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8

2008.06.03

공기업 향한 檢의 칼 어디까지 찌를까

구조조정과 과거 정권 비리청산 겨냥?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8-05-27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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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업 향한 檢의 칼 어디까지 찌를까

    한국석유공사를 압수수색한 대검 중수부 수사관들이 주요 자료를 검찰로 옮기고 있다.한국석유공사를 압수수색한 대검 중수부 수사관들이 주요 자료를 검찰로 옮기고 있다.

    공기업 비리 수사에 전 검찰이 나섰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사건 이후 2년여 간 움직임이 없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중수부)까지 메스를 들었다. 한마디로 전방위 수사다.

    검찰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이처럼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한 배경을 두고 온갖 해석이 난무한다. 이 가운데 이번 검찰의 행보와 현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및 과거 정권의 비리 청산 의지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는 정치적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직후인 2003년 초 대선자금 수사로 대변되는 검찰의 강공이 이번에는 공기업 전면 수사라는 방법으로 펼쳐지리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 과연 이번 수사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5월9일 대검찰청(이하 대검)은 최재경 수사기획관이 주책임자로 명기된 12쪽짜리 보도자료를 출입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5월13일 조간 보도용으로 배포된 이날 보도자료에는 공기업 및 국가보조금 비리를 철저히 단속하겠다는 대검의 방침이 담겨 있었다.

    대검은 이날 정부 지원금 및 공기업 관련 비리를 밝혀낸 각 지방청의 실적도 함께 공개했다. 사회복지법인 이사장의 국가보조금 14억원 횡령, 국립대 법학과 교수의 수억원대 고용보험기금 부정수급, 문화재 조사기관의 용역비 편취 등이 그 예다.



    “정치적 목적은 없다” 검찰 확대 해석 경계

    또한 대검은 4월15일 수도권 특수전담 부장검사 회의를 연 자리에서 주요 공기업까지 그 범위를 확대해 관련 비리를 집중 수사토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특히 중대 사안에 대해선 대검 중수부가 직접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검찰의 강경 행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이 대통령이 대선 직전 공기업 민영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당선 여하에 따라 사정기관 등을 통해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집중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비중 있게 흘러나왔던 것.

    대선이 끝나고 과거 두 정부에서 반복된 악순환의 고리를 제거하려는 자체 규명 작업이 대통령직인수위(이하 인수위)에서 비공식적으로 논의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구체화됐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은행과 각 기업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사용 및 회수 부분, DJ와 노무현 정부에서 논란이 된 대북 지원 등 각종 비리 의혹들에 대한 재검증 필요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으며, 이 과정에서 그동안 쌓여온 공기업 비리의 처리 문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당시 인수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공부문의 강도 높은 개혁은 이 대통령의 최우선 공약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인수위 내에서도 어떻게든 공기업 문제를 털고 가야 한다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의제가 모아졌다”고 말했다.

    검찰은 공기업에 대한 수사에 정치적 목적은 없다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감사원 등을 통해 공기업 내 윤리의식이 마비된 실상이 속속 드러난 데다 DJ와 노무현 정부에서의 공기업 낙하산 인사, 적자 비대화 논란 등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가 넓게 형성된 마당에 공공부문을 강하게 개혁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검찰 처지에서 거부할 명분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검찰이 주요 공기업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지 한 달여. 일단 주요 공기업 임직원들의 비리 행태가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하 서울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우병우 부장검사)는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가 채권 확보 수단으로 보유한 회사 주식을 헐값에 넘기는 대가로 리베이트성 돈을 받은 부장급 인사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캠코로부터 27억원에 주식을 사들인 한 레저업체 대표는 주식을 되팔면서 무려 270억원의 이득을 남겼고, 그중 1억원이 부장급 인사를 포함한 캠코 관계자들에게 전달됐다. 또한 법원이 보유하고 있던 이 회사 주식 가처분신청건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레저업체 대표에게 돈을 받은 법원 집행관 사무원도 구속됐다.

    산업은행의 그랜드백화점 특혜대출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3부(김광준 부장검사)는 그랜드백화점 사모사채 1860억원을 인수하는 업무를 맡았던 전직 팀장급 직원의 범죄 사실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이 직원은 백화점 사모사채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친인척 명의로 백화점 주식 7%(39만주)를 28억원에 사들였다. 주식 취득과 대출의 관련 여부가 밝혀져야 할 핵심 사안이다.

    현재까지는 주로 실무자급 비리만 드러난 상태다. 물론 공기업 내 일부 구조적 병폐들이 하나둘 밝혀지곤 있지만, 검찰 전체가 대대적으로 수사에 나선 점을 감안한다면 아직까지는 결과가 미진하다.

    검찰은 일단 공식적으로 “첩보가 더 있다”는 정도만 밝히고 있다. 보기에 따라 사태 확산을 경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대검의 한 검사는 “수사팀 입장에서는 정말 뒤져보니 (더 큰 비리가) 안 나왔을 수도 있고, 연막작전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듣기론 별다른 게 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임채진 검찰총장도 5월20일 법조 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무리한 수사를 해선 안 된다”며 검찰 외부의 수사 기대에 비례해 무리하게 속도를 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참여정부 인사들 이름 수사선상에 하나둘 올라

    그렇지만 대검 중수부가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한국석유공사 황두율 전 사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것에서 볼 수 있듯, 수사 확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표면적으론 임직원 횡령 혐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수사 주체가 중수부라는 점에서 해외 자원개발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까지 수사 범위가 확대되리라는 관측이 검찰 내부에서 유력하게 제기된다.

    그렇다면 자원개발 기금 운용에서부터 개발업체 지원 특혜까지 굵직한 의혹의 뚜껑이 모두 열릴 가능성이 있다. 일부에선 2005년 특검 수사까지 진행됐던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이 재차 거론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공기업 관련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3부와 금융조세조사2부에서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의 수사가 함께 진행되고 있는 점도 공기업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될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금융조세조사2부는 국세청이 노 전 대통령 고교동창 정화삼 씨가 대표이사로 재직했던 제주 제피로스 골프장의 대주주 정홍희 씨를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자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조세포탈 외에 정씨가 골프장 공사비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까지 조사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서울지검 특수3부에서는 대한석탄공사가 부실기업 M건설을 특혜 지원한 사건을 수사 중인데, 여기서도 참여정부의 실세가 거론되고 있다.

    공기업 수사가 용두사미가 될지, 더 큰 파장을 낳을지 ‘키’는 검찰이 쥐고 있다. 검찰이 현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보조를 맞출 것인가, 아니면 공기업의 구조적 병폐를 수술하는 선에서 적당하게 수사를 접을 것인가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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