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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THOLOGY

뭐? 홀딱 벗고 191.78m 달리기?

고대 올림피아 경기 중 성스런 ‘휴전 선포’… 인류평화와 화합정신 면면히 계승

  • 김원익 신화연구가·문학박사 naklar@chol.com

뭐? 홀딱 벗고 191.78m 달리기?

뭐? 홀딱 벗고 191.78m 달리기?

전차 경기를 벌이는 펠롭스. 머리에 올리브관을 쓰고 있다(기원전 425년 꽃병). 오른쪽은 기원전 500년경 항아리에 새겨진 권투경기 장면. 왼쪽이 심판이다.

올림피아 경기에서 우승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걸 결심하기 전 먼저 올림피아 경기장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한다. 그곳에서는 엄격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식사 시간도 정해져 있고, 음식도 정해진 것만 먹어야 한다. 케이크도 없고 달콤한 음식도, 시원한 물도 없다. 와인도 마실 수 없다. 시간표에 따라 훈련도 받아야 한다. 본인 의사와는 아무 상관 없다. 찌는 듯한 더위에도 추위에도, 비가 내려도 마찬가지다. 트레이너에게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그런 다음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면 진흙탕 속에서 뒹굴어야 한다. 팔이나 다리를 삘 수도 있다. 먼지를 뒤집어쓸 수도 있고 매를 맞을 수도 있다. 운이 나쁘면 질 수도 있다. 좋다! 그래도 올림피아 경기에 나가고 싶다면 가서 싸워라!

-히에라폴리스 출신의 철학자 에픽테토스

고대 그리스에는 4개의 범(汎)헬레니즘 경기가 있었다. 범헬레니즘 경기란 전 그리스인이 참가해 축제처럼 벌이는 경기라는 뜻이다. 모두 신들을 기념하기 위한 경기였고 연극이나 음악 공연 등 문화행사도 열렸다. 범헬레니즘 경기는 ‘관(冠)경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승자가 나무나 식물의 가지로 만든 관을 부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모두 神들을 기념하기 위한 경기

올림피아 경기는 4년마다 제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올림피아에서 열렸다. 각 경기의 우승자에게는 머리에 올리브관을 씌워주었다. 피티아 경기는 4년마다 아폴론을 기념하기 위해 델피에서 펼쳐졌고, 우승자에게는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이스트미아 경기는 2년마다 포세이돈을 기념해 코린토스 근처의 이스트미아에서 열렸다. 우승자는 머리에 소나무관을 썼다. 네메아 경기는 2년마다 네메아에서 제우스를 기념해 열렸고, 우승자는 샐러리관을 썼다.



근대 올림픽은 이중에서 올림피아 경기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마땅히 우승자의 머리에 올리브관을 씌워주어야 제격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도 우승자에게는 모두 올리브관을 수여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올리브관을 “올리브로 만든 월계관”이라고 했다.

월계관이 이처럼 승리의 상징이 된 것은 고대 로마의 전통에서 유래한다. 고대 로마에서 맨 먼저 개선장군들이 월계관을 쓰고 행진을 벌였다. 월계관은 그 후 로마 황제가 쓰다가 점차 운동경기의 승자도 부상으로 받아 쓰기 시작했다. 그 영향으로 월계관은 오늘날까지 명예, 승리, 평화의 상징이 됐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생이 받은 것도 명칭은 월계관이지만 월계수로 만든 게 아니라 ‘북미산 참나무로 만든 월계관’이었다. 손기정 선생이 부상으로 받아 시상식에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 화분도 북미산 참나무 묘목이었다. 이 묘목은 그동안 거목으로 자라 ‘월계관수’라는 이름으로 현재 서울 만리동 손기정 기념공원에서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고대 그리스어로 월계수를 뜻하는 ‘다프네’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다가 월계수로 변한 요정 다프네를 떠올리게 한다. 아폴론은 자신의 사랑이 응답받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의 표시로 다프네가 변신한 월계수로 관을 만들어 쓰고 다녔다. 현재 그리스를 상징하는 문장도 월계관이다.

올림피아 경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벌어진 4대 경기 중 가장 크고 중요한 스포츠 행사였다. 이 경기는 기원전 776년부터 기원후 393년까지 4년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엘리스의 올림피아에서 여름에 열렸다. 올림피아 경기와 경기 사이의 4년 동안을 ‘올림피아데’라고 했다. 올림피아데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 단위로 흔하게 쓰였다.

올림피아 경기의 역사는 기원전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먼저 헤라클레스가 자신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우게이아스에게서 엘리스를 빼앗고 창설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펠롭스가 전차 경주에서 속임수를 써 장인 오이노마오스를 이기고 죽인 다음 그 죄를 씻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합각머리 벽에는 펠롭스의 전차 경주가 조각돼 있다.

북미산 참나무로 만든 손기정 월계관

올림피아 경기는 원래 달리기 한 종목밖에 없었다. 거리는 1스타디온. 현재 거리로 환산하면 191.78m다. 우승자는 제우스 신전 앞의 제단에 횃불을 점화했다. 그것은 특별한 명예로 여겨졌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달리기 경주의 우승자 명단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776년 것이다. 고대 올림피아 경기의 시작을 기원전 776년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림피아 경기가 벌어지는 동안에는‘에케케이리아’라는 ‘성스러운 휴전’이 선포됐다. 경기장에 무기를 들고 올 수도 없었다. 누구나 안전하게 올림피아에 들락거릴 수 있었다. 경기의 경호는 스파르타인이 맡았고, 조직은 올림피아가 있던 엘리스인이 담당했다.

뭐? 홀딱 벗고 191.78m 달리기?

고대 달리기 선수들(기원전 540년경 꽃병).

육상경기는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자유시민 남자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수는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에게서 태어나고,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자유시민 남자여야 했다. 결혼한 여자나 노예들은 경기를 구경할 수 없었다. 만약 이 규칙을 어기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초창기 올림피아 경기의 선수들은 아마추어적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점차 직업선수로 변해갔다. 우승자는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우승자는 올리브관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올림피아의 알티스라는 성스러운 숲에 자신의 입상을 세울 수 있었다. 고향에 돌아가서 엄청난 혜택을 누린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세금 감면뿐 아니라 연극관이나 축제에서 상석에 앉았고 시인들의 찬가를 받기도 했다. 공공기관의 식당에서 무료로 식사할 수도 있었으며 상금도 받았다. 아테네의 솔론 왕은 올림피아 경기 우승자에게 300드라크마를 주었다. 1드라크마는 당시 노동자의 일당이었다.

고대 올림피아에서는 여자들만을 위한‘헤라이아’라는 경기도 열렸다. 이 경기는 헤라 여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올림피아 경기가 개최되는 해를 피해 4년마다 열렸다. 이 경기의 우승자에게도 올리브관이 주어졌고 경기 후 헤라 신전에 입상을 세울 수 있었다.

올림피아 경기 10개월 전에는 훈련캠프가 세워졌다. 그곳에는 선수들을 위한 훈련소, 욕실, 숙소, 도서관 등이 있었다. 선수들은 늦어도 경기 개시 30일 전에는 이곳에 들어와야 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선수촌’이라 할 수 있지만 선수들은 공동의 프로그램에 따라 한 달간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소금을 치지 않은 신선한 치즈, 보리죽, 밀빵, 마른 무화과 등 특별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 음료수로는 물만 제공됐고 와인은 금지됐다. 현대적 의미의 도핑검사는 없었지만 가끔 고향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다가 압수되는 경우도 있었다.

올림피아는 수세기가 지나면서 점점 종목이 많아졌다. 경기 기간도 하루에서 5일로 늘어났다. 경기는 하지 이후 보름달이 처음으로 뜨고 난 직후인 한여름에 개최됐다. 첫날은 선수들과 심판들이 제우스 신에게 제물을 바친 뒤 경기의 평화와 경기 규칙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

오후에는 소년들의 달리기, 레슬링, 권투 경기가 열렸다. 일종의 본 게임에 대한 오픈게임인 셈이다. 둘째 날에는 경마와 전차 경기 그리고 올림피아 경기의 하이라이트인 5종 경기가 열렸다. 5종 경기는 ‘펜타틀론’이라고 하는데 원반던지기, 넓이뛰기, 창던지기, 달리기, 레슬링을 말한다. 셋째 날에는 황소를 신들에게 제물로 바친 뒤 달리기 경주가 벌어졌다. 장거리에 이어 단거리, 마지막에는 반환점을 돌아오는 경주를 했다. 부정 출발한 자는 태형을 받았다. 넷째 날에는 레슬링, 권투, 격투기 그리고 중무장 보병으로 완전군장한 채 달리는 경주를 했다.

여사제 복장 성화 채화 퍼포먼스

격투기는 ‘판크라티온’이라고 하는데 권투와 레슬링이 혼합된 것으로 온몸을 사용해 싸우는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우승자가 제우스 신전까지 행진을 하고, 이어서 축제가 벌어졌다.

고대 그리스의 4대 경기에서 두 번 이상 우승한 사람은 ‘페리오도니케’라는 당시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받았다. 고대 그리스 4대 경기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사람으로는 크로톤 출신의 밀론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레슬링 종목에서 6차례나 페리오도니케를 거머쥐었다. 올림피아에서 6번, 델피에서 7번, 이스트미아에서 10번, 네메아에서 9번 우승했다.

고대 올림피아 경기에서 원래 성화 채화는 없었다. 성화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 칼 딤이 처음 도입한 것이지만 그 근거는 설득력이 있다. 고대에도 이와 비슷한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피아 경기가 시작되기 전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선수들을 이끌고 신전 북쪽 공터에 마련된 장작더미 제단으로 가 불을 붙이면서 개회를 선언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불을 담당했던 신은, 로마에서는 베스타라고 불렀던 헤스티아 여신이었다. 4년마다 성화를 채화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고대 그리스 복장을 한 여인들도 헤스티아 신전의 여사제로 분장한 것이다.

헤스티아는 화로나 난로의 여신으로, 얼굴 없는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화로나 난로의 이미지처럼 아무 말 없이 언 몸을 녹여줄 뿐이다. 그녀는 한 번도 분쟁이나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없다. 헤스티아는 제우스가 티탄신들과 싸울 때도 한쪽에 비켜서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평화와 화합을 사랑했다.

베이징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왔다. 과연 이번 올림픽은 인류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잘 구현할 수 있을까?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중국의 올림픽’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주간동아 2008.08.12 648호 (p50~52)

김원익 신화연구가·문학박사 naklar@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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