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9

2016.12.28

단독

北,中 제재 직전 석탄 할인 대방출

중국산으로 둔갑한 수산물·의류, 한국 유입 가능성도…한국인 공장에서 北 인력 이용 더욱 극성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6-12-23 17:2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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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정부는 2016년 12월 11일부터 31일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일시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북한의 9월 5차 핵실험에 대응해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 2321호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북한산 석탄 수입 일시 중단 조치에 들어가기 직전 북측 인사들이 중국을 찾아 석탄을 급매 처분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에서 대북사업을 하는 소식통들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직후 파악된 다양한 북측 동향을 전해왔다.



    “세관 관리 뇌물 주면 뭐든 무사통과”

    중국 대북사업가 A씨는 “북한 나선경제특구 지역의 고위 공무원과 사업가, 국가안전보위성(옛 보위부로 우리의 국가정보원과 유사) 요원 등 7명이 2016년 12월 초 중국 랴오닝(遼寧)성 지역에 왔다”고 전했다. 이들의 방문 목적에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21호의 대상이 된 북한산 석탄을 서둘러 처분하는 것도 포함됐다. 북한 최대 철광산인 함경북도 무산광산 일대의 석탄 판매 회사들이 대북제재가 시작되기 전 중국 측에 석탄을 팔 계획이었다. 회사마다 판매 할당량이 있어 기존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랴오닝성 지역 역시 겨울철이면 난방용 석탄 수요가 크게 늘어나 북한산 석탄이 필요하던 상황. 예전에도 무산광산 일대 회사들은 랴오닝성 지역 기업들과 석탄을 거래했지만 이번에는 대북제재 때문에 다급해졌고 가격도 꽤 저렴하게 제시했다는 게 현지 업자들의 전언이다. A씨는 “북측 인사들은 일주일 이상 랴오닝성에 머물며 중국 민간회사들과 만났고 성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북한산 석탄 매매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A씨는 아울러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상황에서도 북한산 석탄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 세관 당국자에게 뇌물을 먹이면 무사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2016년 12월 15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선박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분석하는 민간 웹사이트 ‘마린 트래픽(Marine Traffic)’을 인용해 석탄을 실은 것으로 보이는 북한 선박 12척이 중국 항구에 입항하지 못한 채 공해상을 맴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분석 결과 ‘우리스타’와 ‘빅토리 2호’ ‘민해’ ‘만정1호’ 등 북한 선박 4척이 이르면 12월 11일부터 각각 중국 산둥(山東)성 란샨(嵐山)항 앞바다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선박은 모두 석탄 등 광물을 실어 나르는 벌크선이다. ‘금송호’와 ‘남포9호’ 등 다른 북한 선박 8척도 비슷한 시기 산둥성 르자오(日照)시 펑라이(蓬萊)항 앞바다 등에서 포착됐다. 일부 선박은 한자리를 수차례 맴도는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VOA는 이처럼 많은 선박이 한꺼번에 장시간 입항하지 못한 채 바다에서 기다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중국 정부가 연말에 20여 일간 실시한 북한산 석탄 수입 중단 결정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북측은 석탄뿐 아니라 수산물도 급매 처분하고 있다. 중국 단둥의 대북사업가 B씨는 수산물의 공식 판매가 막힌 북한 업자들이 중국 업자를 상대로 큰 폭의 할인 판매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B씨의 말이다.

    “12월 초순 북측 수산물 업자로부터 청진산 도루묵 480t을 팔아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다. 북측은 도루묵을 단둥으로 가지고 나와 냉동한 뒤 급매에 나섰는데, 2015년까지만 해도 t당 1400달러(약 167만4400원)에 팔던 것을 이번엔 1100달러로 가격을 낮춰 내놨다. 가격만 맞으면 한국인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팔려고 달려든다. 중국 단둥의 수산회사 명의로 속여 원산지 증명 표시를 하면 되니까 한국인이 구매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북한은 2016년 도루묵이 많이 잡혀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인민군 수산사업소 두 곳을 잇달아 시찰하기도 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1월 17일 ‘김정은 동지께서 전례 없는 물고기 잡이 성과를 이룩하고 있는 인민군 ‘5월 27일 수산사업소’와 ‘1월 8일 수산사업소’를 현지 지도하셨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최근 며칠 사이 수천t의 도루메기(도루묵)를 잡았다는 보고를 받고 온 나라 인민에게 희한한 물고기 대풍 소식을 한시바삐 전하고 싶어 만사를 제쳐놓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어 ‘수산 부문 일꾼들과 어로공들이 11월 7일까지 김정은이 제시한 연간 물고기 잡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고, 매일 도루메기 1만여t을 잡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많이 잡힌 도루묵 가운데 일부는 단둥에서 원산지 조작을 통해 싼값에 팔리고 있고, 한국으로도 상당수 들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 결의, ‘北 해외 노동자’ 첫 언급

    한편 북한 5차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가운데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과 관련한 언급이 눈길을 끈다. 먼저 유엔 안보리 결의 2321호에서는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위해 해외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회원국에 주의를 촉구했다. 이는 강제 조항은 아니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에서 북한 해외 노동자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채택 이후 미국 재무부는 “해외 노동력 송출 회사의 수입이 북한 정부와 조선노동당으로 유입되고 해외 노동자들이 버는 수입의 일부를 북한 군수산업부에서 사용하고 있다”며 북한 해외 노동력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북한 인력 송출과 관련된 북한능라도무역회사, 대외건설지도국, 남강건설, 만수대창작사 등을 제재 대상으로 지목했다. 미 재무부는 제재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들 기업이 노동자를 파견한 국가들을 명시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외건설지도국과 남강건설, 만수대창작사 등 해외 노동자 송출 기관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유엔은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이어 12월 19일에는 총회를 열어 투표 없이 컨센서스(전원 합의)로 북한 인권 결의를 채택했다.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고 인권 유린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유엔 총회는 2005년부터 12년째 북한 인권 결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표결 없이 전원 합의로 결의를 채택한 것은 2012년과 2013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결의에는 ‘리더십이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기관이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다’는 표현이 담겼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언급하진 않지만 사실상 김 위원장이 처벌 대상임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의에서는 특히 북한의 해외 노동자 문제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결의는 ‘강제노동에 준하는 것으로 알려진 환경에서 일하는 북한 해외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유엔 총회가 강력한 내용의 북한 인권 결의를 컨센서스로 채택한 것은 북한 인권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깊은 우려를 잘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유엔 결의에 대해 러시아는 개별 국가의 인권과 관련한 결의에 반대한다고 밝혔고, 중국은 결의가 채택된 뒤 발언권을 얻어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해외 노동자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현장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2016년 9월 초 ‘주간동아’ 1054호에서 필자는 단둥에는 한국인이 중국인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북한 인력을 고용해 공장을 운영하는 사례가 다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 가운데 최대 규모는 북한 인력 500명을 고용한 의류공장이었다. 기고 이후 우리 당국이 해당 공장의 주인인 한국인을 조사했고, 그는 결국 북한 인력 공장을 판 뒤 동남아지역으로 진출했다.

    그런데 이 공장의 새 주인은 놀랍게도 또 다른 한국인이라고 한다. 단둥을 자주 왕래하던 사업가로 100명 가까운 북한 인력을 더 지원받아 공장 규모를 확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당국은 기존 한국인이 중국인 바지사장을 내세워 대북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막았다며 성과로 제시했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국인이 그 자리에 올랐으니 실제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조치에 불과한 셈이다.



    제재 효과, 한국만 착각?

    아무리 강력한 대북제재가 이뤄진다 해도 중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겉으로 잡히는 통계에선 제재에 성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현실 말이다. 또한 대북제재를 가하면 가할수록 북측은 공식적으로 팔 수 없는 물건들을 중국 시장에 싸게 내놓고, 그것을 사들인 중국 사업가만 배를 불리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독자제재 방안의 하나로 북한의 제2 외화수입원인 임가공 의류가 중국산으로 둔갑해 수입되지 않도록 국내 의류 관련 협회와 단체를 대상으로 계도활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발표 이후에도 중국산으로 둔갑한 북한의 임가공 의류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적잖은 물량이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 대북제재 선언 이후에도 기존 사업가들이 경쟁적으로 북한의 임가공 의류를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싸게 만들어 이윤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기업을 상대로 강제성 없는 계도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청진산 도루묵의 사례에서처럼 원산지를 중국산으로 속인다면 이를 적발하기도 어렵다. 내부자의 증언과 물증이 없다면 말이다.

    이런 현실인데도 우리 정부는 제재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 결의 2321호를 채택할 당시 현장에서 외교를 주도했던 오준 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 대사는 북한산 석탄 수출 통제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오 전 대사는 2016년 12월 20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북한이 아무리 폐쇄적 경제를 갖고 있다 해도 석탄은 북한 전체 수출액의 3분의 1 정도인데, 앞으로 60% 정도 석탄 수출이 삭감되면 제재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유엔 안보리의 새 제재 결의 이후 미국 정부는 제재 이행 조치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12월 20일(현지시각) 뉴욕에 있는 주유엔 북한대표부 소속 외교관들에 대한 금융제재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주유엔 북한대표부 소속 외교관 또는 그 가족이 금융계좌를 만들거나 거래할 때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특별 허가를 받도록 했다. 대북제재 속에서 북한 정권이 해외에서 얻은 이익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통로에 외교관들의 계좌가 이용되고 있다고 보고 조치를 취한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아닌 미국의 조치가 북한에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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