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3

2016.11.16

특집 | 트럼프 쇼크

한반도 휘감은 안보 회오리바람

고립주의 외교·안보정책으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가능성 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truth21c@empas.com

    입력2016-11-11 16: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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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더는 세계 경찰 노릇을 할 수 없다.”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그동안 주장해온 외교·안보정책의 기본 노선이다. 세계 경찰 노릇을 포기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주장은 미국 외교·안보정책을 고립주의에 기반을 두고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미국은 건국 이후 한동안 고립주의로 일관했다. 제1·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마지못해 참전한 것도 이런 고립주의 전통 때문이었다.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은 옛 소련과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개입주의’로 바뀌었다. 미국은 소련의 팽창을 막고자 각국에 군사 지원을 해왔고, 탈냉전시대 이후에는 각국의 여러 분쟁에 개입해왔다. 고립주의는 다른 나라와 동맹도 맺지 않고 다른 나라의 분쟁에도 개입하지 않는 정책을 말한다.

    하지만 미국 내는 물론, 동맹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고립주의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자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외교·안보정책을 고립주의가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고 바꿔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말하는 미국 우선주의란 초강대국 미국의 국제적 소임을 버리고 자국 이익만 추구하겠다는 의미다. 포장만 바꾼 셈이다. 미국 우선주의는 엄밀히 말하면 ‘현실주의적 고립주의’라고 할 수 있다. 현실주의적 고립주의는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세계 경찰 노릇에는 반대하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사태에 미국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미국 국익이 침해받으면 군사력 행사를 불사하겠다면서도 미군의 해외 파병은 극히 예외적이고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우선주의로 선회

    트럼프 당선인이 동맹국에게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것도 현실주의적 고립주의에서 비롯됐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적절하게 지불하지 않고 있다면서 각 회원국이 분담금을 늘리지 않으면 나토를 지원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와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특히 한국을 지목하며 미국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해주는데도 방위비를 쥐꼬리만큼 낸다고 주장해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려고 경제적 이유를 들었다. 그는 “19조 달러(약 2경1850조 원)에 이르는 미국 국가부채가 기존 외교·안보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21조 달러로 늘어나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면서 “미국 경제를 동맹국 안보를 위해 희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개발로 거부가 된 트럼프 당선인이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그동안 주창해온 글로벌 질서 유지나 동맹의 가치에는 전혀 관심 없고, 부동산 재벌답게 ‘비즈니스 관계’에 따른 손익만 따지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외교·안보 등 모든 사안을 철저히 사업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것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민간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은 “트럼프는 미군의 해외 주둔과 동맹체제를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적의 위협 저지, 국제질서 유지 등을 위한 공공재적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단지 돈 문제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앞으로 이러한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할 경우 전 세계가 자칫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유럽연합(EU)과 나토는 러시아의 군사 위협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 나토는 그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러시아 제재를 명분 삼아 정치적으로 단단히 결속해왔다. 그런데 지금 유럽연합과 나토 회원국은 친러시아 성향을 보여온 트럼프 당선인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워질 경우 미국과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은 러시아가 침공하더라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 때문에 안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반면 러시아는 트럼프의 당선을 반기고 있다. 미국이 유럽 안보에 개입하는 것을 꺼리고 나토와도 관계가 악화될 경우 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에 대한 중국 역할론

    중동 국가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당선인은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강경하게 밝혔을 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보호 비용을 제대로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는 러시아와 협력해 시리아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에 반발해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것보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패배시키는 게 훨씬 더 먼저”라면서 러시아와 협력할 뜻을 내비쳤다. 이란도 트럼프 당선인이 핵협상 타결에 대해 ‘최악의 협상’이라며 거부감을 드러낸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란은 못 믿을 나라고 좀 더 압박해 이란의 핵무장화를 완전 해체했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국도 자칫하면 무역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을 미국 국민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주범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그는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과 45% 관세 부과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만약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후 이런 공약을 이행한다면 중국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안보 위기로 비화될 수 있다. 반면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 체제나 인권문제를 직접 거론한 적은 거의 없고, 중국 안보에 부담이 되는 주한·주일미군 배치에 대해서도 회의론을 제기해왔다.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가장 먼저 주장한 것도 그였다. 중국은 또 트럼프 당선인이 그동안 남중국해 문제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미국의 개입이 훨씬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과 이해관계가 가장 상충하는 부분은 북한 핵 문제다. 트럼프 당선인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면서 중국 역할론을 강조해왔다. 그는 “중국은 북한을 완전히 통제·관리한다”며 “북한을 이용해 중국이 우리를 농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북한 핵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북한 김정은은 운반 수단만 확보되면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충분히 병적인 인물”이라면서도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그와 얘기한 것이 전부”라고 지적해 북한과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동맹관계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철수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집권으로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 외교·안보 지형에도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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