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3

2008.07.08

지하철 무인매표시스템 득보다 실

서울도시철도공사 전면 시행 2개월 … 전서비스 강화 체감 못하고 민원인들만 이래저래 불편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8-06-30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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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한 민원으로 역무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보니, 매표소 문을 닫아놓은 채 매표나 민원 업무를 처리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
    지하철 무인매표시스템 득보다 실

    자동매표를 실시한 뒤 매표소에서 역무원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한 여성이 우대권을 가져가는 모습.

    “또이러네.”

    6월23일 오전 8시30분. 서울 지하철 5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공덕역은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정순임(47·여) 씨는 회사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교통카드를 개찰기에 댔으나 ‘삑’ 소리만 날 뿐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시 찍고 나오긴 했지만 요금이 2배로 빠질 거란 생각에 역무원을 찾았다. 이미 매표소는 다양한 이유로 찾아온 사람들로 줄이 늘어서 있었고, 고작 하나의 매표창구만 ‘불완전’하게 개방돼 있었다. 정씨는 다급한 마음에 물어보기를 포기한 채 걸음을 옮겨야 했다.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이하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07년 5월 일부 역에서 탄력적으로 실시하던 ‘무인매표시스템’(전철표 발권 및 교통카드 충전 자동화)을 4월14일 야심차게 전면 시행했다.

    매표업무의 부담을 줄이고, 자동화를 통해 남게 되는 매표소 직원을 안전서비스요원으로 전환해 고객 안전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주된 취지다. 안전서비스요원들이 에스컬레이터 관련 사고를 방지하고, 취객과 장애인을 돕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설명이다. 하지만 도입 취지와 달리 여러 부분에서 크고 작은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들 “무인매표와 창구 운영 동시에 하자”



    7호선 이수역. 제도 도입 초기 홍보가 부족했다는 지적에 지하철 곳곳에 ‘무인매표시스템’을 설명하는 스티커를 붙여놨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역무원을 찾는다. 찾는 이유도 ‘승차권이 나오지 않는다’ ‘교통카드가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같은 발권업무에 한정되지 않는다.

    매표소는 ‘옆에 있는 자동매표기를 이용하세요’라는 문구가 붙은 채 닫혀 있다. 문구를 따라가니 승차권 자동발매기와 교통카드 충전기는 2~3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있는 것들도 기계에 따라 ‘구권만 사용됩니다’ ‘신권만 사용됩니다’로 나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역마다 하루에 적게는 4000명에서 많게는 7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이용하는 지하철역을 무인매표시스템에만 맡겨두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출근시간(오전 7시30분~오전 9시)과 퇴근시간(오후 6시~오후 8시30분)에는 매표소를 열어 고객의 민원을 받는다지만 역부족이다. 야간근무제도도 없어져 밤 10시 이후부터는 1~2명의 직원만 근무해 야간 위험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양한 민원으로 역무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보니, 매표소 문을 닫아놓은 채 매표나 민원 업무를 처리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7호선 매표소의 한 직원은 “자동매표기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발권 같은 경우는 자동매표기를 사용하도록 권유한다. 매표소에서는 이런저런 민원들을 들어주고 해결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 아니라, 매표소 문을 열어 무인매표시스템과 동시에 운영하자는 의견도 시민들 사이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5호선 서대문역에서 만난 김경석(25) 씨는 “1만원 중 5000원만 충전하고 나머지는 거슬러 받고 싶어 매표소를 찾았다. 역무원이 매표소에 있으면 다행이지만 가끔 문이 닫혀 있는 경우엔 난감하다”면서 “차라리 무인매표소는 무인매표소대로 운영하고, 직원들이 있는 매표소도 함께 열어놓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불만을 털어놨다.

    무인매표시스템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하철 8호선을 타고 출퇴근한다는 이재선(27·여) 씨는 “매표소만 닫아놓은 채 역무원들은 매표소 안에서 나오지 않는 것 같다”며 “안전서비스요원이 많아졌다고 해서 서비스가 나아진 것은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역무원들을 안전서비스요원으로 전환해 활동하게 한다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설명과 달리 지하철역은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교통카드 충전기와 자동발권기가 있는 무인매표기기 앞에는 대한노인회 등에서 나온 노인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지만,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장애인들이 이동하거나 지하철이 들어올 때 관리하는 사람도 대부분 공익근무요원이었다.

    지하철 무인매표시스템 득보다 실

    6월24일 한 시민이 자동매표기에서 승차권을 뽑고 있다.

    공사 측 “아직은 과도기 상황 … 차츰 나아질 것”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무인매표시스템 운영이 과도기인 데서 나오는 불만이라며 차츰 나아지리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고객서비스지원팀 유제남 차장은 “자동매표기기를 통한 승차권 구입이 5%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대부분 교통카드로 지하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대당 400만원에 이르는 신권자동발권기기를 늘리는 것은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무인매표시스템과 매표소를 함께 운영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역내 무인매표시스템 도입은 세계적 추세”라면서 “매표소와 무인매표시스템을 동시에 열어두면 사람들은 매표소만 이용하려 든다. 무인매표시스템의 정착을 위해서는 매표소 완전 개방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안전서비스요원으로서의 활동이 체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유 차장은 “실제로는 활동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확인을 못하고 지나쳐서 그렇다”며 “매표소 안에서 나오지 않은 채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시민들은 매표소를 찾는 이유가 단지 표를 사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안전서비스요원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오히려 서비스 질이 떨어졌다면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앞서 정순임 씨가 왜 그냥 매표소를 지나쳐야만 했는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를 때 ‘야심찬 무인매표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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