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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깐깐’ 일본 ‘허술’ 한국 … 소가 웃을라

20개월령 미만 미국 소 수입하는 본 비해 ‘맹탕’ 수준 소 협상 … 사실상 재협상도 불가능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깐깐’ 일본 ‘허술’ 한국 … 소가 웃을라

‘깐깐’ 일본   ‘허술’ 한국 … 소가 웃을라
▷ 서울에서 파는 한우 등심 최상품(1kg)은 10만원 안팎인 반면,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인점에 진열된 쇠고기 등심 최상급(1kg)은 24달러(2만4000원).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월급쟁이 처지에서 한우 값은 지나치게 비싸다. 돼지고기 목살과 삼겹살이 서민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된 까닭이다. 물론 이해할 수 없는 가격으로 쇠고기 요리를 내놓는 식당들이 있긴 하다.

‘쇠갈빗살 1인분 6000원’ ‘매운갈비찜 1인분 5000원’.

이 요리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 질 낮은 ‘캔 쇠고기’로 조리한 것이다. 5000~7000원대에 판매되는 설렁탕, 꼬리곰탕도 마찬가지. ‘주간동아’가 지난해 중국산 쇠고기의 광범위한 국내 유통 사실을 최초 보도한 뒤 언론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으나, 식당가의 모습은 별반 바뀌지 않았다(588호 커버스토리 ‘중국산 캔 쇠고기 서울 식당가 대공습’ 제하 기사 참조).

쇠고기 값이 로스앤젤레스 런던보다 3, 4배 비싼 이유는 축산업이 경쟁력을 잃은 탓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유통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생 상태가 나쁜 중국산 캔 쇠고기가 식당가를 점령한 이유는 쇠고기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만 들여다보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확대는 반길 일이다.

▷ 종(種)의 장벽을 뛰어넘는 질병은 많지 않다.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중증의 병을 일으키는 인수공통질병으로는 광우병, 조류 인플루엔자(AI), 탄저(炭疽), 페스트, 광견병, 우결핵병(牛結核病) 등이 있다.



인수공통질병 가운데 치사율이 가장 높은 것은 소에서 전염되는 인간광우병(vCJD·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인간광우병은 발병하면 1, 2년 안에 100% 사망한다. 치사율이 높은 것은 바이러스처럼 전염되는 프리온 때문이다. 프리온은 세포를 파괴하고 뇌를 스펀지처럼 만든다.

“한국으로는 늙은 소만 몰려들 수 있다” 잇단 우려

인간광우병은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나 부속물을 먹은 사람에게 나타나는데, 이 병에 걸리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 죽는다. 인간광우병은 진단을 내리기 쉽지 않으며 잠복기도 10~40년으로 긴 편이다.

인수공통질병은 향후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판데믹(pandemic

·특정 전염성 질환이 전 지구적으로 급속히 확산돼 유행하는 현상)의 유력한 후보이기도 하다.

▷ 쇠고기 값이 비싸기로 손꼽히는 서울의 거리가 인수공통전염병의 대표격인 인간광우병에 대한 우려로 몸살을 앓았다. 근거 없는 ‘광우병 괴담’도 횡행했다.

4월18일 농림수산식품부는 그동안 수입하지 않던 ‘뼈를 포함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하고 30개월 이상의 미국 쇠고기 수입을 사실상 허용한다’는 내용의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의 광우병 관련 지위를 낮출 때만 한국이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조항도 합의문에 포함됐는데, OIE는 미국처럼 ‘통제된 위험국가’에서 생산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도 특정 위험물질을 제거하면 안전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뼈 없는 쇠고기, 뼈 있는 쇠고기, 고기 부스러기, 다양한 부위 고기 등이 모두 포함된 전면적인 수입 개방을 하지 않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수 없다”고 한국 정부에 경고해왔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이러한 요구를 거의 모두 들어주면서 국민 건강을 도외시했다는 일부의 비판이 나온 것이다.

‘쇠고기 관세 문제’는 한미 FTA 협상 대상이었으나, 위생검역 문제는 FTA와 ‘직접 관계’는 없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한미 FTA에 부정적인 미국 의회를 설득하려면 쇠고기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한국 정부를 압박해왔다.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은 “30개월 이상 뼈 있는 쇠고기의 수입 허용 시기를 미국의 동물성 사료 규제 조치 ‘발효(이행) 시점’이 아닌 ‘공포 시점’으로 잡은 것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부실하게 협상했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 일본은 먹을거리와 관련해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미국산 쇠고기도 ‘20개월령 미만’만 수입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보다 까다로운 기준을 고수해온 이유는 20개월령 이상, 30개월령 미만 소에서도 광우병이 발생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20개월령이 안 된 소가 광우병에 감염된 사례는 거의 없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해 ‘30개월령 미만 뼈 없는 살코기’에 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는데, 당시 농림부(현 농림수산식품부)는 수입 재개와 관련한 ‘주간동아’의 질의에 “30개월령 이하에서도 광우병이 발생한 적은 있으나 ‘살코기’에선 광우병의 원인체인 프리온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농림수산식품부 문건 등에 따르면, 미국 비육장에서 사육되는 소는 보통 생후 14~23개월에 도축된다. 식용으로 주로 쓰는 거세우와 미경산우(새끼를 낳지 않은 암소)로 한정하면 90% 이상이 태어난 지 20개월 안에 도축된다. 미국인들도 20개월령이 넘지 않은 소를 주로 도축해 먹는다는 얘기다.

미국 요구 고스란히 들어준 이유 도대체 뭘까

축산업계 한 관계자는 “대만 중국 등이 30개월령 미만의 소만 수입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으로만 늙은 소가 몰려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주간동아’가 입수한 ‘BSE(광우병) 관련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검토’라는 농림수산식품부 문건의 ‘전문가 검토의견’란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되 아직 BSE가 과학적으로 구명되지 않았고, 미국의 BSE 방역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은 점을 감안해 국제기준보다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단, 이 보고서는 OIE가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분류하기 이전에 작성된 것이다.

▷ 세간에 나도는 인간광우병과 관련된 우려는 대부분 과장된 것이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에서 소비된 미국산 소는 3억5000만 마리. 그러나… 광우병은 전혀 없었습니다!”라는 정부 광고의 문구는 ‘객관적 사실’을 담고 있다(물론 인간광우병 환자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이 ‘제로’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5월7일 국회 ‘쇠고기 청문회’에서 “앞으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 일본이 향후 미국과 맺은 수입 조건이 우리보다 유리하다면 재협상을 확실히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 건강이 위협받는 일이 있다면 즉각 수입을 중지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4월17일 타결된 합의문에 따르면, OIE가 미국의 광우병 관련 지위를 낮출 때만 수입을 중단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이 수입을 중단할 경우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은 한국 제조업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일본 수준으로 재협상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본은 자국 소에 대해 광우병 전 두수 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에 미국에 동등성 원칙을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 때 소의 나이를 측정하는 치아감별법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출생기록이 없는 소는 반입 가능한 사육기간을 12~17개월로 더 낮추기도 했다. 한국은 치아감별법을 인정하는데, 치아 마모 상태로만 소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소 가운데 출생기록이 문서화된 것은 20% 안팎에 그친다고 한다.

세계화는 거스르기 어려운 추세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게 개방은 시장 확대를 의미한다. 시장 확대는 국부의 증대로 이어진다. 그렇더라도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은 허술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도 일본처럼 깐깐하게 협상할 수는 없었을까.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고스란히 들어준 이유는 도대체 뭘까.



주간동아 2008.05.20 636호 (p26~27)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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