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0

2008.11.11

케너텍 기업세탁 거액 채무 회피?

고신열관리 직원, 기술, 거래처 넘겨받아…400억원대 빚만 쏙 빼놓아 의혹 증폭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8-11-03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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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너텍 기업세탁 거액 채무 회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너지 관련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에너지 절약 전문기업 ‘케너텍’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케너텍은 자본금 67억원에 임직원 수 239명(관리직 47명, 생산직 192명)의 중소기업이다.

    회사 역사도 길지 않다. 1997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해 2003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코스닥에 상장한 지 5년차인 것. 업계에서는 그동안 기술력을 갖춘 내실 있는 중소기업 정도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 케너텍은 에너지 관련 로비의혹 사건의 핵으로 떠올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9월 초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해 전 방위 로비 흔적을 찾아내고, 이에 연루된 혐의를 받던 김영철 전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이 자살하면서부터다.

    검찰 영장, 이모 회장 실질적 경영주

    케너텍은 여러 측면에서 미스터리한 구석이 많은 회사다. 먼저 지식경제부, 군인공제회, 한국중부발전, 강원랜드, 포스코 등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는 케너텍의 로비 대상을 보면 상식을 초월한다. 중소기업에서 어떻게 이런 전 방위 로비가 가능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각종 청탁로비와 뇌물제공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모(61) 회장이 법적으로는 회사와 아무 관련 없다는 주장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서류상 이 회장은 등기이사는 물론 회사 주요 주주도 아니다. 대표이사 겸 대주주는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출신인 정복임(53) 사장이다.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에 적시된 이 회장과 케너텍의 관계를 보면 의문은 더욱 커진다. 검찰은 영장에서 이 회장에 대해 “주식회사 케너텍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케너텍의 자금 및 각종 영업활동을 총괄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내용대로라면 이 회장이 실질 경영주인 셈이다.

    이에 대해 케너텍 측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펄쩍 뛴다. “(이 회장이) 회사 설립 때부터 관여했지만 정식으로 입사한 것은 2003년이다. 정 사장의 지인으로서 회사 영업을 도와주는 정도다. 회장이 아니고 고문이다”라는 게 케너텍 측의 주장이다.

    취재 결과 케너텍 측이 이 회장과의 관계를 완강히 부인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낱 중소기업이 전 방위 로비를 할 수 있었던 남다른 배경도 존재했다.

    이 회장은 6대 국회의원이던 고(故) 이재만 전 의원의 아들이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던 이 전 의원은 63년 총선 때 경남 밀양에서 공화당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이 전 의원은 이후 산업기술개발본부 회장, 과학기술교육진흥회 이사장, 재생자원기술진흥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현재 지식경제부로 흡수된 산업자원부의 전신인 동력자원부 고위직 공무원들은 물론, 정·관계 인사들과 친분관계를 다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력자원부는 당시 에너지와 지하자원을 전담하는 부처였다.

    이 전 의원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1980년 5월 열관리 전문업체 ‘고신열관리㈜’를 설립했다. 그해 6월 대표이사로 취임해 이 회사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은 사람이 바로 이 전 의원의 아들인 이 회장이다. 회사의 주요 거래처는 포스코, 한국전력공사, 한국중공업 등 내로라하는 대형 공기업들이었다.

    5, 6공화국 군부시절 무탈하던 회사는 6공화국 노태우 정권이 얼마 남지 않은 1992년 5월 부도를 냈다. 회사는 그해 12월 회사 정리절차에 들어가 94년 3월 법원으로부터 정리계획 인가를 받았지만, 영업 상황이 호전되지 않아 빚을 다 갚지 못한 채 98년 8월 결국 문을 닫았다.

    문제는 이 회장이 운영하다 문을 닫은 고신열관리와 케너텍의 관계다. 두 회사는 공통점이 무척 많다. 이름부터 비슷하다. 1997년 9월 설립 당시 케너텍의 상호는 ‘고신엔지니어링’이었다. 둘 다 ‘고신’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주력 업종도 산업용 버너와 연소자동제어기기의 제조·판매로 같다.

    사무실과 공장 위치도 동일하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7-16번지 D빌딩 904호와 포항시 북구 청하면 이가리 366번지가 두 회사의 본점 및 지점으로 사용됐으며, 두 회사의 공장은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39-1번지로 동일하다. 심지어 회사 전화번호까지 똑같다. 고신열관리 직원은 물론 임원 상당수가 고스란히 케너텍으로 옮겨간 것도 두 회사의 관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고신열관리가 보유하고 있던 각종 의장등록권과 실용신안등록권도 1998년 8월 서류상으로 회사 정리절차가 끝난 직후 케너텍으로 이전됐다. 특히 고신열관리가 96년 에너지관리공단의 용역을 받아 포항산업과학연구원과 공동으로 진행하던 연구과제까지 케너텍이 이어받았다. 결정적으로 케너텍의 최초 대표이사가 바로 이 회장의 부인이다. 남편에서 부인에게로 회사의 모든 자산이 넘어간 셈이다. 단, 부채만 빠졌다.

    이 같은 내용은 고신열관리의 대여금 채권을 인수한 동양파이낸셜이 2005년 케너텍을 상대로 제기한 양수금 청구소송에서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이다. 동양파이낸셜이 청구한 소송금액은 원금 35억원에 이자까지 합해 100억원이 넘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신열관리가 갚지 못한 채권이 원금만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확인 결과 고신열관리는 문을 닫기 직전 원금 225억원에 이자까지 모두 400억여원의 채무를 안고 있었다.

    같은 회사 … 이름만 바꿔 달았나

    동양파이낸셜 측의 한 관계자는 “케너텍은 고신열관리라는 회사가 있던 그 자리에 법인 번호만 다르게 세워진 회사다. 직원들은 물론 기존 거래처도 그대로 넘겨받았다. 채무만 넘겨받지 않았다. 그래 놓고 제삼자를 내세워 영업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채무를 갚지 않기 위해 기업을 세탁한 게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말했다.

    케너텍 로비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과 케너텍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회장 부인에 이어 대표이사에 취임한 정 사장은 이 회장 부부와 같은 교회에 다닌다. 정 사장은 특히 이 회장 부인과 친분이 두터워 동업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법원은 동양파이낸셜의 양수금 청구를 기각했다. 케너텍이 고신열관리의 수원 공장을 계약에 의해 넘겨받은 것이 아니라 회사를 설립한 지 2년9개월 후에 경매에서 낙찰받은 점을 들어 상법상 영업양도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 상법상 두 회사는 별개라는 이야기다. 재판부는 설령 케너텍이 고신열관리의 채무를 갚아야 할 책임이 있다 해도 이미 시효가 지났다고 결정했다. 동양파이낸셜 측은 이에 곧바로 항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서인겸 경희대 교수(법학·변호사)는 재판부의 판결에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의 논리가 빈약하다. 재판부가 영업양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근거로 든 것은 부동산 양도 과정뿐이다. 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부동산이 아니라 조직과 영업이다. 그 조직과 영업망이 그대로 넘겨져 기업 활동을 했다면 그건 영업양도가 이뤄진 것이다.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만 봐도, 같은 회사인데 이름만 바꿔 단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이 간다.”

    “이 회장과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냈다”는 케너텍의 한 전직 임원은 “이 회장이 운영하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같은 교회에 다니는 정 사장이 자본을 투자하면서 합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과 정 사장이 회사 지분을 사실상 절반씩 소유하고 있다는 게 이 임원의 이야기다. 물론 케너텍 측은 이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이 회장은 고신열관리가 갚지 못한 수백억원대 채무에 대해 연대채무를 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이 회장의 케너텍 지분 실질 소유 여부, 고신열관리와 케너텍의 관계가 확인될 경우 이 회장과 케너텍을 상대로 한 수백억원대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케너텍은 2007년 말 현재 자산규모 1700억원대의 회사로 성장했다.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갚아야 할 빚이 있다면 갚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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