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전대월 너무 믿었거나 속았거나

굵직한 물주 끌어들여 김선달 식 고수익 추구 … ‘오일게이트’ 이전에도 유·무형 피해자 양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전대월 너무 믿었거나 속았거나

전대월 너무 믿었거나 속았거나

전대월 씨가 4월28일 서울구치소로 가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전대월 씨요? 돈 끌어당기는 재주 하나는 끝내줬죠.”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이른바 ‘오일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한국크루드오일 대주주 전대월(43·하이엔드 전 대표·구속 중) 씨를 이렇게 평했다. 검찰이 이광재 의원을 내사중지하면서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의혹 사건은 “사기극에 이광재 의원이 농락당했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일게이트’는 이 의원의 주장대로 사기극에 불과한 것인가. 전 씨와 사업을 함께 하거나 그를 아는 인사들은 “치밀하거나 똑똑한 사람은 아니지만, 전 씨는 돈을 당기는 능력만큼은 대단했다”고 입을 모았다. 철도청을 포함해 전 씨에게 자금을 지원하거나 함께 사업을 한 이들은 대부분 손해를 보았다. 시쳇말로 ‘제대로 물렸다’는 것이다.

전 씨는 이 의원의 지역구인 강원 평창군에서 태어나 평창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 검정고시를 통해 고졸 자격을 취득했다. 13대 국회 때 의원 보좌관 노릇을 잠시 하다, 1993년 ‘대재’라는 조그만 건설회사를 세우면서 건축업에 뛰어든다. 2000년대 초 부동산개발업자(디벨로퍼)로 변신했는데, 디벨로퍼는 ‘브로커’로도 전락할 수 있는 ‘고위험 고수익’ 업종이다.

업계에 알려진 바 없는 무명 디벨로퍼는 ‘땡기는 재주’로 2001년 경기 안양시에서 대박을 터뜨린다. ‘아파트형 공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8층 규모의 ‘메가밸리’가 2주일 만에 분양을 마친 것. 업계에선 메가밸리의 성공에 의아해했다. “‘초짜’ 디벨로퍼가 국민은행을 ‘돈줄’로,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업계 관계자 S 씨. 건축사업에서 디벨로퍼가 실제로 쓰는 돈은 보통 땅값의 10% 정도다).



야당, 특검법 6월 중 통과 방침

국민은행이 600여억원을 주선한 데다, 안양시가 메가밸리를 벤처기업육성단지로 지정하면서 입주자는 등록세와 취득세가 100% 면제되는 혜택을 누렸다. 국민은행은 중소기업 육성을 돕고자 아파트형 공장 사업에 자금 조달을 주선해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메가밸리는 아파트형 공장이라기보다는 인텔리전트 오피스 빌딩에 가까워 보인다.

메가밸리의 성공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린 전 씨는 ‘더욱 큰 사업’에 뛰어든다. ‘물주’로 나타난 건 군인공제회의 자(子)회사인 대한토지신탁. 그러나 대한토지신탁과 함께 사업을 벌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3조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는 군인공제회는 부동산업계의 ‘큰손’. 전 씨가 대한토지신탁의 돈을 ‘땡겨’ 벌인 사업은 강원 평창군의 ‘휘닉스하이엔드콘도미니엄’이라는 레저 시설이다.

이와 관련해 월간조선은 6월호에서 “군인공제회의 자회사인 대한토지신탁이 전 씨가 추진하는 사업에 1000여억원을 투자했다”면서 “정권 실세의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이미 알려진 내용인 데다(분양 당시 하이엔드는 대한토지신탁이 참여했다는 걸 대대적으로 광고했고, 일간지에도 이런 내용이 실렸다), 줄거리를 이어가는 주요 팩트가 사실과 다른 오보성 기사였다.

전 씨가 평창 콘도에 관심을 가진 건 2002년 초다. 보광휘닉스파크가 소유한 1만여평을 점찍은 전 씨는 ‘물주’를 찾아나선다. 평창군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추진하던 때라 대박을 기대할 수 있었다. 모 금융기관에 의사를 타진했으나 돌아온 답은 ‘No’. 이때 메가밸리의 성공을 재현하려는 그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곳이 바로 대한토지신탁이다.

업계 관계자 S 씨는 “레저 쪽은 바닥이 좁아 어떤 디벨로퍼가 뭘 한다고 하면 시시콜콜 다 알게 돼 있다. 전 씨는 한마디로 무명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군인공제회 자회사에서 돈을 끌어왔는지 지금도 의심스럽다. ‘배경’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부동산업계의 큰손인 군인공제회 사업엔 시공사로 참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전 씨가 대한토지신탁과 사업에 나선 건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전인 2002년 10월께로 이 의원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전 씨가 다른 ‘배경’을 이용했거나, 대한토지신탁이 사업성이 높다고 판단해 돈을 댄 것 중 하나다. 대한토지신탁 관계자는 “투자는 엄정한 심사를 거쳐 이뤄진 것으로 전 씨가 땅을 내고, 공사비는 대한토지신탁이 맡기로 신탁계약을 한 뒤 추진한 것으로 계약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탁사업은 자본력이 없는 지주가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신탁사에 사업 개발을 의뢰해 추진하는 사업으로, 신탁사는 토지소유권을 이전받아 사업 주체로서 토지대금을 제외한 공사비 등 제반 사업비를 조달 및 집행해 사업정산 후 지주에게 개발이익의 일정 부분을 되돌려주는 제도다. ‘하이엔드콘도 사업’에선 전 씨가 ‘지주’가 되고, 대한토지신탁이 ‘사업 주체’가 된다.

전 씨는 메가밸리의 대박으로 번 돈 등으로 ‘겨우’ 60억원을 하이엔드콘도 사업에 지출했다. 토지 매수 비용 100억원 중 40억원은 대한토지신탁이 도와줬다. 반면 대한토지신탁은 이 사업에 금융비용을 포함해 873억원을 쏟아부었다. 사업이 성공할 경우 ‘지주’인 전 씨가 받을 돈은 약 300억원이었다고 한다. 리스크가 없지는 않지만, ‘토지소유권’을 이전해주고 500%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봉이 김선달’ 식 사업인 셈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2005년 6월 현재 분양률은 25%.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한토지신탁이 제대로 물렸다. 군인공제회 쪽에서 하는 일도 실수할 때가 있는 듯싶다”고 말했다. 사업 주체로서 소유권을 가진 대한토지신탁은 현재 투자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콘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 관계자는 “수익성 측면에선 잘못된 투자지만, 매각에 성공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평창군에서 ‘물주’인 대한토지신탁에 유·무형의 피해를 준 전 씨는 2003년 강원 춘천시로 무대를 옮긴다. 춘천 만천리에서 ‘땅 작업’(개발할 토지를 물색하고 인수에 나서는 것)에 나선 것. 만천리는 요사이 춘천의 신(新)주거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 씨는 대한토지신탁을 ‘물주’로 다시 끌어들이려고 했다. 군인공제회 쪽에서 실패한 사업가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무슨 배짱인지 전 씨는 대한토지신탁에 SOS를 요청했다.

대한토지신탁이 머뭇거리는 사이 전 씨는 새로운 ‘물주’를 구한다. 만천리 아파트를 시공한 A건설이 그곳이다. 전 씨는 만천리 공사에 ‘시행사’로 참여하고, A건설은 ‘시공사’로 참여했다. 지급 보증을 한 A건설은 하이엔드의 경영 사정이 악화되면서 낭패를 겪는다. 공동명의로 진행하는 사업에서 하이엔드 측의 도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A건설 역시 전 씨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이다. 공교롭게도 군인공제회는 올 하반기 A건설이 시공한 아파트에서 200m 떨어진 곳에 회원아파트를 짓는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평창군과 춘천시에서 ‘물주’에게 쓴맛을 보여준 하이엔드는 지난해 8월 부도났다. ‘물주’를 잘 구해 ‘봉이 김선달’식으로 사업을 벌여온 전 씨가 무너지게 된 것은 경기 용인시 동진원(옛 나환자촌) 일대의 ‘땅 작업’에 나서면서라고 한다. 동진원은 규제가 많고 땅값이 비싸 경력이 일천한 전 씨에게는 무리였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2003년 하반기부터 2004년 부도나기 전까지 용인 땅 작업이 이뤄졌는데 그때부터 되돌릴 수 없는 자금난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 씨가 이 의원에게 접근해 석유전문가로 알려진 허문석 씨를 소개받은 건 자금난이 악화되던 그 즈음이다(2004년 6월). 철도청을 끌어들여 러시아 유전개발을 명분으로 한국크루드오일을 설립한 시기는 부도나기 바로 직전이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전 씨가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으로 재도약을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오일게이트’는 전 씨가 안양시, 평창군, 춘천시를 돌며 벌인 이전 사업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전 씨는 유전계약을 체결한 뒤 지분 42%를 84억원에 철도청에 넘기기로 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예의 ‘봉이 김선달’ 식으로 대박을 터뜨릴 뻔한 것. 안양시의 아파트형 공장 사업에서 국민은행을, 평창군 하이엔드콘도 사업에서 대한토지신탁을 ‘물주’로 끌어들여 공신력을 높인 것은 유전 사업에서 철도청을 참여시킨 것과 엇비슷하다.

전 씨의 이런 수완은 어디서 나왔을까. 전 씨는 ‘인맥’을 만드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의원 측은 지난해 4·15 총선 때 전 씨에게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았다. 전 씨는 자금난을 겪던 지난해 6월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강원도 출신 17대 국회의원 당선 환영회 행사비 전액을 후원하기도 했다. 환영회엔 남편 고향이 태백시인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L 의원, 남편의 고향이 강릉시인 한나라당 J 의원, 양구군에서 유아기를 보낸 우리당 J 의원 등도 초청돼 성황을 이뤘다.

유전개발 사업에 국한해선 전 씨가 무죄를 받을 거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돈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에 뛰어든 것이라고 법원이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 씨가 이전에 디벨로퍼로 벌인 사업들도 굵직한 물주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으나 ‘배경’이나 ‘불법’은 드러나지 않았다. ‘봉이 김선달’ 식으로 고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유·무형의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현재로선 이 의원도 전 씨에게 ‘물린’ 대한토지신탁, A건설과 같은 피해자의 하나일 확률이 커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 씨는 신뢰감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인상도 그렇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크게 믿음을 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또 누굴 속일 만큼 치밀하거나 똑똑한 사람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안양시 메가밸리의 성공으로 전 씨의 능력을 오해한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속았다면 속은 이들이 바보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6.21 490호 (p36~38)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7

제 1217호

2019.12.06

아이돌 카페 팝업스토어 탐방기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