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3

2016.11.16

김창환의 통계 인사이트

정치 부패와 국가 경제의 상관관계

뒷돈 걷는 정부 유지 vs 국정중단, 어느 쪽이 국민에게 도움 될까

  •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입력2016-11-11 17: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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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스캔들로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임박했다.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고 각종 정책 결정에 관여했다는 것도 경악스럽고,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재벌 회장들에게 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기금 출연을 요청했다는 것도 기가 찬다. 당초 600억 원으로 계획한 기업 출연금이 박 대통령 지시 이후 1000억 원으로 늘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이 돈의 성격이 뇌물이라는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대가성을 따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기업들로부터 598억5000만 원을 모금해 세운 일해재단 사건에서 대법원은 ‘대통령에게 넘어간 돈은 직무 연관 여부와 대가성을 따질 필요 없이 뇌물’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그 이유는 대통령이 정부 수반으로서 행정부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만큼 뇌물의 반대급부를 제공할 방법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구체적 정황도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에 따르면 2015년 10월 재단법인 미르 모금이 완료된 다음 날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을 하면서 예산과 별 관계가 없는 경제활성화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 5대 법안 등 재벌의 이해에 부합하는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1월 K스포츠재단 입금이 완료된 다음 날엔 대국민담화를 발표해 노동개혁 5대 법안,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처리를 다시 주문했다. 이 법안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단이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와 미팅에서 요구한 것과 일치한다.



    후진국에선 부패가 경제발전 윤활유

    박 대통령은 11월 4일 대국민담화에서 “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국정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며 “일부 잘못이 있었다 해도 대한민국의 성장동력만큼은 꺼뜨리지 말아주실 것”을 호소했다. 국정중단이 경제 리스크를 키울 가능성은 농후하다. 정치체제와 경제발전의 관계에 관한 여러 연구는 정치적 안정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임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호소가 설득력 없게 들리는 이유는 대통령 자신이 뇌물을 받았다는 상당한 의혹이 있는 데다,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의 부패가 바로 국정중단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정부 부패가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은 얼마나 될까. 일반 상식과 달리 부패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는 명확지 않다. 놀랍게도 부패가 경제 및 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와 증거도 있다. 연일 보도되는 부패 스캔들에도 중국은 연평균 10%에 달하는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발전사를 돌아봐도 재벌과 정부의 유착 및 부패가 문제가 되지 않은 시기는 없었다. 그럼에도 각 국가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30년 기간의 성장률을 비교하면 한국과 중국은 세계 모든 국가의 역사를 통틀어 1, 2위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어떨 때 부패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복잡한 논의가 있지만 여러 사회과학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제도적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서는 부패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 반면 국가 기틀이 잡힌 경우에는 부패가 경제발전에 방해가 된다.

    경제발전은 한정된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가능하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이 임무를 국가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개발도상국 자본이 외국 원조와 차관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아 국가 개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원 배분을 결정할 경제 내부 체계가 잡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선진국은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메커니즘이 잘 발달해 있다. 자원 배분의 결정, 분배 메커니즘을 통틀어 사회과학에서는 ‘제도’라고 칭한다.

    개발도상국 정부가 직면하는 가장 큰 도전 가운데 하나는 누구에게 기회를 제공할지 선택하는 문제다. 많은 사람이 자본과 자원을 자신에게 분배해주길 원하는데, 어떤 지원자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고 경제발전에 기여할 것인지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발전한 국가는 기업의 구성 인원과 그 기업의 성과를 관찰할 수 있고, 어떤 제안서의 성공 가능성이 높은지 판단할 수 있는 지식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은 이 모든 것이 미비하다. 여기서 부패가 경제발전의 윤활유 구실을 한다. 자원을 분배하는 중요 의사 결정자를 특정해 접촉하고, 적당한 수준의 뇌물을 줄 수 있는 기업가가 그렇지 않은 기업가보다 상황 판단 능력이 더 있기 때문에 뇌물이 학력과 비슷하게 능력 판단 지표로 작용하는 것이다. 더욱이 개발도상국은 제도의 실질적인 공정성이 떨어지면서 온갖 비효율적인 관료 절차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뇌물은 이러한 비효율성을 우회해 효율성을 높이는 구실을 한다.

    실제로 세계 69개국 사례를 종합해 연구한 메온(Meon) 벨기에 브뤼셀자유대 교수와 웨일(Weill)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부패는 경제발전에 전반적으로 해를 끼치지만, 정부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정부 조직 효율성이 떨어지는 국가에서는 적당한 부패가 경제 효율성을 높이는 윤활유 구실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제도적으로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나라일지라도 지나친 부패는 경제발전에 해가 된다.



    부패가 초래하는 정치적 불안정

    이에 반해 제도가 발달하고 국가의 기강과 기틀을 갖춘 나라에서는 부패가 경제발전에 분명하게 해를 끼친다. 아이트(Aidt)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 등 영국 교수진의 2008년 연구에 따르면 정상적인 국가에서 부패지수가 한 단계 상승할 때 연간 경제성장률은 0.5%p씩 떨어진다. 연간 경제성장률 0.5%p는 매우 큰 수치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2.7%를 기록하고 있다. 부패로 경제성장률이 0.5%p 더 낮아진다면 이는 경제성장률이 19% 낮아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부패가 국가 경제를 망치는 가장 큰 이유는 미시적 경제활동의 효율성을 급격히 감소시키기 때문이 아니다. 정상적인 국가에서 개인의 부패가 경제에 끼치는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부패가 경제성장률을 낮추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58개국 사례를 이용한 모팍헝(Mo Pak Hung) 홍콩침례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부패 정도가 1%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은 0.72% 떨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낮아진 경제성장률의 53%가 부패 때문에 발생한 정치적 불안정에 의해 설명된다. 부패의 직접적 효과(12%)나 부패로 인한 자본 투자 비효율성(21%)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다.

    박 대통령이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국정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지만, 박 대통령과 그 주변의 비정상적인 국정운영과 부패가 바로 국정중단과 정치 불안의 원인이다. 진심으로 경제를 염려하고 국가를 걱정하는 정치 지도자라면 이런 식의 국정농단과 부패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부패가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을 줄이는 방법은 정치적 불안 요소를 시급히 제거하는 것이다. 부정은 이미 저질러졌다. 문제 근원을 제거함으로써 정치적 불안정의 기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 아닐까. 새로운 정치 실험을 계속하며 1년 4개월 동안 정치적 불안에 시달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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