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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구린내 누구를 덮칠까

주변 재개발 사업 돈과 배신 사기 얽혀 … 서울시에선 지난 3월 이상 신호 감지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청계천 구린내 누구를 덮칠까

청계천 구린내 누구를 덮칠까

이명박 서울시장.

청계천 주변 재개발 사업을 벌이던 미래로 RED 길모 사장의 가장 큰 고민은 고도제한을 푸는 문제였다. 2003년 3월부터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고심했지만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한 길 씨는 그해 9월 초 서울 방배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른바 해결사를 자처한 ‘손님’ 김일주 씨와 마주 앉았다. 사전 만남을 통해 받은 그의 명함에는 한나라당 성남 중원 지구당위원장과 고려대 교우회 상임이사 등 범상치 않은 이력이 적혀 있었다. 길 씨로서는 자신이 넘어야 할 벽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공통분모가 있는 이 이력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김 씨는 스스로 “이 시장과 친분이 있다”고 밝혀 곤경에 처한 길 씨의 조바심을 자극했다.

“원하는 것은 서울 을지로2가 제5지구 도심재개발지구의 건물 높이 제한을 완화하는 것 아닌가. 이곳이 ‘전략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받도록 해 인·허가 절차가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마주 앉은 김 씨는 길 씨가 당면해 있는 난제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그 해법까지 제시했다.

市 “규제 완화 수년 전부터 추진”

이후 길 씨가 한 일은 김 씨에게 현금을 실어 나른 것이었다. 7개의 보따리(현금 6억5000만원)를 에쿠스에 실어 김 씨의 성남 사무실로 옮겨주기도 했다. 길 씨는 같은 해 10월 2억원, 11월 1억5000만원, 12월 5000만원에 이어 지난해 들어서도 2월 1억5000만원, 4월 2억원 등을 김 씨 사무실로 실어 날랐다. 이렇게 해서 김 씨에게 전달한 총액은 무려 14억원. 같은 이유로 접촉했던 양윤재 서울시 행정부시장이 받은 2억800만원의 무려 5배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돈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그에 해당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점은 로비스트건 브로커건 차이가 없다. 김 씨도 이런 노력을 한 흔적이 포착된다. 특히 이 시장을 향한 김 씨의 로비 동선과 길 씨에게 돈을 받아간 김 씨의 동선은 흐름을 같이 한다는 지적이 많다.



2004년 2월5일, 서울시는 제2차 시민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도심부 발전계획안’을 발표했다. 이 계획안은 도심재개발 활성화를 위해 주상복합건물 등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도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90m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

비슷한 시기인 2월 초, 김 씨가 서울시장실을 방문해 이 시장을 면담했다. 만난 시간은 대략 7~8분. 일반적 기준으로 보면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하루 수백명을 만나는 이 시장으로서는 상당히 배려한 시간으로 볼 수 있다. 시 측은 최대 8분 동안 나눈 대화 중에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씨의 검찰 진술은 서울시 측의 해명과 상반된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이 시장과 만난 자리에서 길 씨의 재개발 사업이 잘되도록 부탁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는 것. 양윤재 부시장에게 2억여원의 돈을 전달한 시기도 대략 이때다. 시 측은 “규제 완화는 수년 전부터 추진해온 것으로 길 씨의 로비와 상관이 없다”며 오비이락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배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실수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2004년 9월, 길 씨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서울시 청계천추진본부가 도심공동화를 막는다는 이유로 ‘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심부 발전계획’을 수립, 고도제한을 110m까지 완화한 것. 해당 사업국인 주택국이 아니었지만, 당시 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서울시의 이런 결정으로 길 씨는 1000억원 정도의 평가 차익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호사다마일까. 이때부터 불운의 그림자가 길 씨 주변으로 엄습했다. 먼저 건설업계에서 길 씨와 서울시의 유착관계에 대한 소문이 확산됐다. “서울시가 미래로사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돈 것이다. 양 부시장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도 동시에 퍼졌다. 서울시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양 부시장이 앉은 행정2시장은 그동안 내부 인사들이 승진하던 자리지만, 이 시장이 능력 위주로 발탁하다 보니 외부 인사인 양 부시장이 앉게 됐다. 기득권을 뺏긴 내부 사람(서울시)들이 양 부시장을 얼마나 못마땅해했겠는가.”

한마디로 밥그릇 싸움에 밀린 내부 인사들의 헐뜯기가 치열하게 전개됐다는 것. 서울시는 당시 고도제한 완화 조치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청계천 주변 건물의 고도 완화는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기존의 ‘도심부 발전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해지면서 이루어진 정상적인 절차라는 설명이다. 서울시는 2005년 1월 건물 최고 높이 기준을 110m로 유지하되, 건물 층고 제한을 완화하고 공원 공공시설 부지를 대규모로 제공하는 고층 건물에는 용적률도 1000% 이내에서 인센티브를 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지난해 시정연에서 길 씨의 미래로사 건물이 들어설 곳을 ‘전략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최고 높이를 110m 또는 인근 기존 건축물의 최고 높이로 맞추고 청계천과 맞닿은 부분을 삼각천공원(750평)으로 조성할 것을 제안한 연구 결과를 반영한 것.

그러나 석연치 않은 구석도 없지 않다. 2004년 8월 도심부 발전계획안을 주무과인 도시계획과에서 세우지 않은 점이 우선 눈에 띈다. 도심부 발전계획안을 만든 곳은 청계천복원추진본부다.

제2·제3의 로비스트는 없나

청계천 구린내 누구를 덮칠까

5월8일 양윤재 서울시 행정제2부시장이 부동산 개발업자에게서 고도제한 완화 청탁과 함께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고 있다(왼쪽). 미래로 RED 대표 길 씨에게서 14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일주 씨.

길 씨는 미래로사 건물이 들어설 곳을 전략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받기까지 몇 차례 배신과 결별을 거쳐야 했다. 2004년 4월26일 길 씨는 친적 관계인 모 방송사 기자를 통해 이 시장을 방문했다. 길 씨는 거액을 준 로비스트 김 씨가 적절한 청을 넣어뒀을 것으로 생각, 부담 없이 이 시장 앞에 앉았다. 그러나 운을 떼자 이 시장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길 씨는 로비스트였던 김 씨가 하잘것없는 브로커이자 사기꾼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라인을 통해 확인해보니 김 씨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더라는 것. 지독한 배신감에 분노가 엄습했다. 이후 길 씨는 1년여 김 씨와 연락을 끊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길 씨는 양 부시장과도 애증(愛憎)이 교차했다. 2004년 12월과 올 2월 두 차례에 걸쳐 2억원을 전달하며 신의관계를 형성했던 양 부시장이 느닷없이 새로운 요구 조건을 내걸어 두 사람은 불편한 관계로 돌아선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2004년 2월 고도제한 완화 방안을 마련한 양 부시장은 길 씨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60억원을 추가로 지급하고 건축설계 사무실을 바꾸라”고 요구했다는 것.

길 씨는 이를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했다. 길 씨는 이미 건넨 1억원 이외에 1억원만을 추가로 준 뒤 관계를 끊으려 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양 부시장이 사업을 방해하기 시작했다는 게 길 씨의 주장이다. 신뢰가 깨진 두 사람 관계에는 앙금만이 남았고, 이후 양측의 감정은 평행선을 그렸다. 서울시는 인·허가를 보류해 길 씨의 앞길을 막았고, 길 씨는 요즘 매달 50여억원 이상의 금융 부담을 져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 사안과 관련 서울시가 처음 이상 경보음을 인지한 것은 3월이다. 이 시장의 한 측근은 “그때 검찰에서 뒷조사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은밀하게 내부조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조사에서 이 시장 측은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 못했다고 한다.

당시 시 측도 김 씨와 이 시장의 관계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조사했다. 그러나 고려대 동문과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공통분모 외에 다른 특이점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그렇다고 김 씨가 이 시장과 전혀 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대 출신인 김 씨가 이 시장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고려대 출신 선후배를 통해 이 시장과 주변을 맴돌았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검찰도 이런 점을 의식하는 눈치다.

길 씨는 주상복합건물의 고도제한을 완화하는 단계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막판 사업이 보류되는 바람에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길 씨는 무엇을 믿고 이런 무모한 사업을 벌였을까. 김 씨처럼 드러난 로비스트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 아니면 제2·제3의 힘있는 로비스트가 움직였을까.



주간동아 2005.05.24 486호 (p34~35)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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