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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돈’보다 짜릿한 ‘손맛’에 낚이다

검거된 할머니 소매치기단은 부동산 부자들… 리더 임모 씨는 벤츠 등 차 3대나 굴려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돈’보다 짜릿한 ‘손맛’에 낚이다

봄기운이 완연했던 5월 중순 어느 날,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최영준 형사는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인사동과 동대문을 돌았으면 이제는 남대문에도 한 번쯤 찾아올 때가 됐다’는 소매치기범 전담 형사의 육감 때문이었다. 최 형사가 찾는 상대는 서울·경기 지역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그쪽 업계에서는 ‘드림팀’이라 불리는 할머니 소매치기단 ‘봉남파’였다.

그렇게 3시간쯤 흘렀을까. 그의 직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시장통에 자리한 한 상가건물에서 드디어 최 형사는 할머니들과 조우했다. 온몸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소매치기범들은 보면 금세 알죠. 일반인들의 눈과는 전혀 다릅니다. 10년 넘게 소매치기만 잡다 보니 내 눈도 소매치기범들과 비슷해졌습니다.”

평균연령 60.5세, 평균 전과 17.5범

하지만 그날 최 형사는 할머니들을 검거하지 못했다. 형사가 소매치기범을 알아보듯 그들도 형사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최 형사의 눈썰미보다 소매치기 경력 수십 년인 할머니들의 눈은 그날따라 더 빨랐다.



최 형사는 그날 이후 꼬박 두 달간 할머니들을 추적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간 다시 나타나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11년 경력의 베테랑 형사도 슬슬 지쳐갔다.

최 형사가 할머니들을 다시 만난 곳은 인사동의 어느 상점이었다. 7월5일, 최 형사는 이날이 할머니들을 잡을 기회라고 직감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기술과 순발력도 만만치 않았다. 70세 일본인 관광객에게 접근해 가방에 있던 지갑을 빼낸 뒤 유유히 사라졌지만 안타깝게도 최 형사는 지갑 빼내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가게에는 CCTV가 있었고 최 형사는 오랜 추적을 마감할 단서를 확보할 수 있었다. 최 형사는 CCTV와 피해자의 진술을 확보해 할머니들의 범죄를 입증할 준비를 마친 뒤, 드디어 할머니들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최 형사와 할머니들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형사가 처음 경찰에 몸담았을 당시 이미 할머니들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선수’들이었다. 신참경찰이 감당하기에는 분명 버거운 상대. 눈으로 보고도 못 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로 할머니들의 기술은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그때부터 최 형사의 마음속에는 ‘언젠가는 내 손으로 꼭 잡아야지’ 하는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 꿈은 꼭 10년 만에 이뤄졌다.

알려진 바와 같이 ‘봉남파’ 할머니들의 평균연령은 60.5세다. 평균 전과도 17.5범에 이른다. 주로 서울과 경기도 일대 백화점과 재래시장 등에서 소매치기를 일삼아온 이들은 최고령인 장모(70) 씨와 임모(67) 씨를 주축으로 유모(52) 씨, 이모(53) 씨가 함께하는 형태로 활동해왔다.

할머니들의 주특기는 가방의 지퍼를 열고 지갑을 빼내는 기술이다. 칼은 전혀 쓰지 않았다. 역할은 철저히 분담했는데, 최고령인 장씨와 임씨가 가방을 열고 지갑을 훔치는 ‘기계’ 역할을 맡고 50대인 유씨와 이씨는 현장 10여 m 뒤에서 망을 보는 ‘안테나’와 주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바람’ 역할을 하는 식이었다. ‘기계’인 장씨와 임씨는 각각 소매치기 등으로 전과 24범, 20범 전력을 갖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할머니는 소매치기들 사이에서는 가히 전설적인 존재로 통한다. 기술에서는 업계 최고라는 설명. 워낙 유명하다 보니 할머니들도 서로의 존재를 수십 년 전부터 알고 있었고 1970년대부터 수차례에 걸쳐 동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0년대 초, 우연히 교도소에서 만난 이들은 본격적으로 ‘조직’을 구성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동이 힘든 연령대임에도 패션이 바뀔 때마다 유행하는 가방을 사들여 연습까지 해가며 소매치기를 했을 만큼 자신들의 ‘일’에 열심이었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이들 할머니는 올해도 이미 두 차례 경찰에 붙잡혔지만 번번이 법망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장씨와 임씨가 5월 광명에서 붙잡혀 경찰에 자진출두해 조사를 받았고, 2월에는 이씨가 강남에서 붙잡힌 적이 있지만 이들은 그때마다 고령의 나이, 정신병 등을 이유로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 경찰에 붙잡힐 경우 한 명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는 것이나 전주(錢主)인 임씨가 할머니들의 변호사 비용 등을 모두 대는 식으로 뒷바라지한 것도 조직을 운영하는 나름의 노하우였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이들 할머니의 살림살이는 썩 괜찮은 편이다. 리더 격인 임씨의 경우 서울에 5층짜리 빌딩을 소유하고 있으며 아들을 미국에 유학시킬 정도로 넉넉했다. 1억원을 호가하는 벤츠 자동차와 그랜저 XG를 포함해 승용차만 3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고급 자가용들은 할머니들의 ‘작업’ 때마다 운송수단으로 사용됐다. 장씨도 부천에 2층짜리 빌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유씨는 이탈리아식 고급 레스토랑을 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할머니들을 검거한 최 형사는 “이들 할머니는 다른 소매치기들과는 달리 벌어들인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재테크에 신경 쓰는 등 관리를 잘했다. 지난 10여 년간 사들인 부동산이 최근 크게 오르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자녀들에게 직업(?) 철저히 숨겨…체포 후 “해외여행 다녀올게”

겉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도 꾸리고 있는 이들은 자녀들에게만큼은 자신들의 ‘직업’을 철저히 숨겨왔다. 유씨의 경우 경찰에서 조사받던 도중 형사의 전화를 빌려 출가한 딸에게 “멕시코에 가서 몇 달 살다 오겠다”고 말하는 식으로 범죄를 감춰왔다는 것. 조사를 맡은 형사들도 유씨의 태연한 태도에 넋이 나갈 정도였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범죄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개인 신상이 공개되자 그 책임을 묻는 진정서를 경찰청에 제출할 정도로 가족들에게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검거를 지휘한 광역수사대 박충민 반장은 “씁쓸하고 안타깝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할머니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미생활을 하듯 소매치기를 해왔습니다. ‘짜릿함’에 대한 중독이라 할 수 있죠. 그렇다고 정신병은 아닙니다. 검거에 대비해 늘 가방에 정신병력 치료기록을 가지고 다닐 만큼 치밀하게 준비하는 지능적인 사람들입니다. 출소한 뒤에도 걸어다닐 힘만 있으면 소매치기를 계속할 사람들이죠. 생각해보면 참 불쌍한 인생입니다.”



주간동아 2008.08.12 648호 (p28~29)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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