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9

2016.12.28

사회

석유공사도 ‘비선 경영’ 의혹?

김정래 사장 전 직장 동료·대학 동창 고위직 영입…용역 자리 뺏어 공사 유휴인력 배치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12-23 17: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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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자원 개발 실패 등 부실 경영으로 부채 수조 원을 떠안고 있는 한국석유공사(석유공사)가 최근 낙하산 인사로 또 다른 혼란에 휩싸였다. 2016년 2월 선임된 김정래 사장이 억대 연봉의 전문계약직 4명을 채용한 것을 두고 노조가 “전형적인 측근 인사에 ‘비선(秘線) 경영’”이라며 김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나선 것. 석유공사 노조는 11월 22일 조합원을 상대로 ‘김정래 사장 퇴진 결의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에는 조합원의 92%가 참여했고, 이 가운데 97%가 찬성표를 던졌다. 전체 직원의 80%가 노조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직원 대부분이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셈이다.

    노조가 주장하는 비선 경영의 실체는 2016년 2월 24일 채용된 자산합리화 고문 3명과 4월 1일 발탁된 경영관리본부장 김모 씨다. 노조 관계자는 “특별채용된 4명은 석유개발과 전혀 관련이 없고, 사장이 예전에 소속됐던 현대중공업그룹 출신이거나 서울대 동문”이라며 “인사를 통해 기존 본부장의 임무는 축소하면서 전문성 없는 1년짜리 계약직이 해당 업무를 대신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래 사장은 과거 현대오일뱅크 전무, 현대중공업 부사장, 현대종합상사 사장, 현대중공업 사장을 거친 현대맨 출신. 이번에 노조의 반발을 부른 3명의 자산합리화 고문 가운데 1명인 김모 씨는 현대오일뱅크 임원을 역임했고, 경영관리본부장에 뽑힌 김모 씨는 김 사장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이라는 점에서 ‘낙하산 인사’라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모두 억대 연봉을 받는다. 경영 악화에 따른 인력 축소와 임금 인상 제한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석유공사가 1급 처장급에 해당하는 고액 연봉의 고문을 3명이나 선발했다는 것에 노조는 반감을 표하고 있다. 자산합리화 고문의 연봉은 1억500만 원, 경영관리본부장의 연봉은 9360만 원에 이른다.



    억대 연봉 ‘낙하산’ 인사 강행? 

    두 번의 채용 모두 ‘특별전형’으로 분류돼 헤드헌터를 통한 비공식 채용으로 진행됐다는 점 또한 석연치 않다. 석유공사 사규상 △직무의 특수성으로 인해 공개경쟁 시험에 의한 채용이 극히 곤란할 때 △채용하고자 하는 직무에 상응하는 자격증을 소지하고 해당 분야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국가유공자 및 유족 △소수인원(직급별)의 긴급 충원이 불가피할 때 등 4가지 경우에 한해 특별전형으로 채용할 수 있으며 나머지는 공개채용이 원칙이다.



    석유공사 측은 이번 인사가 첫 번째 항목인 ‘직무의 특수성’에 해당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내부 승진이나 공개채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영관리본부장과 자산합리화 고문의 직무가 특수성이나 전문성을 띠는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석유공사 측은 “경영관리본부장은 경영관리본부를 총괄하는 임원이고, 자산합리화 고문은 공사 경영 정상화 계획에 따라 보유 자산에 대한 자산 합리화와 국내외 생산플랜트의 공정운영 관리 역량 향상을 통한 비용 절감 및 공사 재무 리스크 관리를 하는 자리로, 정부의 구조조정 이행 계획에 따라 민간 전문가를 채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답변 역시 특수성을 제대로 설명한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한편 석유공사 측은 이번에 노조원이 사장 퇴진을 결의한 진짜 속내는 ‘사장 퇴진을 무기 삼아 성과연봉제 실시에 따른 성과급 적용을 폐지하고 임금 인상을 관철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 사장이 불합리한 인사 관행을 깨고 능력 중심의 인사를 시행하는 데 노조가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아이러니한 점은 석유공사가 김 사장의 결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전례 없이 스스로를 ‘석피아’(석유공사+마피아)로 칭했다는 사실이다. 석유공사 측은 “김 사장 취임 이후 과거 석유공사가 퇴직자에게 국내 및 해외 자회사나 해외사무소에 자리를 만들어주던 관행이 없어졌고, ‘석피아’가 세습하던 석유공사 자회사 사장직도 공개채용으로 전환됐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한 ‘석피아’ 관행이란 무엇일까. 석유공사는 2004년 이후 10여 명의 공사 직원에게 국내 및 해외 자회사(캐나다 하베스트, 영국 다나)와 해외사무소에 최고경영자(CEO)나 지사장 자리를 마련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퇴직한 비축본부장 출신 3명은 2008년 11월 설립된 석유공사 자회사 오일허브코리아(OKYC) 사장에 임명됐고, 2000년 강원 동해비축기지 설립 이후 석유공사 퇴직자가 설립한 4개 위탁관리 용역회사에 2~6년간 운영을 맡겨왔다. 2003년 설립돼 2009년 지분 매각된 가스공사 용역업체 (주)KOL에도 지난 7년 동안 퇴직자 3명이 사장으로 채용됐다.



    용역계약 해지 후 인건비 더 늘어날 판

    그 사이 석유공사는 용역업체의 비리를 수수방관하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재산상 손실을 입는 등 재정 악화를 자초했다. 그렇기에 김 사장이 진두지휘하는 구조조정 등은 노조의 반발을 살지언정 석유공사 경영 정상화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 석유공사 측 주장이다. 하지만 이 과정 역시 석연치 않다. 석유공사는 경영 정상화의 일환으로 지난 16년 동안 위탁관리해온 동해비축기지를 2016년 9월 비용 절감 및 안전성 강화를 근거로 본사 직영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동해비축기지의 위탁관리 용역계약을 해지하고 그 자리에 본사 직원 10명을 보내기로 하면서 위탁관리 직원 21명이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됐다. 이에 대해 석유공사 측은 “기간 만료에 따른 해지일 뿐 직원 해고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동안 석유공사가 위탁회사와 업무체결을 한 과정을 보면 해당 업체 직원과 석유공사의 관계는 단순한 ‘용역’이 아닌 ‘파견’ 형식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로 파견과 용역계약을 구분하는 핵심 기준은 ‘지휘명령 관계’ 여부인데, 석유공사의 동해비축시설 위탁관리 절차서에는 ‘지사 업무 수행을 위한 제 규정(사규, 절차서, 지침서) 등의 적용에 있어 협력업체 직원은 공사 직원으로 간주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협력업체 직원들이 올린 출장명령서나 교육명령 공문을 보면 석유공사 담당자가 직접 결제한 것으로 돼 있다.

    또한 동해비축기지 위탁관리계약 해지 시 운영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석유공사 측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용역 관리 직원 자리에 석유공사 인력을 배치할 예정이라 이들의 인건비를 생각하면 아무리 그 수가 줄어들어도 총 인건비는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석유공사는 12명을 계약 해지하고 석유공사 직원 10명을 활용할 방침인데, 용역회사 인당 연봉은 평균 3900만 원인 데 비해 석유공사 직원은 7100만 원에 이른다. 결국 용역 관리 직원을 그대로 고용할 경우 한 해 인건비는 4억6800만 원이고, 석유공사 직원을 채용하면 7억1000만 원 든다.

    이는 2016년 국회감사에서도 지적된 내용으로 당시 새누리당 이철규 의원(동해·삼척시)은 “2015년 기준 동해비축기지의 감독 업무를 맡았던 석유공사 직원 3명의 인건비가 3억 원에 달한다. 더욱이 김정래 석유공사 사장은 본 의원을 찾아와 ‘공사 직원의 유휴인력을 재배치하고자 동해비축기지를 직영으로 돌리겠다’고 했는데, 이는 곧 상위 그룹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하위 그룹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으로 구조조정이 아니라 또 다른 자리를 만드는 구조개악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결국 석유공사는 동해비축기지 용역 관리 직원 21명 중 9명을 2년간 재고용하고, 나머지 12명에게는 재취업 활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다른 석유공사 용역회사 직원 채용 시 취업을 주선해주는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 퇴진과 관련해서는 아직 노사 협의가 진행 중으로, 향후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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