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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호주, 수십 년 만의 강추위에 폭설 신나는 겨울 … 북반구 고향 호주인들 “유럽처럼 환상적인 일”

  • 시드니 = 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hanmail.net

8월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8월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눈 덮인 캔버라 남쪽 스노이마운틴의 풍경.

30℃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에 시달리는 한국과 달리 호주에는 최근 수십 년 만의 강추위가 몰려왔다. 지구 남반부에 자리한 호주의 계절은 한국과 반대다. 6~8월이 한겨울인 반면, 크리스마스엔 30℃가 넘는 여름이 된다. 아무튼 올 8월의 강추위로 인해 여간해선 추운 내색조차 않는 호주인들이 두툼한 파카 차림으로 거리를 오가고 있다. 거기에 눈까지 많이 내려 스키 애호가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호주 겨울의 절정을 이룬 8월10일, 시드니 근교의 블루마운틴에는 도로가 차단될 만큼 큰눈이 내렸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사람과 크리스마스트리 등을 만들어놓고 말 그대로 ‘8월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겼다. 같은 날, 캔버라 남쪽의 스노이마운틴에도 30cm가 넘는 강설량이 기록됐다. 스노이마운틴은 연중 4개월 동안 스키를 즐길 수 있는 호주의 대표적인 스키타운이다. 대외적인 호주의 이미지는 주로 사막과 바다, 산호초지만 7, 8월의 호주에는 스키를 즐기러 오는 지구 북반구의 관광객이 적지 않다.

7월27일에는 시드니에도 눈이 내렸다. 시드니는 아열대성 기후에다 해양성까지 겹쳐 연중 따뜻한 날씨인 도시다. 이날의 눈은 1836년 강설 기록 이후 무려 172년 만에 찾아온 눈이다. 시드니 시민들에게는 평생에 한 번 경험해볼까 말까 한 눈이었던 셈이다. 그날 하루 종일 시드니 전역은 눈 이야기로 술렁거렸다.

시드니 전역 172년 만에 찾아온 눈

196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소설 ‘설국’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雪國)이었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시드니 시민들도 그날 ‘172년의 긴 세월을 빠져나오자 눈의 도시(雪市)였다’로 시작하는 시드니판 ‘설국’을 썼다. 로즈빌에 사는 한 주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로즈빌이 마치 유럽처럼 느껴지는 환상적인 순간이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스코틀랜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재프리 롱 씨는 인터뷰 도중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심리학자는 “눈 덮인 풍경이 그들의 내면에 오랫동안 숨어 있던 모국에로의 회귀의식을 일깨운 탓”이라는 분석을 내리기도 했다.



어쨌든 이날의 눈은 북반구가 고향인 호주인들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일깨운 감미로운 선물이었다. 눈사람을 만들고 플라스틱 통으로 급조한 눈썰매를 타는가 하면, 눈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등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들뜬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시드니의 눈은 ‘진짜 눈’이 아니었다. 호주 기상청의 피터 즈미주스키 예보관에 따르면 이날의 눈은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이 아니고, 낮은 기온 때문에 입자가 작은 싸라기눈이 지상에 쌓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기상청의 발표를 전해들은 시민들은 크게 실망했다. ‘2UE’ 라디오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시민은 “세상이 온통 하얀데 그게 눈이 아닌들 무슨 대수인가. 우린 그냥 눈이 왔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기상청 사람들, 날씨 예보는 엉터리로 하면서…”라며 눈치코치 없는 기상청을 원망하기도 했다.

설령 시드니에 눈이 내리지 않아도 영국계 호주인들은 매년 ‘7월의 크리스마스’ 혹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어린 시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체험한 50대 이상의 노년층이 모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것이다. 진짜 크리스마스인 12월이 되면 호주의 기온은 30~40℃다.

8월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자선기금 마련을 위한 거리 모금에 나선 호주 소녀들(오른쪽).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한 목장 풍경. 양들의 등 위로 간밤에 내린 눈이 하얗게 쌓였다.

사계절 동시에 나타나는 섬 대륙

호주판 ‘7월의 크리스마스’ 파티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수영복 입은 산타클로스가 서핑보드를 타고 오는 크리스마스 풍경에 심드렁해진 호주인들은 1980년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시드니 근교의 블루마운틴 지역에 심심찮게 눈이 내리자 이곳의 아일랜드 출신 주민들이 흰 눈이 내리는 7월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자고 제안한 것이다. 일종의 아이리시 조크(some kind of Irish joke)였던 셈인데, 시민들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호주의 발명품 ‘7월의 크리스마스’는 뉴질랜드를 징검다리 삼아 몇몇 남미국가로 퍼져나갔다. 몇 년 전부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7월의 크리스마스’를 즐긴다고 한다.

호주는 거대한 섬인 동시에 대륙이어서 ‘섬 대륙(The island continent)’이라 불릴 정도다. 유럽 면적의 2배나 되는 드넓은 땅을 차지한 호주의 인구는 2100만명을 웃돌아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이처럼 텅 빈 대륙의 고립감이 호주에서 ‘7월의 크리스마스’가 생겨나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에는 이 행사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향수병에 시달리는 노년층을 겨냥한 실버 비즈니스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블루마운틴에 눈이 쌓이면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고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가 등장한다.

8월10일, 호주의 기온은 영하 5℃에서 32℃까지 다양하게 기록됐다. 내륙에 자리한 오렌지 지역이 영하 5℃를 기록한 반면, 북부에 있는 해양도시 다윈은 32℃까지 올라갔다. 이처럼 사계절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호주 기후의 특징이기도 하다. 때문에 호주 관광청은 ‘오늘은 스키를 즐기고, 내일은 해수욕을…’이라는 광고를 내보내곤 한다.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시드니의 겨울은 10~20℃로 온화한 편이다. 그러나 여름의 찜통더위를 피해 계절여행을 떠나온 북반구 여행객들은 이 정도의 날씨로도 추위를 탄다.

하지만 8월 중순이 넘어가면 시드니의 한겨울 추위(?)도 한풀 꺾인다. 호주인들이 좋아하는 영국 낭만파 시인 셸리의 시 ‘서풍의 노래’처럼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을 것(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이므로. 보통 가을의 시작인 9월이 되면 호주에는 또 새로운 봄이 오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8.08.26 650호 (p30~32)

시드니 = 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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