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0

2008.11.11

‘금융공학’ 허점 과소평가 탈났다

투자 혁신 파생상품 브레이크 없는 질주…전 세계 공조화로 연쇄 금융위기 초래

  • 변석준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sjbyun@business.kaist.ac.kr

    입력2008-11-03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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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금융공학을 꼽는 전문가들이 늘면서 일반인에게 생소하던 이 학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첨단 금융공학이 빚은 각종 파생상품은 연쇄효과를 일으키며 전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금융공학은 황금을 만드는 연금술인가, 그저 일부 천재들이 만들어낸 애물단지인가. <편집자>
    금융공학의 역사는 1973년에 시작됐다. 그 이전에도 파생상품 거래는 있었지만 규모는 매우 작았다. 하지만 1973년 미국 시카고 옵션거래소에서 주식옵션을 거래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파생상품 시대가 열렸다. 또한 그해에 피셔 블랙(Fischer Black), 마이런 숄스(Myron Scholes), 로버트 머턴(Robert Merton) 교수가 공동 발표한 파생상품 평가이론은 혁신적인 투자이론으로 주목받았고, 25년 뒤인 98년 이들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투자은행들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부터다. 이때 금리 스와프를 필두로 다양한 파생상품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80년대와 90년대 시장 규모는 빠른 속도로 확대됐다. 이 시장에서 미국과 유럽의 투자은행들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으며 수학, 물리학을 전공한 공학도들이 투자은행에 몰려들었다. 현재 전 세계 금융기관이 보유한 파생상품 잔액은 700조 달러(약 84경원) 이상이며 이 시장에서의 수익은 7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파생상품 시장의 약 15%는 JP모건체이스가 점유하고 있으며 BNP파리바그룹, 도이치뱅크,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처럼 파생상품 시장은 몇 개의 대형 은행이 거의 독과점하는 실정이다.

    한편 국내 파생상품 시장 규모는 4000조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그중 50%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보유하며 국내 은행 가운데 산업은행은 2008년 6월 말 기준으로 자산 139조원, 파생상품 잔액 365조원을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의 투자은행들은 평균적으로 자산 대비 10배 이상의 파생상품 잔액을 보유하고 있다. 많은 경우엔 자산 대비 40배 규모의 파생상품 잔액을 보유하는 경우도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는 금리파생상품(in-terest rate derivatives)이 주를 이뤘다. 지금도 금리파생상품의 시장규모가 가장 크다.

    1990년대 말에는 신용파생상품(credit derivatives)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가장 빠른 속도로 커진 시장이 신용파생상품 시장이다. 현재의 미국발 금융위기는 부동산 가치의 하락에서 출발했으나 이를 증폭시키고 여러 금융기관에 걸쳐 광범위한 손실을 끼치게 된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신용파생상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주택저당증권(MBS·Mortgage Ba-cked Securities)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신용파생상품 가운데 하나인 부채담보부증권(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시장이 금융위기의 촉매 구실을 했다. CDO 상품은 투자원금 대비 손실 또는 이익을 매우 크게 만드는 레버리지 효과를 내는데, 예를 들어 메릴린치는 2007년 3분기에 보유한 CDO 자산에서 79억 달러(약 8조원)의 손실을 봤다. 메릴린치는 그 이전 수년간 CDO 자산에서 상당한 이득을 보기도 했으니 효자상품이 갑자기 불효자가 된 셈이다.

    신용파생상품 시장은 특이하게도 미국 유럽에서의 큰 증가세와 달리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에서는 지금도 규모가 매우 작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부동산 가치가 폭락하더라도 현재의 미국 같은 금융 손실 전이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에선 파생상품 규모 작아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을 다시 한 번 면밀히 짚어보자.

    위기의 원인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의 저금리 정책, 신용도가 낮은 고객에 대한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 증가, 주택담보대출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는 증권화(Securiti-zation) 기법의 발달 및 규모 증가, 이러한 채권을 모아서 또 담보로 증권을 발행하는 CDO 시장의 폭발적 증가, CDO를 모아 또 담보로 증권을 발행하는 CDO2 시장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증권화가 쉽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또다시 새로운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새로운 대출도 증가했으며, 또한 증권화의 용이성으로 신용도가 낮은 고객에게 대출해주고 이러한 대출자산을 다른 금융기관에 팔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의 신용도 조사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2000년대에는 신용파생상품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규모도 커졌지만 신용파생상품에 대한 정부 규제는 시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금융기관의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인 BIS 비율을 계산할 때 다양한 종류의 신용파생상품을 고려하지 못함으로써 금융기관의 위험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고, 신용파생상품의 복잡성으로 인해 이러한 상품에 대한 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도 주먹구구식이었다.

    트레이딩 부서 직원들이 막대한 보너스를 받다 보니, 복잡한 신용파생상품을 분석할 수 있는 우수 직원들이 모두 트레이딩 부서로만 가고, 직원 대부분이 보너스가 없는 위험관리 부서나 신용평가회사로 가길 꺼려하기 때문에 능력 있는 직원이 부재한 점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또한 트레이딩 부서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경우엔 트레이딩 부서의 입김이 세고 위험관리 부서는 별 힘이 없기 때문에 보유 자산의 위험에 대한 사전 언급이 소홀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 금융시장에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네 가지 추세가 있는데 △글로벌화 △증권화 △금융공학 발달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기술(IT) 발달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추세가 모두 지금의 세계적 금융위기를 불러온 주범이기도 하다. 이들 추세는 국가 간 공조화, 시장 간 공조화, 금융기관 간 공조화, 기업 간 공조화를 만들어 어느 시대보다 높은 공조화 시대를 이끌었고, 따라서 한 국가에서 문제가 생기면 연쇄적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시스템이 되어 앞으로 실물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어느 부분에서는 지금 상황을 잘 넘기면 모두가 이른 시일 안에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따라서 금융시장의 네 가지 추세가 앞으로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적극적인 대처 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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