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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촛불과 응원, 이란성 쌍둥이

“재협상” 그 목소리 어느새 “대한민국” … 멀고도 가까운 집회 모습 동전의 양면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촛불과 응원, 이란성 쌍둥이

촛불과 응원, 이란성 쌍둥이

촛불집회 (위)와 거리응원은 일견 비슷한 듯하면서도 차이를 보인다.

#1. 8월2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비록 초기에 비해 참가 인원은 대폭 줄었지만, 4월 말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서울 청계광장에 모여든 시위대는 자유발언과 노래공연 등을 진행하다 폭우가 쏟아지자 40여 분 만에 자진 해산했다. 비에 옷이 흠뻑 젖은 한 학생은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까지 나아가야죠”라며 다음 집회에 다시 참석할 것을 다짐했다.

#2. 8월13일 오후 5시가 넘어서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청계광장에 한국축구 대표팀 경기를 보려는 학생과 직장인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녁때부터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도 거리응원 열기를 막지는 못했다. 한 손에 응원도구를 들고 여분의 비옷을 준비한 사람들이 광장에 속속 모여들었다. 푹푹 찌는 날씨에 힘든 기색을 보이던 사람들도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여느 때처럼 박수를 치고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5, 6월 청계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베이징올림픽을 맞아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는 사람들로 바뀌어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온 꼬마, 중·고등학교 학생들에서부터 잠깐 짬을 내 나온 직장인, 노숙자까지. 모여든 이들은 ‘그때 그 사람들’ 그대로지만 손에 든 촛불은 각종 응원도구로 변해 있다.

촛불집회에 세 차례 참가했다는 여중생 김민지(15) 양은 오늘은 친구 3명과 올림픽 응원을 하기 위해 청계광장을 찾았다.

대규모 인원 공통의 에너지 발산



“박태환 선수가 수영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땄잖아요. 당시에는 집에서 TV로 봤는데 이번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고 싶어서 친구들과 왔어요.”

김양의 말에‘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촛불집회 광경을 보고 직접 현장을 찾았다’는 촛불집회 취재 당시 한 중학생의 말이 오버랩됐다. 김양은 당시의 선택을 지금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때는 대통령이 잘못한 거잖아요. 촛불집회 나간 거 후회 안 해요. 거리응원도 누구의 지시가 아닌 저 스스로 판단해서 나온걸요.”

중학생답지 않게 말하는 김양은 ‘촛불소녀’의 모습 그대로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인파에 묻힌 김양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대한민국”을 외친다. 물론 의미는 다르겠지만.

촛불집회와 올림픽 거리응원은 여러모로 비교가 된다. 거리응원을 위해 친구, 연인 등 2~3명씩 소규모로 광장을 찾는 것에서부터 단체로 나온 사람들까지, 대규모 인원이 모여들고 공통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은 촛불집회 당시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상 탈출의 기회가 아닐까요?”

한 학생의 말처럼 촛불집회와 거리응원은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해방공간 구실을 톡톡히 했거나 하고 있다. 촛불집회 이슈가 미국산 쇠고기였다면 거리응원 이슈는 한국 대표팀의 선전(善戰)이란 게 차이일 뿐. 촛불집회와 거리응원의 간극은 생각보다 좁게 느껴진다.

대학생 박규현(24) 씨는 “자발적으로 모이고, 같은 이슈에 공감하며,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촛불집회와 거리응원이 별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양자의 동질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촛불집회와 거리응원은 분명히 별개라는 반응도 존재한다. 그 반응도 양 갈래다. 그중 하나는 촛불집회의 순수성을 왜곡하지 말라는 것. 직장인 송모(34) 씨는 “응원은 응원이고 집회는 집회다. 별개 사안을 결부하는 건 무리 아닌가?”라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송씨의 말에 옆의 동료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촛불집회는 먹을거리와 관련된 거잖아요. 단지 동시에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 때문에 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죠.”

하나의 소통공간 간극은 몇 m?

반대로 대학생 이한영(25) 씨는 “스포츠는 즐기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논리가 개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촛불집회가 스포츠의 순수성을 희석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순수한 거리응원이 촛불집회로 변질될 것을 우려해 축구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경찰병력을 투입했다. 이쯤에선 촛불집회와 거리응원의 간극이 한 발짝 벌어진다.

가까워 보이면서도 먼 듯한 촛불집회와 거리응원. 둘 사이에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간극을 단절이 아니라 연결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386세대 이재민(39) 씨는 ‘소통’을 강조한다.

“이른바 386세대는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섰어요.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나가고 있지만 촛불집회든 거리응원이든 공통적으로 거리를 매개로 하죠.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리로 나가본 지금의 20대, 그리고 올해 촛불집회를 통해 거리에 나섰던 10대, 이들에게 거리는 하나의 소통공간이에요.”

오후 7시50분, 경기가 끝났다. 한국 팀은 온두라스에 1대 0 승리를 거뒀지만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같은 이슈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신명을 냈다는 점에서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촛불집회의 ‘그때 그 사람들’은 한국 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면 거리로 나올 것이다. 그때가 언제든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을 때도 다시 촛불을 들고 나설 것이다. 어쩌면 촛불집회와 거리응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지도 모른다. 붙어 있되 결코 서로를 바라볼 수 없는 묘한 관계 같은.



주간동아 2008.08.26 650호 (p20~21)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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