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3

2016.11.16

경제

가상현실, 우리에겐 콘텐츠가 있다

뚜렷한 1등 없어 각국 시장 선점 위해 각축…걸음마 한국, ‘돈 되는 환경’ 조성이 관건

  • 조학동 게임동아 기자 igelau@donga.com

    입력2016-11-11 17: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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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VR(가상현실) 시대’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경험한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VR는 지금 강렬한 경험으로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가장 큰 미래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세계 정상급 기업도 앞다퉈 VR 기술력을 가진 회사들을 사들이며 경쟁에 동참하는 등 세계 자금이 VR로 몰리고 있는 것. 시장조사 전문기관도 대부분 VR 시장의 급성장을 점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전문기관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2020년 VR 시장 규모가 700억 달러(약 84조3150억 원)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VR 콘텐츠 개발에 미온적인 국내 기업

    문제는 해외의 적극적인 VR 시장 선점 경쟁 분위기와 달리, 국내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확실한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VR 시장의 급성장을 견인할 먹을거리는 바로 VR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다. 디지털 시장조사 전문기관 슈퍼데이터 리서치(Superdata Research)는 올해 세계 VR게임 시장 규모가 37억 달러(약 4조2400억 원)로 확장되고 VR 콘텐츠를 즐기는 이용자 수 역시 5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한국VR산업협회는 국내 VR 시장 규모가 2015년 9636억 원에서 2020년 5조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VR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제작하려는 곳이 많지 않다. 개발사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시장”이라며 미온적이고, 대기업은 “시장이 충분히 열리면 그때 뛰어들겠다”며 연구개발(R&D)팀만 구성해놓은 상황. VR 시장에 뛰어든 국내 몇몇 개발사를 들여다봐도 이 같은 사실은 자명해진다. 드래곤플라이, 조이시티, 스코넥엔터테인먼트 같은 게임 개발사가 개발을 진행 중이지만, 상용화보다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한 수준의 개발이나 주가 상승용 정도로 활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상 쪽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돌 가수들의 무대 영상이나 안무 연습 영상을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VR 영상에 만족하는 수준이다. 영세한 외주 업체들이 계속 뛰어들고 있지만 참신한 기획력이나 VR의 장점을 활용한 결과물은 거의 없다.

    국내 업체들이 VR 콘텐츠 시장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는 VR 시장 환경이 여전히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VR 콘텐츠를 사용하려면 엔비디아(NVIDIA)의 GTX1080급 그래픽카드가 탑재된 개인용 컴퓨터(PC)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 그래픽카드의 가격만 90만 원이 넘는다는 점. 이뿐 아니라 100만 원에 육박하는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도 필요하다. 헤드마운트의 무게는 보통 300g, 장시간 사용하기엔 너무 무겁다. VR 기기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멀미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러한 약점에도 다른 나라들은 VR 콘텐츠 및 생태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용자가 콘텐츠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2세대 VR 콘텐츠 작업이 한창이다. 일례로 10월 27일 일부 공개된 미국 VR 드라마 ‘인비저블’을 들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의 시선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일본은 ‘PS VR’ 출시와 함께 기존에 쌓아둔 유명 글로벌 게임아이피(IP)를 대거 VR로 끌어들이고 있다. 닌텐도의 대표 게임IP인 ‘포켓몬스터’를 이용한 AR(증강현실) 게임 ‘포켓몬GO’의 열풍을 보면 일본 게임IP와 VR의 결합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질지 예측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VR 콘텐츠 시장 선점에 나서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VR의 기술적 약점이 금방 해결되리라고 낙관하기 때문이다. GTX1080급 그래픽카드는 2년 뒤쯤 보급형 수준으로 가격이 내려갈 테고, 제품 자체의 경량화와 멀미 문제도 2년 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둘째, 의료나 헬스케어, 360도 실시간 동영상 등 VR의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의료연구기관을 중심으로 VR를 의료나 헬스케어 분야에 도입하고 있다. 버지니아 주의 병원, 군사기지, 학술의료센터를 포함해 60여 곳에서 VR 콘텐츠를 이용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가 시작됐고, 뇌 부분 진단이나 수술에 VR 기술을 활용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인터넷 실시간 동영상 분야 역시 유튜브를 비롯해 NestVR 등 여러 업체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 밖에도 실시간 4K 해상도 360도 카메라 ‘오라(Orah) 4i’나 실시간 동영상 통합 및 편집 기능을 지원하는 카메라 ‘라이브 플래닛(Live Planet)’이 공개되는 등 VR 영상 분야에서 기상천외한 진화가 이뤄지고 있다.

    외국 사례들을 보면 한국의 VR 콘텐츠 경쟁력은 매우 뒤처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10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VR 콘텐츠 시장 4000억 원 지원 방안도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반등의 기회는 있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정부 지원 불투명

    일본이 VR로 가공 가능한 유수의 게임IP라는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 한류라는 막강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드라마, 아이돌 가수를 비롯한 탄탄한 콘텐츠가 있으니 가능성은 충분하다. 국가 차원의 R&D를 통해 VR 콘텐츠 전문가를 육성하고 좋은 콘텐츠에 VR 기술을 접목한다면 ‘VR 한류 문화’도 만들 수 있다.

    한류 콘텐츠 외에도 엔씨소프트 ‘리니지’ 시리즈, 넥슨 ‘던전앤파이터’ 등 글로벌로 진출한 한국의 PC 게임IP도 활용할 만하다. 최근 중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웹툰 역시 VR 콘텐츠로 재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서서히 VR 콘텐츠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모양새다. 11월 6일 미래창조과학부는 VR 시장 투자 환경 조성을 위해 2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 및 운용할 전문 운용사로 (주)케이큐브벤처스를 선정하고 120억 원을 출자했다. 10월 24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현행 관광진흥법상 도심 속 소형 테마파크에 VR 시뮬레이터 설치가 불가능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VR 시장에 대한 도전은 아직 늦지 않았다. 기술이 시작 단계인 만큼 모든 나라가 같은 선상에 있고, 다들 준비 중일 뿐 아직까지 선점한 국가는 없다. 정부가 VR 콘텐츠 개발사 지원과 규제 완화를 통해 ‘VR가 돈이 되는 환경’을 구축한다면 한국은 충분히 세계적인 VR 콘텐츠 강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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