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3

2016.11.16

사회

내 전화번호가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발신번호 변작 횡행, 범죄 동조자로 전락한 영세 별정통신사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11-11 17:00:3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얼마 전 회사원 A씨는 갑자기 쏟아지는 문자메시지와 전화에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다짜고짜 A씨에게 “왜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느냐”고 거칠게 항의하며 욕설까지 내뱉은 것. 어안이 벙벙해진 A씨는 급기야 휴대전화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한참 뒤 누군가 선의로 보낸 문자메시지 덕에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당신의 전화번호가 발신번호 변작에 도용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과당경쟁에 범죄도 눈감는 별정통신사 

    최근 휴대전화 발신번호를 변작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과 스미싱(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전자금융사기)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무작위로 수집된 일반인의 전화번호가 금융사기를 위한 발신번호로 도용되고 있는 것. 과거에는 주로 검찰청, 금융감독원, 우체국 등 관공서 전화번호가 도용됐지만, 관공서 전화번호는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010’으로 시작하는 개인 전화번호를 도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부업체 등 마케팅을 목적으로 하는 스팸도 ‘070’(인터넷전화) 번호가 뜰 경우 대부분 수신을 거부하기 때문에 개인 전화번호를 도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전화번호 도용 피해는 728만 건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 5명 중 1명꼴로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전화번호가 도용된 사람은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모르는 이에게서 걸려오는 수백 통의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시달린다. 이에 일일이 해명하는 것도 고욕이거니와 연달아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업무까지 마비될 지경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화번호 도용 피해자를 상대로 금융사기를 벌이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피해자가 빗발치는 전화와 문자메시지 폭탄에 결국 휴대전화 전원을 꺼버릴 것을 예상하고, 그 틈을 타 피해자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돈을 인출하는 등 신종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 이처럼 발신번호 변작은 단순한 스팸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범죄에 악용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부터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불법 대부광고에 사용된 전화번호는 이용을 중지하고, 인터넷 발송 문자서비스 사업을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는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발신번호 변작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현재 발신번호 변작 검사 위탁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은 각 통신사가 발신번호 변작에 동조하지는 않았는지 수시로 점검한 뒤 만약 위반 사실이 밝혀지면 이를 미래부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통신사는 사업자가 발신번호 변경신청을 하면 통신사 가입증명원 등을 통해 정상적인 번호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기간통신사업자의 회선을 빌려 통신업을 하는 별정통신사업자(가상 이동통신망 사업자)다. SK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는 변작된 발신번호를 차단하거나 변작 전 번호를 알려주는 기술을 갖추고 있지만 영세한 별정통신사는 비용 문제로 이를 외면하거나 실적을 높이려고 사기범죄를 방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미래부에 고발되는 업체는 대부분 별정통신사다. 경찰서 한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신고 건의80% 이상이 별정통신사를 경유하고 있다. 기록 요청 공문을 보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제대로 협조하지 않아 수사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별정통신사의 낮은 진입장벽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부 허가와 심사를 받아야 하는 유·무선통신사, 인터넷통신업체 등 기간통신사와 달리 별정통신사는 재정, 기술 능력 등 일정 요건만 갖추면 등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 기간통신사는 89곳인 반면, 별정통신사는 6배가 넘는 576곳에 이른다. 정부가 이동통신 3사의 독과점 문제를 해소하고자 별정통신사업자 등록을 느슨하게 하다 보니 업체 간 과당경쟁이 치열해졌고, 불법을 눈감고서라도 수익을 내려는 업체가 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영세 별정통신사를 기술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보이스피싱 대응과 관련해 연간 8억 원 예산이 집행되는 반면, 별정통신사 기술 지원에는 5000만 원 정도만 사용되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발신번호 변작 차단과 관련해 별도 인력을 투입해 수시로 점검하고 있지만 영세한 업체가 워낙 많아 일일이 불법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앞으로 적극적으로 관리 시스템을 가동하겠다”고 해명했다.



    ‘번호도용 문자차단서비스’가 유일한 예방책

    발신번호 변작을 막으려면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만약 자신의 전화번호를 도용해 스미싱 문자메시지가 발송된 것이 확인되면, 먼저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해 자신의 문자메시지 발송 기록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스마트폰에 악성코드가 설치된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량의 스미싱 문자메시지가 발송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법 번호도용 범죄자를 적발하기란 쉽지 않다. 스미싱 문자메시지 대부분이 웹 발신 프로그램으로 전송돼 추적하기가 힘들다. 스팸신고센터나 통신사 고객센터에서도 “하루 이틀 지나면 잠잠해지니 견디라”는 답변만 내놓는다.

    결국 스미싱이나 스팸 등에 자신의 전화번호가 도용되는 것을 막으려면 ‘번호도용 문자차단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번호도용 문자차단서비스는 자신의 전화번호가 인터넷 발송 문자메시지의 발신번호로 사용되지 못하게 하는 장치로, 평소 인터넷으로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지 않는다면 되도록 신청하는 게 좋다. 각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로 신청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나중에 해지를 원할 경우에도 전화 한 통화로 가능하다. 이 서비스는 한국인터넷진흥원이 각 통신사로부터 신청받은 전화번호를 취합한 리스트를 인터넷 발송 문자서비스를 제공하는 문자중계사업자에게 제공해 같은 발신번호를 가진 인터넷 발송 문자메시지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기준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전체 통신사 가입자의 1%밖에 되지 않았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아직 많은 사람이 번호도용 문자차단서비스를 모르는 것 같다. 따로 요금이 부과되는 것도 아니고 원치 않을 경우 언제든 해지 가능한 서비스이니 웹 문자메시지 발송이 필요한 사업자가 아니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스팸과 광고 전화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KT ‘후후’와 SK텔레콤 ‘T전화’, 네이버 ‘후스콜’ 등이 있는데, 이들 앱은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 각사가 보유한 데이터베이스(DB)와 비교해 발신자 정보(스팸·광고)를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