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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의 편지’ 10년 저작권 싸움

김광석 사후 가족들 간 팽팽한 대립 … 10주기 각종 추모 행사 잇따라 포기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이등병의 편지’ 10년 저작권 싸움

‘이등병의 편지’ 10년 저작권 싸움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안양암에 마련된 고 김광석 씨 영정사진 모습. 아직도 매년 1월6일에는 그를 잊지 못하는 팬들이 그를 찾아오고 있다. 그의 유골과 9개의 사리는 3년 전 경북 봉화군 청량산에 뿌려졌다.

‘벌써 10년이나 흘렀나?’

2006년 1월6일은 386세대의 영원한 가인(歌人) 김광석 씨가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지 10년째가 되는 날이다. 김 씨는 1996년 1월6일 새벽, 그의 집 4층 계단에서 전깃줄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의 팬들과 지인들은 그의 사망 이후 쏜살같이 흘러간 10년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김광석 10주기’를 맞이하는 눈치다. 김 씨의 10주기에는 다양한 추모행사가 펼쳐지리라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난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PMG의 송승환 대표는 3년 전부터 ‘김광석 프로젝트’(가칭)를 준비해왔다. 그의 노래를 중심으로 하는 뮤지컬을 10주기에 맞춰 무대에 올릴 계획을 세워놓았던 것.

그의 음악 친구들이자 지금은 한국의 대표 뮤지션으로 성장한 박학기, 안치환, 이소라, 윤도현, 동물원, 여행스케치 역시 4년 전에 그를 기리는 헌정 앨범을 발표하며 그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10주기를 기다려왔다. 팬클럽인 ‘둥근소리’(www.oneum.net)도 해마다 그의 기일이 돌아오는 1월, 추모 음악제를 개최하며 결속력을 유지해왔다.

“양측 불신의 벽 너무 높아”



그러나 이번 10주기에는 팬클럽이 개최하는 소규모 추모 행사들 외에는 그 어떤 행사도 제대로 빛을 내지 못할 전망이다. ‘뮤지컬 김광석’은 대본 미비로 2006년 하반기로 미뤄졌고, 동료 가수들의 움직임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망인인 서해순(40) 씨가 사망 10주기를 추모해 제작한 베스트 앨범만이 잠시 그에 대한 갈증을 축여줄 뿐이다.

‘포크음악의 파수꾼’이자 ‘녹두꽃의 가수’로 부각됐던 그가 죽고 난 후 10년간 그의 이름 석 자 주변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의 기일은 음력 11월15일이므로 음력으로 사망 10주기는 올해 12월16일이 된다.

음력 기일 그의 가족들은 그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자택 부근의 안양암이라는 절에서 제사를 지내며 영혼을 달래왔다. 그리고 그의 팬들과 지인들은 가족과 별도로 양력 1월 6일에 안양암을 방문해 그를 기리는 조촐한 행사를 가져왔다.

그런데 미망인 서해순 씨와 피붙이인 딸은 가장 의미 있는 이 가족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해 왔다. 안양암 관계자는 “그간 미망인은 기일 이튿날에야 조용히 몇 번 방문했을 뿐이다”며 “양측의 불신의 벽이 너무 높아 함께 제사도 못 지낼 지경인 것 같다”고 귀뜸했다. 주인공이 사라진 현실에는 살아남은 이들의 갈등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생전에 김 씨가 녹음한 음원에 대한 ‘저작인접권’ 때문이다. 저작인접권이란 가수 등 실연자가 공연 녹음·녹화에 관해 갖는 권리를 말한다.

‘이등병의 편지’ 10년 저작권 싸움

고 김광석 씨의 어머니인 이달지(76) 여사는 아직도 김광석 씨가 태어나고 자란 종로구 창신동의 허름한 자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의 큰아들은 80년대 군대에서 사고로 사망했고, 셋째 아들 김광석 씨마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로 삶을 마감한 탓에 느끼는 허탈감은 더 컸다. 이 여사는 막내아들의 10주기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타살로 생각하고 있었다.

11월2일 서울 중앙지법 형사단독14부(부장판사 김진동)는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가수 고 김광석 씨의 아버지가 가진 저작인접권을 침해한 혐의(저작권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김 씨의 부인 서해순 씨와 서 씨가 운영 중인 음반사에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것. 서 씨는 2000년부터 2002년 사이에 자신이 직접 ‘김광석 컬렉션-My way’를 제작하고 타 음반제작자에 원본 테이프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김 씨 아버지의 권리를 침해한 혐의를 받아왔다. 서 씨는 이 같은 판결 결과에 대해 즉각 항소할 뜻을 분명히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김광석 씨의 아버지인 김수영(작고) 씨가 아들의 음악에 대한 저작권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저작권이란 음악가 자신이 갖게 마련인데, 죽기 3년 전인 93년에 당시 서른 살이던 김광석 씨가 아버지에게 그 권리를 넘겼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해석부터 양측의 주장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부모 측은 93년 김 씨가 서울음반에서 킹레코드(현 신나라 레코드)로 전속 계약을 옮기면서 ‘이혼에 대비’해 본인의 이름이 아닌 아버지 이름으로 계약을 했다는 설명이다.

‘이등병의 편지’ 10년 저작권 싸움

고 김광석 씨 미망인 서해순(40) 씨는 3년 전 미국에서 돌아와 영원히 서른 셋에 머물고 있는 고인을 기억하기 위해 ‘위드33음반’을 만들었다.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 자리한 이 회사에서 서 씨는 김광석 사후 10주년을 기리기 위한 ‘김광석-10주기 베스트 앨범’을 발매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재판 결과에 대해 “법원이 해석을 잘못 했기 때문이라며 항소할 예정이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러나 서 씨의 주장은 정반대다. 애초부터 김광석 씨 음악저작권에 대한 모든 권리는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이 기본 뼈대. 1~4집 앨범의 원본 격인 ‘멀티(Multi) 테이프’의 저작권이 아버지가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주요한 근거로 내세운다. 서 씨는 김광석 씨가 사망하고 100일이 지난 96년 4월17일 곧장 ㈜킹레코드와 시아버지 김 씨를 상대로 저작권사용료 청구권확인소송을 서울지법에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서 씨는 소장에서 “아버지를 계약 당사자로 내세운 이유는 단지 보호자로서 필요했을 뿐이다”며 “계약 직후 선저작권 사용료 5억원을 받아 남편과 공동명의로 건물을 지었을 때도 시아버지는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한 가지 갈등의 원인은 이 소송으로 야기된 양측의 합의내용과 번복에 대한 책임 소재에 있다. 음악저작권에 대한 소송 갈등이 김광석 씨의 죽음에 대한 논란으로 확산되자 96년 6월26일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저작권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하게 된다. 그 내용은 김광석 생존 시에 제작한 4개의 앨범(다시부르기1, 다시부르기2, 김광석 3번째 노래모음, 김광석 네 번째)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모든 권리를 갖고, 향후 제작할 라이브 음반에 한해서만 서 씨가 권리를 갖기로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 때문에 시부모 측은 2003년 서 씨가 제작한 추모 앨범에 아버지가 권리를 갖고 있는 ‘거리에서’ 등 21곡을 동의 없이 사용해 음반을 제작·판매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주장이다. 1차 판결에서 법원은 김 씨 부모의 손을 들어줬지만 소송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2004년 10월8일, 김수영 씨가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저작권 논쟁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96년 합의에서 양측은 ‘기존 앨범(아버지)과 라이브 앨범(며느리)’으로 나누되 아버지가 사망할 때는 그 권리를 손녀인 서우 씨에게 맡기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시아버지는 96년 합의서 작성 직후 합의서와 달리 자신의 권리를 김광석 씨의 어머니와 둘째 아들에게 넘기는 유서를 작성해 공증까지 마친 상태. 며느리인 서 씨와의 합의서는 서 씨의 집요한 법적 공세에 지쳐 마지못해 양보했던 것이라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서 씨 측은 “합의를 마치고 일주일 만에 유언을 통해 합의를 번복하는 것은 신의 성실의 원칙을 어긴 것이다”며 소송을 통해 그 권리를 찾겠다고 나선 상태. 이 유서의 법적 효력에 대해서는 12월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 1심 판결에서 가늠될 전망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현재 서 씨는 김광석 씨의 10주기를 맞이해 2개의 CD로 구성된 새로운 음반을 준비 중이다. 서 씨는 시아버지가 사망하자 그 권리가 딸의 대리인인 자신에게 넘어왔다는 전제 아래 과거 1~4집에서 사용된 ‘이등병의 편지’ ‘변해가네’ 등의 주요 히트곡을 총망라한 베스트 앨범을 출시하기로 한 것. 결국 김 씨 아버지의 유서에 대한 권리가 확정돼야 이 앨범의 적법성 여부가 가려지게 된다.

죽은 남편의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한 서 씨의 기획음반에 대해서도 뒷말이 많다. 소송 와중에 벌어진 서 씨의 결정에 대해 포크 가수들뿐만 아니라 김 씨의 가족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서 씨도 할 말은 많다. 유일한 혈육인 딸이 성장장애증후군으로 지능이 낮아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 게다가 남편의 사망 직후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인해 해외생활을 오래 해야 했기 때문에 생활비와 양육비가 많이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김광석 씨는 생전에 동물원, 노찾사 등의 옛 노래 친구들과 운동권 가요의 대중화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고 한다. 김광석 씨의 도전은 민중가요의 대중성이라는 명예를 얻었지만 종국에는 상업성의 마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꼴이 됐다. 과연 그의 20주기 행사는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주간동아 2005.12.13 514호 (p38~39)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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