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7

2005.05.31

피 끓는 청춘 위한 책 여행 가이드

  •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입력2005-05-27 13: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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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읽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고민할 때가 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에 올라가 있는 책을 고른다면 절반은 성공하는 셈. 그러나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 읽어야 할 책’식의 추천도서 목록이다. 이런 목록은 주로 초등생, 10대, 청소년 등 연령별로 나뉜 것이 특징.

    피 끓는 청춘 위한 책 여행 가이드

    김영건·김용우 엮음/ 책세상 펴냄/ 632쪽/ 1만5000원

    최근 20대를 위한 추천도서 목록이 나왔다. 아니, 목록이라기보다 자체가 한 권의 책이다. 제목은 ‘우리시대 선배가 권하는 20대에 읽어야 할 한 권의 책’이다. ‘책세상문고·우리시대 100권’ 출간에 참여한 필자 77명이 각자 한 권씩 총 77권의 책을 소개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기존에 흔히 쓰이던 책 소개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책 머리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전문가가 다른 전문가의 작업을 그들만의 용어로 냉혹하게 평가하는 방식도, 책의 줄거리와 장단점을 일방적으로 설파하는 방식도 아니다. 그 속에는 저자들이 책을 읽게 된 사연과 추억, 그것에서 얻게 된 성과와 영향, 자신의 학문 세계와의 연결고리, 책에 대한 저자들만의 독특한 해석이 아우러져 있다.”

    이 책이 소개하는 77권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고전 제목을 나열하는 구태의연함 대신 정치·경제·사회·문학·역사·예술·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며, 시대적으로는 동서양 고전에서부터 최근의 신간까지 망라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있는가 하면, 김동훈의 ‘학벌사회’,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같이 사회의 현실적 문제를 파고든 책도 있다. 그리고 책에 대한 소개 말미에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을 추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의 사상’을 소개한 뒤에는 ‘레즈를 위하여-다시 읽는 공산당 선언’, ‘금오신화’ 뒤에는 ‘보르헤스 전집’을 덤으로 소개하는 식이다.

    가나다 순서 덕에 맨 앞에 소개된 ‘걸리버 여행기’를 한번 보자. 이 책을 소개한 한양대 연구교수 이남석 씨는 “걸리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렸을 적 걸리버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도 없다. 그러나 걸리버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못박았다. 걸리버가 거인국과 소인국 외에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 라퓨타와 절대적으로 선한 인간들이 사는 휴이넘의 나라를 여행했고, 무엇보다 이 책이 금서였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너무 친숙한 이름의 책이지만 실상 사람들은 이 책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알고 있음을 꼬집는다.



    역사학자 조지형 씨는 중학교 시절 지적 충격을 안겨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통해 인습과 권태에 빠진 현대인의 자화상을 비판하고, 순간성으로 가득한 현대사회에서 영원성을 찾으려고 했던 보들레르의 전율과 고통을 전해준다. 또 성서학자 이종록 씨는 인간의 삶을 하나님과의 종교적 관계로 설명하는 기독교의 시각을 탈피해 진화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딜런 에반스의 ‘진화심리학’을 소개했다.

    자신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준 한 권의 책을 소개한 경우도 있다. ‘파란 꽃’을 소개한 문학평론가 김진수 씨는 “이 책을 통해 현실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낭만적인 사랑과 혁명의 꿈을 되살렸다”며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교육학자인 정유성 씨는 1970년대 ‘페다고지’ 복사본에서 접했던 ‘의식화’라는 한마디가 삶의 화두가 되어 교육을 통해 우리 땅의 앞날을 제대로 열어보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이밖에도 유시진의 만화 ‘마니’를 비롯,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이승헌의 ‘아이 안에 숨어 있는 두뇌의 힘을 키워라’,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함석헌의 ‘뜻으로 본 역사’, 황석영의 ‘손님’, 이기형의 ‘여운영 평전’ 등이 필자들의 솔직 담백한 필체로 소개돼 있다.

    이 책 한 권이면 77권의 책에 대한 윤곽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책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책은 젊은 세대를 독서로 이끌어주는 길잡이 구실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말을 냇가로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까지 먹여줄 수는 없는 법. 이 책을 읽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것은 바로 독자들의 몫이다. 20대여, 책을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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