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0

2005.06.21

어머니 손맛과 정성 “김치 없인 못 살아”

  • 장한진 chjparis@hanmail.net

    입력2005-06-17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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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손맛과 정성 “김치 없인 못 살아”

    김치방의 대표적 메뉴인 김치국수.

    언제부터 김치를 먹어왔을까. 김치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반면 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지금처럼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린 김치는 18세기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추가 한반도에 상륙한 게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고도 몇 세기가 지나서니까.

    여하튼 김치 없는 밥상은 생각만 해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만큼 김치는 우리에게는 기본 반찬이자 몸에 가장 많이 밴 음식이다. 물론 요즘 같은 때 김치 없이는 못 산다고 하면 촌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외국에 한번 나가보라. 이틀만 지나도 절로 김치타령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김치는 단순한 반찬을 넘어서 그 자체로 다른 요리의 재료가 된다. 김치를 재료로 한 요리만 해도 수없이 많다. 그저 밥과 함께 쓱쓱 비비기만 해도 굳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는 훌륭한 음식이 되고, 또 김치로 찌개를 만들어놓으면 밥 한 공기 뚝딱 먹어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리고 출출할 때 그만인 것이 김치전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음식들은 김치 외에 특별한 재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김치를 주재료로 하는 요리는 생각보다 맛을 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김치 자체가 맛깔스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KBS별관 옆에 있는 아담한 음식점 ‘김치방’은 이름 그대로 김치요리 전문집이다. 이곳에서는 김치국수, 김치국밥, 김치전골, 김치주먹밥에서부터 김치전, 두부김치, 김치해물전, 묵은 김치와 함께 내는 홍어삼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김치요리를 선보인다. 김치방은 13년 전부터 김치국수와 김치국밥, 김치주먹밥으로 많은 이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었다. 건물을 다시 짓는 바람에 5년 전 여의도로 옮겨가기 전에도, 서소문에서 김치요리 하나로 주변 직장인들을 사로잡았던 곳이다.

    그런데 김치방의 음식은 뜻밖에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조금만 멋을 내도 더 맛있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꾸밈이 없다.





    김치방의 대표적인 메뉴인 ‘김치국수’를 받아보면 “어, 이게 다야”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정말 단순하다. 김칫국물에 만 국수에 쫑쫑 썬 김치를 얹은 게 전부다. 잔뜩 기대하고 온 이들은 틀림없이 실망할 것이다. 그런데 국수 그릇을 다 비우고 나면, 이래서 찾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마디로 소박한 맛이다. 강하지도 요란하지도 않다. 누군가의 눈길을 끌기 위해 치장한 자태가 아니다. 그저 맑고 시원한 김칫국물과 양념조차 묻어 있지 않은 배추김치, 그리고 평범한 국수가 입맛을 사로잡는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가 즉석에서 말아준 김치국수 한 그릇처럼 정겨움마저 느껴진다.

    어머니 손맛과 정성 “김치 없인 못 살아”

    소박한 분위기의 김치방 내부(위).<br>김치국밥과 김치주먹밥, 김치방에서 직접 담근 맛깔스러운 김치(아래 왼쪽부터).

    약간 붉은 기만 감도는 김칫국물은 깔끔하고 시원하다. 이 맛을 찾기 위해 이 집 주인 김진주 씨는 먼 길을 돌아왔단다. 시부모가 함경도 분이라 김치말이국수를 자주 접할 수 있었는데, 시어머니의 솜씨에 자신의 솜씨를 더하여 지금의 음식들을 만들어내기까지에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단다. 처음에는 김치와 육수를 결합해보기도 하고, 육수 대신 멸치국물을 섞기도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찾아낸 것이 약하게 양념을 한 배추김치를 김치통의 3분의 1 정도까지만 채운 뒤, 뜨지 않게 돌로 누르고 여기에 생수를 부어 김치를 담그는 방식이었다. 실온에서 사나흘 숙성시킨 뒤, 냉장고에서 열흘 이상 더 익히면 알맞게 상큼한 맛을 지닌 김치가 된다. 그 연한 빛깔의 김칫국물 그대로를 차게 해서 거기에 국수를 말고, 완전히 양념을 털어내 쫑쫑 썬 김치를 얹으니, 깔끔하고 맛깔스런 김치국수가 나왔다.

    김치국수를 시킬 때 ‘주먹밥’도 주문해보자. 밥에 살짝 볶은 김치와 고춧가루, 고추장, 식용유를 넣어 먹기 좋은 크기로 뭉친 김치주먹밥은 상큼하고, 잔멸치와 검은깨를 넣어 만든 주먹밥은 고소하다. 국수를 먹다가 주먹밥 하나를 입에 넣고 맛을 본 다음, 국수국물로 입가심을 한 뒤 국수를 먹고, 다시 주먹밥으로 가본다. 이런 식으로 먹으니 양쪽을 다 즐길 수 있다. 주먹밥에 김칫국물이 잘 어울린다. 물론 김치국수의 순수한 맛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국수를 다 먹고 난 뒤, 주먹밥을 먹으면서 김칫국물을 곁들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 다른 대표적인 메뉴인 ‘김치국밥’도 자극적이고 현란한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에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김치국밥의 김치는 김치국수의 그것보다는 양념을 강하게 해 담근 것이다. 하지만 김칫국은 탁하지 않고 시원하다. 국밥에 김치를 넣을 때 양념을 거의 다 털어내기 때문이다. 김치국밥에 들어가는 김치는 묵은 김장김치처럼 오래 삭힌 김치가 아니라, 20일 정도 숙성시킨 것이라고 한다. 이 김치를 새우, 굴, 홍합, 오징어와 함께 멸치국물에 끓이면 시원한 맛이 난다. 공깃밥을 처음부터 다 말면 시원한 국물 맛을 즐길 수 없으니, 어느 정도 국물을 즐긴 뒤 말아먹는 것이 좋지 않을까.

    돼지고기를 넣어 끓이는 ‘김치전골’에 들어가는 김치도 따로 담근다. 고기와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에 양념을 강하게 해서 익힌 김치를 사용한다. 김치국수나 김치국밥과는 달리 양념도 거의 제거하지 않는다. ‘홍어삼합’에 따라나오는 김치는 묵은 김치다. 그렇다고 1, 2년 묵은 것은 아니다. 길어봐야 3개월 정도 묵힌 김치다. 너무 오래된 김치는 김치 맛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영양가도 상당히 낮다는 게 집주인의 생각이다. 몇 년 묵은 김치가 아니더라도 홍어, 삶은 돼지고기와 잘 어울린다는 것은 직접 확인해보라.

    ‘김치방’에 오면, 김치의 맛깔스러움과 어머니의 손맛에서 우러나오는 정겨움을 통해 집주인의 김치에 대한 묵묵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김치방’의 음식들은 끊임없이 유행을 타는 요란스럽고 자극적인 음식들과는 거리가 멀다. 이 소박하고 투박하기까지 한 ‘김치방’의 음식들을 찾아 멀리서부터 오는 이들이 적잖다면, 아마도 그 음식들이 김치의 맛깔스러움에 정성을 넣어 버무린 음식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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