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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에 비친 인생④

‘나눔’의 따스한 손으로 사회 치료

장일태·김혜남 의사 부부 … 남다른 의술과 노하우 인본주의 의료 철학 실천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나눔’의 따스한 손으로 사회 치료

‘나눔’의 따스한 손으로 사회 치료

나누리병원 옥상 폭포 정원에서 장일태 박사(큰사진 왼쪽)와 김혜남 원장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서울 강남구 논현동 나누리병원(작은사진).

서울 강남구 논현동 도산공원사거리와 관세청사거리 사이에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다. 사방이 유리로 된 시원한 건물 외관도 외관이만, 특히 이 건물의 이름이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바로 ‘나누리병원’이다.

병원 어귀에는 강원도 어느 펜션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비치파라솔이 자리 잡고 있고, 옥상에는 그네가 있는 폭포 정원이 환자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이 병원 이름이 ‘나누리병원’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병원 원장 장일태(47) 박사의 인본주의 의료 철학 때문. 장 박사가 말하는 인본주의 병원은 ‘상업적 치료가 아니라 환자의 고통을 나누는 시스템을 갖춘 병원’이다.

장 박사는 ‘나눔 의료’를 탄광촌 병원 근무 시절, 갱도가 무너져 숨진 대학생 형제의 시신 앞에서 “학비를 벌려다 이렇게 됐다”며 목놓아 우는 어머니를 지켜본 뒤 마음속에 새기게 됐다. 그는 그때 ‘가난 때문에 아파서는 안 된다’고 굳게 다짐했다. 이때부터 ‘나누리’의 꿈이 시작된 것.

아름다운 재단 지정 ‘나눔병원 1호’



나누리병원은 아름다운 재단이 지정한 ‘나눔병원 1호’이기도 하다. 장 박사는 병원을 세우면서 처음부터 수익의 1%를 재단에 내기로 약정했다. 100명이 넘는 직원의 ‘밥그릇’ 걱정부터 해야 할 걸음마 단계의 병원이 ‘나눔의 철학’을 공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하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는 나누는 사회’라는 장 박사의 신념에 임직원들은 뜻을 함께했다. 현재 나누리병원의 임직원 중 다수는 그가 병원을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들. 직원의 60% 이상이 자발적으로 나눔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장 박사는 아름다운 재단을 비롯, 열린의사회와 국경없는의사회가 추천하는 환자들에게 무료 수술을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그가 직접 찾아나서 무료로 치료한 환자도 한 해에 20명이 넘는다. 이 병원 환자의 3분의 1 이상이 수술비를 감면받는 환자라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말에 채여 두개골이 함몰된 아이였어요. 가난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 뇌 손상 위험을 안고 살아야 했다면, 그 고통 때문에 아이에게서 웃음을 볼 수 없다면, 이 사회는 조금 덜 행복했을 겁니다. 전 아이를 무료로 치료했지만, 아이에게서 더 큰 행복을 선물받았습니다.”

‘나눔’의 따스한 손으로 사회 치료

장 박사와 김 원장이 각각 펴낸 저서들.

장 박사는 한 장의 사진을 들고, 그가 세운 병원 ‘나누리’의 의미를 설명했다. 지난해 열린의사회 소개로 두개골 복원수술을 받고 돌아간 몽골 소년 쟈나노치르 다시암(12)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다.

장 박사의 나눔 철학이 꽃을 피우기까지는 사실 의료계가 인정하는 실력과 경험이 바탕이 됐다. 국내 최초로 척추와 관절 동시 치료, 개원 2년 만에 척추 치료 8000건 달성, 척추전문병원 톱 5 진입, 98년 ‘디스크 내장증의 새로운 수술적 치료’ 유럽외과학회 발표, 국내 최초 ‘골 시멘트 치료술’ 성공, 의사들이 추천하는 베스트 닥터 등 장 박사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의 손에 의해 수천명의 할머니들이 굽은 허리를 펼 수 있었고, 수천명의 척추 디스크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았다.

‘나눔’의 따스한 손으로 사회 치료

장 박사가 펴낸 허리병에 관한 책 ‘굿바이 허리병’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장 박사 부부.

그의 나눔 철학은 치료법에도 투영됐다. 최근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치료 비용은 적게 들면서 효과는 높은 ‘미니 척추유합술’을 개발한 것. 대부분의 척추질환 치료에 적용되는 이 치료술은 수술비의 95%가량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까닭에 환자에게 부담도 거의 없고, 효과도 좋다. 장 박사는 “보험이 적용되는 수술은 그만큼 안전하고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모두가 병원 내에 ‘척추연구소’를 두고 더 좋은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은 장 박사의 신념이 이뤄낸 산물이다. 장 박사는 5~10년 후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무료 진료하는 의료 네트워크를 만들 생각으로 HH(Humanity Hospital·인본주의 병원) 운동에도 나서고 있다.

장 박사의 인본주의 의료철학과 나눔의 신념이 완성되는 데는 그의 아내 김혜남 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역할이 컸다. 고려대 의대 동기이기도 한 김 원장은 한국정신분석학회 부회장이자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국내 몇 안 되는 신경분석 전문의인 그녀는 환자를 환자가 아니라 ‘소통의 상대’로 맞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책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왜 나만 우울한 걸까?’는 대만과 중국에서 번역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들 책에서 그녀는 “상처 없는 사랑은 없다. 그래서 나도 사랑이 겁나지만, 상처를 각오하면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이 괴로워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렸다. 고통을 당당하게 직시토록 하고, 이것을 풀어갈 실마리를 제시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한 것. 그의 글은 실제 자신이 생명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병마와의 악전고투 속에서 뽑아낸 것이기에 더 많은 ‘마음’을 움직였다. 바로 ‘나눔의 마음’을 가르친 것이다.

층층시하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김 원장은 의료의 사회 환원을 위해 탄광촌 병원으로, 봉사단체로 뛰어다니는 젊은 남편에게 그저 허허로운 웃음으로 답했다. 그런데 그런 아내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졌을 때, 장 원장은 절망에 빠졌다. 그때가 바로 평생의 소원인 ‘나누리병원’의 밑그림이 막 시작되던 때였다.

자신의 꿈을 좇느라 아내를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장 박사에게, 김 원장은 “나는 단지 조금 불편하고 미래가 불확실할 뿐, 달라진 건 없다. 가서 아픈 이들의 마음을 들어라. 당신이 평생을 벽에 써 붙여놓은 그 글을 잊지 말라”고 등을 떠밀었다.

‘소의(小醫)는 질병을 고치고, 중의(中醫)는 인간을 고치며, 대의(大醫)는 사회를 고친다.’ 장 박사가 대학시절부터 벽에 붙여놓은 글이다. 김 원장의 꿋꿋한 눈빛에 다시 의지를 새긴 장 박사는 ‘나누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김 원장이 바란 자신의 모습 역시 ‘사회를 치료하는 의사’였음을 그때야 알게 된 것이다.

김 원장은 이제 무리만 하지 않으면 예전처럼 ‘소통의 대상’들과 마음의 고통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병세가 회복됐다. 가톨릭 신자인 장 박사 부부는 지금도 매일 아침 ‘초심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믿고 따라준 직원들의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을 대고, 병원 환자의 20% 정도를 무료로 치료해줄 수 있는 날을 앞당기게 해달라고.



주간동아 2005.05.24 486호 (p72~73)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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