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8

2008.08.12

제2의 히딩크 초빙? 한국 안 갑니다

지식경제부 글로벌 인재 공모 외국인 반응 썰렁 연봉·조직문화 등 어려움 대부분 거절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8-08-04 13: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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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히딩크 초빙? 한국 안 갑니다
    외국인 예보관 영입 문제로 입씨름을 벌이던 환경부와 기상청이 결국 외국인 기상전문가를 고위공무원으로 영입하는 쪽으로 합의(?)했다. 외국인 카드로 ‘기상중계청’이라는 오명(汚名)을 씻고 예보 적중률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외국인 전문가는 우리의 고충을 해소해줄 ‘해결사’로 통하고 있다. 두바이금융센터 데이비드 엘든 원장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으로 임명한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외국인도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법도 바꿨다. 그동안 계약직 외에는 외국인을 채용할 수 없었지만 한나라당은 2월 신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국가공무원법을 개정, 외국인을 정무직 및 별정직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채용 분야도 국가안보, 보안 및 기밀에 관계되는 곳을 제외한 모든 분야로 확대했다. 이로써 이명박 정부는 외국인 인력에 대한 ‘열린 태도’를 제도적으로 완료했다.

    이제는 외국인 공무원이 한국 정부에 마음을 열 차례. 그러나 ‘제2의 히딩크’는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7월1일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는 ‘제2의 히딩크, 로이스터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외국인 전문가 영입 의욕을 대외적으로 천명했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실패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지경부는 산하 6개 출연연구원 원장으로 연구 전문성과 경영 능력을 겸비한 외국인을 모셔오겠다며 ‘글로벌 공모’에 나섰다. 이를 위해 사상 최초로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재발굴위원회(Search Committee)를 발족했다. 지경부는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 감독으로 혁혁한 성과를 거둔 축구감독 거스 히딩크, 야구감독 제리 로이스터처럼 정부 출연 연구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외국의 우수 과학기술 전문가를 발굴하는 활동을 추진하겠다”며 “이와 관련해 인재발굴위원회 위원을 외국에 직접 파견, 공개모집에 응하도록 권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6개 출연연구원은 한국전기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등이다.

    외국인 인력 ‘열린 태도’ 제도 정비 완료



    7월25일 지원서 접수가 마감됐다. 그런데 외국인이 지원한 기관은 한 곳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간동아’ 취재 결과 6개 인재발굴위원회 가운데 “외국인 후보를 추천, 공모에 응하도록 했다”고 밝힌 위원회는 한 곳에 그쳤다. 지경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몇 명의 외국인이 지원했는지 밝힐 수 없지만 있긴 있다”며 “그러나 완전한 외국인은 아니고 외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노랑머리’든 ‘검정머리’든 외국인 전문가들이 한국행을 꺼리는 이유로는 연봉, 조직문화, 언어 문제가 꼽힌다. 인재발굴위원회에 참여한 한 헤드헌터는 “연봉이 많은 것도, 계약서상의 임기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매력적인 제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주로 외국에서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한국 교포들에게 전화와 e메일로 연락했는데 다들 생각이 없다고 했다”며 “자연히 해외출장을 나갈 이유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 대학교수는 “6월30일에 첫 회의를 했는데, 지경부는 7월17일까지 외국인 후보를 찾아내라고 했다. 외국에 사는 사람에게 3주 만에 한국행을 결심하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지경부가 일정을 촉박하게 잡은 것이 외국인 영입 실패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꼬집었다.

    외국인 예보 해결사 영입 실패

    ‘외국인 예보 해결사’를 찾겠다는 기상청도 이미 5월 외국인 영입에 실패했다. 4급에 해당하는 총괄예보관 자리에 외국인을 초빙하기 위해 미국 영국 일본의 전현직 예보관들과 접촉했지만 모두 한국행을 거절했다고 한다. 반응이 냉담한 이유는 두 가지. 해당 지역에서 오랜 경험이 축적돼야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다는 점, 대우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4급 공무원 수준 이상으로 급여를 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외국인 영입에 있어서 한국 정부는 제도를 갖췄으되 ‘영입전술’은 제로(0) 상태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파격적인 대우, 권한 보장, 언어문제 해소가 선결돼야 외국인 전문가 영입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2007년 가을 윌리엄 라이백 홍콩 통화감독청(HKMA) 부청장을 한국 금융감독원 특별고문으로 영입한 이승희 전 국회의원(통합민주당)은 “한국에서의 경력이 중국 일본으로 진출하기에 앞서 경험을 쌓고 동양적 문화를 익히는 데 유리한 장점이 된다는 사실을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국인들

    데이비드 엘든 … 윌리엄 오벌린 등 대표적


    ‘외국인 프렌들리’를 천명한 이명박 정부에는 어떤 외국인들이 몸담고 있을까. 행정안전부 인사정책과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 정무직이나 별정직으로 채용된 국가공무원은 없다. 얼마 전 미국 시민권자이면서 ‘폐암의 대가’로 유명한 이진수 박사가 국책의료기관인 국립암센터 부속병원장으로 임명돼 화제를 모았다. 한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남표 총장도 미국 국적이다.

    청와대에는 정식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무원 대우’를 받는 노랑머리 외국인들이 있다. 주로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소속으로 데이비드 엘든(영국)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특별고문을 비롯해, 위원인 윌리엄 오벌린(미국) 보잉코리아 대표이사, 장 마리 위르티제(프랑스) 르노삼성자동차 대표이사, 마사키 무라카미(일본) 서울재팬클럽 이사장 등이다. 서 총장은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메일 인터뷰 윌리엄 라이백 전 금융감독원 특별고문

    “상대적으로 낮은 공무원 급여 외국인 영입 어려울 수 있다”


    제2의 히딩크 초빙? 한국 안 갑니다
    2007년 가을 한국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윌리엄 라이백(William Ryback·사진) 홍콩 통화감독청 부청장을 부원장급 특별고문으로 영입했다. 우리나라로선 사상 첫 외국인 고위공직자 실험이었다. 그는 ‘금융계의 히딩크’로 불리며 국내 금융감독체계를 선진화하고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그러나 부임 6개월 만인 지난 4월 그는 돌연 한국을 떠났다. 그의 사퇴에 대해 금감원은 “개인적 사정으로 고국으로 돌아가길 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언론사와의 짤막한 인터뷰에서 “여기엔 내가 할 일이 없다(There’s no room for me)”라는 말만 남겼다.이명박 정부는 한쪽으로는 외국인 공직자 채용을 위해 법까지 뜯어고치고, 다른 한쪽으로는 어렵게 영입한 외국인 전문가를 놓친 셈이다. 금융가에서는 “금감원 고위간부들이 언어문제로 라이백 고문과 소통이 어려웠다” “금감원이 라이백 고문에게 실질적 권한이 있는 자리를 주길 꺼렸다”는 말이 나돌았다. 결국 한국 공직사회의 조직문화가 외국인 활용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주간동아’는 최근 미국 버지니아에 머물고 있는 라이백 전 고문과 e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 6개월 만에 금감원을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

    “(새 정부가 출범한 뒤)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위원회 및 정부 조직이 개편되면서 내게 명확한 역할(clear cut role)이 주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조직체계에서 어떤 자리도 제안받지 못했다.”

    - 스스로 금감원을 떠나길 원했는가.

    “생각이 좀 복잡했다. 나는 금감원에서 일하는 게 즐거웠다. 금감원 직원들은 미국이나 홍콩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만큼 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새로운 조직체계에서는 금감원의 독립성이 약해질 것이 우려됐다.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한국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 당신에 대한 실패에도 한국 정부는 외국인 전문가를 정부 영역에 영입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런 한국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 정부가 외국인을 공직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공무원의 비교적 낮은 보수 때문에 어려울 수 있다. 또한 국제계약에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혜택, 예를 들어 가족을 위한 교육과 이동의 편의 제공 등을 (보수에) 포함시키고자 한다면 한국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비용 수준이 될 수 있다. 물론 나는 통상적인 혜택 없이 낮은 급여를 받고 (한국에) 갔었다.”

    - 근황은?

    “매우 잘 지낸다. 고향집에서 정원도 가꾸고 여행도 다니고 있다. 새로운 자리 제안(job offers)을 몇 개 받은 상태다. 또 내년 5월까지는 금감원의 비상근 고문으로 계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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