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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마침내 우표로 환생한 ‘단군왕검’

우정사업본부 특별우표 7월10일 발행 … 중국 동북공정 정부 차원서 통쾌한 반격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마침내 우표로 환생한 ‘단군왕검’

마침내 우표로 환생한 ‘단군왕검’

우정사업본부가 제작을 완료해 발매 시기를 기다리는 ‘단군왕검 특별우표’.

우리나라는 4대 국경일로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을 꼽아왔다. 그런데 올해부터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됐으니 삼일절과 광복절 개천절이 3대 국경일이 된 셈이다.

세계 각국을 자주 다녀본 사람들은 눈치챘지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그로 인해 한국인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한국인의 치부가 하나 있다. 적잖은 한국인들은 자주의식과 민족의식이 강하다고 자부하지만, 한국은 ‘국경일 행사를 가장 형편없이 치르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국경일을 국가 경축일답게 치른다. 정부기관은 물론 사회단체들까지도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행사를 펼치며, 국민도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한국의 국경일은 빈둥거리고 놀 수 있는 공휴일에 지나지 않다.

단군우표 지금껏 한 번도 발행 못해

한국인들이 가장 정성 들여 치르는 공휴일은 설과 추석이다. 크리스마스와 부처님 오신 날에도 대단한 행사가 열린다. 조상 모시는 날과 종교기념일의 국민적 열기는 국경일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을 눈여겨봐온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민족의식이 강하다”고 주장하면, 뒤돌아서서 “당신들은 국가를 위한 민족의식보다 신을 받드는 제례의식이 더 강한 국민”이라고 지적한다.



국민에게는 의미 없는 국경일이지만, 한국 정부는 국경일을 기념하기 위해 많은 우표를 발행해왔다. 삼일절 기념우표, 광복절 기념우표, 제헌절 기념우표 등등. 1884년 처음으로 이 땅에 우표가 발행됐으니 올해로 124년의 우표 발행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124년의 우표 발행 역사에서 개천절 기념우표나 국조(國祖) 단군 등을 기념하는 우표는 단 한 번도 발행된 적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다.

대한민국을 이끈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기독교 신자이거나 불교 신자였다.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박사를 제외하면 단군을 숭배한 사람이 정부 요직에 들어간 적이 없다. 한국을 이끈 파워 엘리트 중에는 기독교 세력이 우세한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단군 숭배를 우상 숭배라며 배격하려 했다. 이런 이유로 단군 우표와 개천절 기념우표는 단 한 번도 발행되지 못했다.

7월10일 이 금기가 드디어 깨진다. 이날 지식경제부 산하 우정사업본부가 단군왕검 특별우표를 발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이 우표는 개천절에 발행돼야 한다. 그런데 단군은 물론 환웅, 웅녀, 고조선과도 아무런 연관이 없는 7월10일에 발행되는 데는 말 못할 사연이 있다. 단군상의 목을 자르면서까지 국조 숭배를 반대해온 일부 기독교인들의 반발이 그것이다. 이러한 반발을 최소화하려면 단군이나 고조선과는 무관한 날에 단군왕검 우표를 발행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름도 기념우표가 아닌 특별우표로 정했다. 날짜를 피하고 이름을 바꿔 탄생시키긴 했지만, 실무자들은 이 우표를 제작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그림을 완성하기 전에 고조선과 단군을 연구해온 학자, 기관을 찾아가 일일이 고증을 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단군왕검의 옷 색깔이다.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는 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조상은 흰옷만 입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고조선 시대의 옷을 연구해온 상명대 박선희 교수(사학)에 따르면, 5000여 년 전 우리 민족의 지배층은 이미 색깔 있는 옷을 입었다고 한다. 박 교수는 고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옷과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지배층의 복식(服飾)을 연구한 결과, 피지배층은 염색하지 않은 옷을 입었을지 몰라도 지배층은 문양이 들어간 다양한 색의 옷을 입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박 교수의 고증 덕에 단군은 푸른색, 환웅과 웅녀는 각각 무늬가 있는 황금빛과 분홍빛 옷을 입은 사람으로 고쳐졌다.

옷 색깔 바꾸고 장년 모습으로 그려

마침내 우표로 환생한 ‘단군왕검’

우정사업본부는 특별우표 일부인(日附印)에 비파형 동검을 넣음으로써 고조선은 실제로 존재한 국가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있다.

고조선은 청동기시대 국가다. 한민족이 만든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은 비파형 동검이다.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출토되는 비파형 동검은 황하유역에서 출토되는 중국식 동검과는 모양이 전혀 다르다. 고조선은 비파형 동검으로 대표되는 청동기 문명을 가진 환웅족과 신석기 문명을 가진 웅녀족이 만나 결혼동맹을 맺음으로써 탄생했다.

처음으로 단군에 대한 기록을 남긴 ‘삼국유사’는 환웅을 하늘에 사는 환웅천왕으로 표현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 같은 점을 반영해 비파형 동검을 가진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린 채 구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그림으로 첫 번째 우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비파형 동검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해 단군왕검 특별우표를 위한 일부인(日附印)에 비파형 동검을 넣었다.

두 번째 우표에는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마늘을 주고 삼칠일을 금기하라고 말하는 모습을, 세 번째 우표에는 환웅과 웅녀가 아기 단군왕검을 안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네 번째 우표에 단군왕검의 초상화를 넣기로 했는데, 여기서 단군왕검을 어느 나이의 어떤 모습으로 그릴지가 문제 됐다고 한다.

단군영정은 단군성전을 운영하는 현정회가 만든 것과 1977년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부)가 만든 것, 북한이 만든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단군왕검의 모습을 정리할 수 없어 사실상 새로운 단군왕검상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년이 아닌 장년의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나라를 세울 때의 강인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단군왕검상을 만들었다.

우정사업본부가 단군 특별우표라고 하지 않고 ‘단군왕검 특별우표’라고 한 것은 단군과 단군왕검을 구분하기 위한 조치다. 최근 연구들은 단군이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47대를 이어온 고조선 왕조의 지배자 이름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첫 번째 단군에 오른 사람의 이름이 왕검이고, 47대 단군에 오른 사람은 고열가라는 것이 최근 강하게 대두되는 주장이다. 따라서 국조는 1대 단군인 왕검이어야 하기에 우정사업본부는 단군왕검 특별우표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우정사업본부의 단군왕검 특별우표 발행은 중국이 펼친 동북공정 공세에 대한 우리 정부 측의 반격이기도 하다. 우상 숭배를 이유로 단군을 부정하려는 일부 기독교계 인사들의 방해를 극복하고 신화라는 이름으로 방기돼 있던 국가 창건사를 되찾으면서 중국이 펼친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한 우정사업본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주간동아 2008.07.08 643호 (p20~21)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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