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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멀쩡하던 아들 군대 가 다쳤는데 나 몰라라 국가 탓에 환장할 판”

국가유공자 지정 위한 배상렬 씨의 외롭고 힘겨운 싸움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멀쩡하던 아들 군대 가 다쳤는데 나 몰라라 국가 탓에 환장할 판”

  • “아버지는 “정신병의 원인이 학대에 따른 스트레스”라 여기고 부대에 항의했으나 부대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시라”고 조언하면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멀쩡하던 아들 군대 가 다쳤는데 나 몰라라 국가 탓에 환장할 판”

배상렬 씨(오른쪽)는 “대한민국을 좀먹는 파렴치를 바로잡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배상렬(59) 씨는 통역가다. 영어로 밥을 번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정착할 때 소통을 도와주는 게 직업이다. 그의 아들(29)은 무용가다. 경희대에서 무용을 배운 뒤 무도(舞蹈)를 다지고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런데 아들은 더 이상 춤을 추지 못한다. 몸을 가누지도 못한다. 아버지는 그래서 ‘대한민국이 몸서리나게 밉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간부로 군에 복무했다. 아들을 육군에 보내면서 그는 뿌듯해했다.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아들의 표정은 밝았다. 늦깎이 군생활인데도 버겁지 않은 눈치였다. 몸무게도 3kg 늘었다. 187cm, 92kg. 춤사위로 다진 몸은 구리풍뎅이처럼 빛났다. 아들은 늠름했으며, 아버지는 자랑스러웠다.

첫 휴가를 마치고 귀대한 뒤 아들은 쓰러졌다. 말을 잊었다. 정신줄을 놓았다. 지능지수(IQ) 130이 넘던 두뇌는 오간 데 없었다. “아들은 바보가 됐다. 그래서 내 가슴이 아프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들을 누일 때마다 아버지의 분노는 국가를 향한다. 눈물샘이 말라버린 지 오래란다.

의병제대 후 2년 넘게 침대와 휠체어 신세

“대한민국에 배신당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돈 많고 백 있는 사람들이 아들 군대 문제로 용쓰는 까닭을 알겠어요.”



아들의 눈자위가 촉촉하다. 딱한 사정을 호소하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걸까? 눈을 감았다가 뜨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2005년 12월 쓰러진 뒤 정신병원 등에서 치료받다가 장애보상등급 3급으로 판정받고 2006년 2월 의병제대했다. 그러곤 2년 넘게 눈만 껌뻑거리며 침대에 누워 있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다.

“말짱하던 아들이 군대에서 미쳤다면 어떡하시겠어요? ‘아프다’고 말도 못한다면 어떡하시겠어요?”

아버지가 좌절한 까닭은 ①아들이 다쳤기 때문이고, 분노한 이유는 ②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며, 대한민국에 몸서리치는 까닭은 ③‘나 몰라라 하는’ 국가(육군, 국가보훈처)의 태도 때문이란다. 그의 아내는 “혹시 어머님 때문에 아드님이 미친 것 아닙니까?”라는 육군 간부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버지의 기억에 따르면, 아들이 위급한데도 군 관계자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큰 병원으로 곧바로 옮겼더라면…”이라며 마른 눈가를 훔쳤다. 정신과 담당자가 작성한 아들의 병원기록지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당시엔 아들이 아이처럼 띄엄띄엄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 나이와 학벌을 꼬투리 잡으면서 때리고 욕했다. 나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는데, 실수할 때마다 꼬투리 잡는 건 참을 수 없다. 하루 24시간 전투화를 신고 대기하고 2시간도 못 잤다. 발이 붓고 전투복엔 땀이 하얗게 굳었다.”

인권위 조사 통해 수면 부족·욕설 들은 사실 확인

아들은 ○○사단 △△연대 행정보급과에서 일했는데, 복수의 목격자에 따르면 그는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끼니를 ‘자주’ 걸렀다고 한다. 유모(24) 씨는 서울행정법원 증인신문 때 “행정보급관이 일처리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잠을 못 자게 하거나 식사도 못하게 했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정신병의 원인이 학대에 따른 스트레스”라고 여기고 부대에 항의했으나 부대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시라”고 조언하면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는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군복무와 정신질환 간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비해당 결정을 내렸다.

“천 번 만 번 양보해 군대와 정신질환 간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국가가 그렇게 처신하면 되나요? 나라라는 게 그런 겁니까? 거구의 아들이 약을 먹자마자 잠에 빠지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을 알기나 해요?”

아버지는 아들이 춤사위를 벌이는 사진을 보여주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눈물을 훔치면서 그가 말했다.

“아들 자랑 같지만…, 만능 스포츠맨이었어요. 우리 아들 멋지죠?”

빛바랜 사진 속 아들의 몸은 아버지 말마따나 씩씩했다. 지금 아들의 몸엔 뭉크러진 살이 붙어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실오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행정법원에 국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비해당 결정에 대한 취소소송을 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도 진정서를 내놓은 터였다.

인권위는 조사를 통해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한 점 △식사를 수차례 거른 점 △인격모독에 가까운 욕설을 들은 점을 밝혀냈다. 물론 군부대 관련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인권위는 동료 병사들을 조사해 ‘아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권위 결정을 전해 듣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어요. 군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희망을 발견했죠.”

아버지는 인권위 결정을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했고, 서울행정법원은 국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비해당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아들이 군부대에서 과중한 업무 및 직속상관의 가혹행위에 따른 스트레스로 사고를 당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인용된 아들의 단발적 발언은 그가 느낀 고통의 강도를 짐작케 한다.

“화낸다. 원사가. 나에게.”

“욕해요. 지금도 욕하네요. 영창 보낸다. 죽고 싶냐.”

“화났어요. 원사가 빨리 하라고.”

“울어요, 내가.”

“코피 나요, 내가.”

그러나 아들의 명예를 되찾고자 동분서주한 ‘아버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서울보훈병원의 태도가 미적지근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절망과 분노 때문이 아니란다. 그는 아들의 사진을 기자에게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려는 싸움이 아니에요. 그런 꼴을 당한 게 내 아들뿐일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설령 개인적 잘못으로 군에서 다쳤더라도 국가가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대한민국을 좀먹는 이런 파렴치를 바로잡고자 뛸 겁니다.”



주간동아 2008.08.26 650호 (p22~23)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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