리라고 지시했다. 또한 그는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루스벨트 대통령과 처칠 총리를 상대로 조선의 독립 문제가 제기됐을 때 조선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것을 카이로선언에 명문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된 데는 윤 의사의 활약과 김구 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가 일조를 했던 것이다.
1932년 4월29일 오전 11시50분, 상하이 훙커우 공원(현 루쉰 공원)의 천장절 행사에 고위직 일본인들이 모여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고 있었다. 이때 군중에 있던 윤 의사가 어깨에 걸고 있던 물통폭탄을 꺼내 던졌다. 폭탄이 터지면서 많은 군인들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육군대장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고 상하이 일본인 거류민단장인 가와바다는 다음 날 사망했다.
순간적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폭탄을 던진 직후 윤 의사는 준비했던 도시락 폭탄으로 자결하려 했지만 주위의 일본인에게 잡혀 몽둥이 등으로 난타당했다. 사건 직후 사진을 보면 윤 의사는 머리에서 허리까지 피가 흘러내리는 참혹한 모습이다. 헌병대에 끌려가서도 일본 헌병의 고문과 취조는 멈추지 않았다. 헌병들은 수시로 윤 의사를 끌어내 혹독한 고문을 했다. 말가죽으로 만든 채찍으로 등이 벗겨지도록 때렸으며 전기고문을 번갈아 하면서 배후를 밝히라고 강압했다. 하지만 윤 의사는 자신의 신분이 알려질 경우 거사에 가담한 관계자들은 물론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지도부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배후를 밝힌 것은 김구 선생이었다. 상하이 의거 이후 일본인의 조선인 무차별 체포가 심해지자 진상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김구 선생은 ‘훙커우공원 폭탄사건의 진실’이라는 글을 중국 신문에 기고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한인애국단의 거사였음을 알렸다. 이 글과 함께 윤 의사가 거사 직전에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사형 직후 쓰레기 소각장 가는 길 한복판에 암매장
윤 의사 순국기념비.
총살형이 곧 있을 것을 직감한 윤 의사는 잠시 명상에 잠긴 뒤 유서를 써 내려갔다.
“아들 윤종아! 너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서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기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놓아라.”
이튿날 차가운 새벽 감방 문을 연 간수는 윤 의사의 양손을 뒤로 묶은 다음 얼굴에 용수를 씌웠다. 노다산 처형장에서 일본 헌병들이 발사한 총탄은 윤 의사의 미간을 관통했다. 그의 나이 25세. 그 후 윤 의사의 시신은 아무렇게나 수습돼 당시에는 쓰레기 소각장이던 노다산 공동묘지 관리소로 가는 길 한복판에 표식도 없이 암매장됐다.
이곳이 바로 윤 의사 암장지로 공개되고 있는 곳이다. 1932년 12월19일 오전 7시40분, 윤 의사는 이렇게 일본 가나자와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순국했다. 상하이 의거 7개월 20일 뒤의 일로, 11월18일 일본 본토로 압송된 지 한 달 만이었다.
윤 의사는 1908년 6월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농가에서 태어났다. 우리에게 알려진 ‘봉길’이라는 이름은 별명이고 본명은 우의(禹儀), 뒤에 아호는 매헌이라 지었다.
윤 의사는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인 1930년 3월6일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집을 나간 장부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글을 써놓고 만주로 망명했다. 결국 그는 살아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까지 살아 있다.
윤 의사의 죽음은 조선 독립의 신호탄이 됐다. ‘조선은 결코 일본과 동색(同色)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외치던 그의 피맺힌 절규는 참으로 숭고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돼 독립국이 된 것은 이처럼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