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6

2016.12.07

커버스토리

보수는 떠나지 않았다 ‘고도’를 기다릴 뿐…

새누리당이 혁신에 성공한다면 보수세력은 다시 돌아갈 것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6-12-02 17:23:1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4%까지 떨어졌다. 심지어 대구·경북에서도 3%이다. 부정평가는 93%까지 치솟았다. 새누리당 지지율 역시 12%로 주저앉았다. 11월 넷째 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주간 정례조사 결과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11월 다섯째 주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9.8%인 반면, 부정평가는 86.0%에 달한다. 콘크리트 지지율 30%가 무너진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이 정도면 보수세력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다고 봐야 한다(여론조사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그런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떠난 보수세력이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나 민주당으로 향하는 것 같지도 않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문 전 대표와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한 것은 맞다. 문 전 대표와 민주당은 앞의 두 여론조사에서 모두 1위다. 문제는 상승폭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보수세력이 부동층으로 변한 뒤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누구일까. 상당수는 여전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대권주자 지지율 2위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1위 문 전 대표에 버금가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 대한 기대감도 상승 추세다. 최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장으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새누리당이 혁신에 성공한다면 보수세력은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아니, 되돌아갈 것이 확실하다. 그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나 돌아갈래!’ 왜? 보수니까! 변수는 ①새누리당 혁신 ②보수신당 창당 ③야당들의 대응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01 어게인 혁신

    새누리당 혁신 여부는 친박(친박근혜)계의 선택에 달렸다. 그들이 내려놓아야 기회가 생긴다. 끝까지 내려놓지 않으면 기회는 사라진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비박(비박근혜)계 김용태 의원이 선도 탈당했다. 여권 유력 대권주자인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탈당 대열에 섰다. 정두언 전 의원을 비롯한 친이(친이명박)계 원외 인사도 마찬가지다.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선거(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박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며 비박계 결집에 나선 상황이다. 비박계는 당내에 비상시국회의라는 별도 조직까지 만들었다. 이미 한 지붕 두 가족 상태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여차하면 반기문 총장과 함께 제3지대로 나설 태세다.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한 정 원내대표까지 포함하면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질서 있는 퇴진을 제안한 것을 전후해 친박 지도부도 2선 후퇴를 거듭 암시하고 있다. 친박-비박 6인 중진회의에서는 비박계 비대위원장 옹립까지 제안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카드를 접는 조건이면 비대위원장을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이 최근 친박 지도부의 기류다. 친박계 핵심인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 최고위원은 아예 선제적 사퇴 의지까지 내비쳤다. 탄핵만 거둬들인다면, 더 나아가 비상시국회의까지 해체한다면 곧바로 사퇴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비박계가 수용해 △친박 지도부가 사실상 2선 후퇴를 한다면 △비박계 중심으로 비대위가 꾸려진다면 △새 비대위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혁신이 이뤄진다면 △새누리당이 친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면 떠났던 보수세력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서 새누리당을 명실상부한 개혁보수 정당으로 만들어낸다면, 또는 유승민당으로 아예 포장까지 바꿔버린다면 그런 기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더 강력한 카드는 유승민에 반기문을 더하는 전략이다. 유승민 비대위체제로 1단계 혁신을 완료한 다음, 조기 전당대회를 거쳐 반 총장을 대표로 모신 상태에서 2단계 혁신을 추진하는 방안이다. 당권-대권 분리 방침을 철회해 대표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길을 열면 가능한 일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6월 혁신비대위 시절 이 방안을 둘러싸고 한 차례 공방이 있었다. 결국 당권-대권 분리 방침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지금은 절박한 상황이라 이를 바꾸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반 총장이 대표로 취임해 새누리당을 박근혜당에서 반기문당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보수세력의 재결집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다.



    02 아니면 신당

    새누리당 혁신이 불가능하다면, 다시 말해 친박 패권의 해체가 불가능하다면 보수세력을 다시 불러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화장을 고치는 수준으로 거듭 무늬만 혁신해왔다. 대표적으로 지난 총선 패배 직후 혁신비대위를 꾸렸지만, 친박 성향의 김희옥 전 위원장은 근본적인 혁신을 이뤄내는 데 실패했다. 이런 식의 도로 친박당 카드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 이 경우 오히려 비박계가 대거 탈당해 제3지대에서 보수신당을 창당한다면 그쪽으로 몰려갈 개연성이 높다. 이때도 반 총장이 깃발을 든다면 훨씬 더 힘이 실릴 것이다.

    반 총장의 1월 중순 입국을 앞두고 그를 지지하는 그룹이 활동을 개시했다. ‘초당파 안보·민생회의’이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반 총장이 제3지대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고, 벌써 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은 이미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진박(진짜 친박) 공천으로 패배할 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한 듯하다. 이후 전당대회에서 친박 지도부가 들어서자 고민은 더 깊어졌고, 최순실 게이트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마음을 굳힌 것 같다. 반 총장은 일단 제3지대에 둥지를 튼 다음, 본인 중심의 정계개편을 시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제3지대에 기반을 마련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물론, 새누리당에서 선도 탈당한 남경필 지사와 김용태 의원, 그리고 정두언 전 의원을 비롯한 친이계와 먼저 연대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 새누리당 비박계와 친박계까지 포섭해나가는 그림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골박(골수 친박)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헤쳐 모인 보수신당이다. 이는 결국 반기문당을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 그리고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와 연대는 그다음 단계에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반안(반기문-안철수)연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론되던 터다. 반안연대까지 마무리 짓고 나면 반 총장은 보수에서 중도에 이르는 거대한 전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충청권을 선점한 상태에서 영호남을 한데 아우르는 전선이기도 하다. 손 전 고문과 국민의당까지 품고 나면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논란이 일 것이다. 그래도 당선 가능성은 확실히 높아진다.

    반기문 중심의 보수신당 창당마저 난관에 봉착할 경우 보수세력은 다시금 혼란에 빠질 것이다. 새로운 창당 주체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고려 대상이겠지만, 손학규 전 고문이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개혁을 표방하는 그이지만 본래 새누리당 사람이다. 그를 도로 보수화시킬 필요도 없다. 곧바로 전면에 내세워도 충분히 상품가치가 있다. 박 대통령이 약속했지만 미완성으로 남은 경제민주화를 야권에 몸담았던 그가 다시 주장하고 나선다면 먹혀들 여지도 많다.



    03 차라리 야당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미 야당 지지로 돌아선 보수세력이 여기에 해당한다. 본래 이념적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던 보수세력이나 사안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오가는 크로스오버형 이념적 유목민은 큰 갈등 없이 야당 지지로 돌아서기도 한다. 이번에는 보수정당, 다음에는 진보정당 등 번갈아 지지하는 산타클로스형 유권자도 물론 없지 않다. 이들 외 골수 보수세력은 최근 부동층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당장 야당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새누리당 혁신이나 보수신당 창당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끝까지 부동층으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최순실 게이트로 그들에게도 마음의 짐이 생겼다. 최태민 일가와 박 대통령의 부적절한 관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알았지만 애써 외면한 결과 오늘날 같은 참사를 낳은 것에 대한 죄의식이다. 지난 대선 당시 아들딸과 치열하게 다퉈가며 박 대통령을 옹립한 결과이다 보니, 자식 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민망하다. 그래서 다음 대선에서는 이유 불문하고 아들딸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도 든다. 촛불집회에 아들딸과 함께 서고 보니 그런 생각이 더 커진다.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할 친박계는 반성 없이 버티고, 비박계는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탈당을 주저한 채 신당 창당조차 이뤄내지 못한다면 정말 홧김에라도 야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기류는 사실 야당에게는 엄청난 기회 요소다. 특히 중도개혁을 표방하며 민주당을 탈당해 신당을 창당한 안철수 전 대표와 국민의당에게는 지난 총선 이후 최대 호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기회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민주당과 진보성 경쟁에만 몰입하는 탓이다. 선거비용 리베이트 사건 이후 총선 당시 표를 몰아준 유권자 가운데 보수세력은 부동층화한 것으로 보인다. 진보세력은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호남 유권자 역시 민주당으로 상당수 되돌아갔다. 이런 상태에서 일단 야권 후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지상과제이다 보니, 집토끼를 도로 불러들이는 데 열심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앞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는가 하면, 탄핵에도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본래 진보성이 강한 민주당 따라 하기로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중도개혁세력답게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새누리당 친박계와 민주당 친문(친문재인)계 사이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 역시 최근 진보 본색이 더 강해졌다. 승기를 잡았다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광장의 기운에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그런데 그 수준에 머무른다면 부동층화한 보수세력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보수세력이 달리 보수인가. 급격한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보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