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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親朴의 생존법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깃털 흔들어 본질 흐리는 박 대통령 역공 전술과 판박이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親朴의 생존법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親朴의 생존법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2016년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친박(친박근혜)계 모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출범식에서 서청원 의원(왼쪽)이 공동대표를 맡은 이인제 전 최고위원(오른쪽)의 손을 잡고 있다. 가운데는 공동대표를 맡은 김관용 경북도지사. [동아일보]

새누리당 비주류, 비박계가 2016년 12월 21일 탈당을 공식화했다. 유승민 비상대책위원장 카드를 친박(친박근혜)계가 거부한 것이 결정적 계기다. 물론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이들은 탈당 결의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친박 패권주의를 극복하고, 진정한 보수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새 출발을 하기로 다짐했다.’ 친박 패권주의가 주된 이유인 것이다.

친박 패권주의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새누리당 친박계의 행태를 보면 그 논리가 보인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논리다. 왜 이런 논리를 갖게 된 것일까. 당해본 경험 때문이다.



당하지 않으리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2월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이회창 1인 체제를 비판하면서 당내 민주화를 요구했다 거부당한 뒤였다. 그해 5월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신당까지 창당해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임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광역의원 당선인만 2명 배출했다. 결국 창당 6개월 만인 2002년 11월 대통령선거(대선)일에 임박해 한나라당으로 흡수 통합되고 말았다. 이 일로 박 대통령에게는 탈당 공포증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2008년 4월 18대 총선 당시 친박계에 대한 공천학살이 이뤄졌을 때도 탈당하지 않았다. 다만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는 말만 남겼다. 자신을 따르던 서청원, 김무성, 홍사덕, 한선교 등이 탈당해 친박연대로 출마했을 때다. 박 대통령은 당시 “살아서 돌아오라”며, 이들이 한나라당으로 복당하기만 기다렸을 뿐이다.



박 대통령이 이회창 전 총재에게 당한 아픔이 있다면, 원조 친박계라 할 수 있는 서청원 의원 등은 이처럼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이(친이명박)계로부터 당한 아픔이 있다. 이들에게도 탈당 공포증이 상당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 사전에는 ‘탈당’이란 단어가 없다. 더욱이 이제 처지도 바뀌었다. 번듯한 주류다. 탈당을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요구할 위치다. 힘겹게 획득한 갑의 지위다. 당연히 포기란 있을 수 없다.



깃털을 흔들자

그래서일까. 그들의 갑질은 남다르다. 갑임에도 언제나 극단적인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점도 특이하다. 몸은 갑인데, 마인드는 을인 격이다. 혹독한 시어머니를 겪은 고집 센 며느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순실 게이트’ 초기 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 납작 엎드렸다. 대국민담화도 세 차례나 했다. 검찰 조사에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검찰의 대면조사는 거부했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헌법재판소에는 혐의를 아예 부인하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박 대통령의 위기 극복 패턴은 일정하다. 깃털을 흔들어 본질을 흐리는 역공 전술을 자주 쓴다. 2014년 정윤회 감찰 문건 파동이 불거졌을 때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문건 내용보다 유출 문제를 집중 부각했다. 이런 식이었다.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같이 몰아가고 있는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다.” 박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이처럼 물 타기를 시도한 끝에 결국 박관천 전 경정을 비롯한 유출 관련자만 처벌받고 끝났다. 그 과정에서 최경락 경위가 자살까지 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국기문란이라는 표현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직권남용과 횡령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을 때도 등장했다. 본질은 우 전 수석의 혐의였지만,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 전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언론보도만 문제 삼았다. 김성우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은 당시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중대한 위법으로 묵과할 수 없는 사항이고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논평했다. 결국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자진 사퇴했고, 특별감찰관실은 해체됐다.

새누리당 친박계도 마찬가지 패턴을 따른다. 2016년 4월 총선 당시 김무성 대표의 이른바 ‘옥새 들고 나르샤’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이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친박 핵심의 유승민 전 원내대표 공천 배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박계는 김무성 전 대표가 도장을 들고 도피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로써 진박(진짜 박근혜계)공천에 대한 비난여론조차 무마하려고 시도했다.

비박계의 집단 탈당에 대해서도 친박계의 물 타기는 맹렬하다. 을인 비박계가 견디다 못해 탈당하는 와중에도 갑인 그들은 김 전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면서 정작 피해자는 자신들이라는, 또 다른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다. 탈당 사태의 본질인 친박계의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반성 없는 태도다. 그런데 이번에도 깃털로 비박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친노계에게 배우자

최순실 게이트로 친박계는 폐족이 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과거 친노(친노무현)계가 폐족인 시절이 있었다. 2007년 12월 대선 패배 직후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친노라고 표현돼온 우리는 죄 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폐족”이라고 언급한 것이 계기였다. 친노계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부는 속에서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폐족 선언 4개월 뒤 진짜 폐족이 되고 만 것이다.

친노계는 이후 한동안 정치권에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친노계 한명숙 대표 체제하에서 비례대표는 물론, 수도권과 호남지역 공천을 휩쓸다시피 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친노계 핵심인 문재인 대표 하에서, 이들은 오히려 지분을 더 확대했다. 그 과정에서 친노계는 친문(친문재인)계로 변신을 꾀했다. 공천 논란 과정에서 안철수 전 대표와 호남권 현역의원들까지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한 결과 이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내에서 이들에게 대항할 세력은 전무한 실정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박 대통령 탄핵정국을 주도하면서 친노계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친노성향을 가진 진보 지지세력의 응집력도 더 높아졌다. 당연히 지지율 역시 상승세다. 이런 추세라면 정권교체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한때 폐족에서 또다시 집권세력으로 등극할 태세다. 바로 이 친노계의 역사가 친박계에게는 일종의 반면교사다. 비록 지금은 폐족으로 몰린 처지지만, 흩어지지 않고 똘똘 뭉쳐 있으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올 것이란 기대감이다. 그런 점에서 친박 패권주의는 친노 패권주의와 판박이다. 패권을 지키는 방식도 거의 차이가 없다. 심지어 막말로 비주류를 겁박하는 것조차 유사하다.



TK 자민련이 되자

親朴의 생존법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2016년 12월 16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정우택 의원(가운데)이 환하게 웃으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물론 비주류의 탈당에 조금 당혹스럽긴 할 것이다. 그래도 친박계가 크게 놀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순간 이미 제2의 친박연대로 갈 각오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거 친박연대 시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 친박연대는 당선인을 18명 배출했을 뿐이다. 지금은 최소한 62명이다. 최근 결성했다 해체한 친박 당내 모임인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참가자 숫자다. 이들은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똘똘 뭉쳐 62표로 친박계 정우택 원내대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 대열만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원내교섭단체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새누리당의 재산도 보존하면서 2020년 총선 때 의석수 배증도 노려볼 수 있다.

일단 목표는 대구·경북(TK)지역을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다. 국민의당을 민주당 쪽에서는 호남 자민련이라고 부르곤 한다. 제2의 친박연대는 영남 자민련, 더 구체적으로는 ‘TK 자민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TK 자민련은 친박계로서는 일종의 교두보다. 본인들의 교두보인 동시에 주군인 박 대통령의 교두보이기도 하다. 이 교두보를 지키는 것이 그들의 1차 목표다. 비주류가 탈당을 선언한 속에서 TK지역 국회의원의 참여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TK지역에서는 박 대통령 동정론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동정론에 기반을 둔 정당이 TK 자민련으로서 새누리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박계 탈당 이후 이들의 고민은 한 가지로 모아질 것이다. 박 대통령과 계속 함께 갈 것인가. 이는 박 대통령의 퇴임 이후 정치활동과 관련 있을 수밖에 없다. 친박계 핵심은 일단 박 대통령이 정치활동을 계속할 것으로 전제하는 듯하다. 박 대통령의 퇴임 이후 정치활동 여부와 범위는 실은 탄핵심판 결과에 달렸다. 탄핵심판이 인용으로 결정 난다면 퇴임 이후 정치활동은 불가능하다. 반면 기각으로 결정된다면 가능하다.

이변이 없는 한 헌법재판소는 인용으로 결정할 개연성이 높다. 이 경우 친박 핵심도 고민에 빠질 테다. 적당한 시점에 박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친박 핵심은 아마 이것까지 계산에 넣었을 테다. 본인들의 향후 정치활동에 친박계 결집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다만 이때는 친박 핵심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려 친박 분열이 본격적으로 일어날 공산이 크다. 그런 점에서 TK 자민련 역시 생명력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






주간동아 2016.12.28 1069호 (p12~14)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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