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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구글의 한국 공습

창고의 두 청년 기적을 클릭하다

페이지와 브린, 창업 7년 만에 억만장자 … 상업화보다 ‘검색’에 전념 ‘네티즌 사랑 한몸에’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창고의 두 청년 기적을 클릭하다

창고의 두 청년 기적을 클릭하다

구글 직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회사에 애완동물을 데려올 수 있다. 사내에는 훌륭한 탁아소와 유명 요리사가 무료로 건강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있고, 주차장에서 롤러 하키 게임도 즐길 수 있다(왼쪽부터).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대학. 컴퓨터공학 박사과정 입학 예정자인 래리 페이지가 캠퍼스를 둘러보고 싶다고 하자, 학교 측은 같은 과정 학생인 세르게이 브린을 안내역으로 배정했다. 둘은 모두 개성 강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한 학생이었다. 때문에 래리가 학교에 입학한 얼마 후까지도 두 사람은 종종 심각한 의견 충돌을 빚으며 으르렁대곤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페이지(31)와 브린(32)은 서로에게 최고의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다.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의 공동 개발자이며, 2004년 ‘포춘’지 선정 ‘40세 미만 세계 갑부’ 순위 4, 5위를 나란히 차지한 거부이기도 하다. 페이지와 브린의 재산은 현재 각 80억 달러(약 8조원)에 이른다.

‘제록스’라는 복사기 제조사 이름이 종종 ‘복사’라는 의미로 쓰이듯, ‘구글한다(to google)’는 말은 이제 ‘검색한다’는 뜻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2003년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브랜드(인터브랜드)가 됐으며, 2004년에는 미국 방문 경로 검색엔진 1위(웹사이드스토리) 자리에 올랐다. 구글은 어떻게 후발주자로서의 한계를 딛고 ‘인터넷 최강자’가 됐을까.

개발한 검색엔진 야후에서 구매 거절하자 직접 창업으로 선회

래리의 아버지 칼 페이지는 미시간 대학 컴퓨터학과 교수였고, 어머니 역시 컴퓨터 프로그래밍 강사였다. 부모의 영향으로 래리는 6세 무렵부터 컴퓨터에 푹 빠져 살았다. 유대계인 세르게이의 아버지 미하일 브린은 수리경제학자다. 79년 소련에서 미국으로 이민왔다.



페이지와 브린은 함께 공부하던 중 “새로운 인터넷 검색엔진을 개발하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기존 검색엔진은 검색창에 특정 단어를 입력할 경우 그 단어를 포함한 수천개의 웹 사이트들이 그야말로 ‘두서없이’ 떴다. 대부분은 찾는 내용과 무관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곧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에 돌입했고, 열정적 연구 끝에 새 검색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이를 야후, 인포시크 등 기존 업체들에 판매하려 했으나 반응은 싸늘했다. 의기소침해 있을 때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체리튼이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창업자 앤디 베흐톨쉐임을 소개했다. 베흐톨쉐임은 두 사람의 설명을 채 다 듣지도 않고 즉석에서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끊어줬다. 최초의 엔젤 투자자가 된 것이다.

수표를 서랍에 넣어두고 일주일 넘게 고민하던 두 사람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지인들을 통해 조달한 100만 달러를 밑천 삼아 친구 집 허름한 창고에서 직원 4명과 함께 새 사업을 시작했다. 98년 9월7일이었다.

‘구글’이란 이름은 10의 100승을 의미하는 ‘구골(googol)’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만큼 광범위하고도 완벽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당시 검색엔진 시장은 이미 야후, 라이코스, 알타비스타, 잉크토미 등 쟁쟁한 업체들로 꽉 차 있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누리꾼(네티즌)들이 앞다퉈 자발적으로 구글의 우수성을 입소문 내기 시작한 것이다.

‘페이지랭크(PageRank·하이퍼텍스트 일치 기법)라 불리는 구글의 검색 방식은 ‘링크를 더 많이 받은 정보가 더 좋은 정보’라는 판단에 기반한다. 5억개의 변수와 30억개 이상의 용어로 짜여진 세밀한 공식에 따라 각 홈페이지와 텍스트의 중요도를 평가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에게 가장 관련성이 높은 결과를 제공한다. 누리꾼들이 “구글이 내 IQ 수치를 적어도 20은 높여주었다”고 즐거워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야후나 MSN처럼 ‘종합 미디어’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검색 한 가지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단순하다 못해 촌스럽기까지 한 구글 초기화면 구성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검색을 겸하는 여타 포털 사이트들의 초기화면이 각종 뉴스와 상업 정보, 화려한 팝업광고와 배너광고로 도배돼 있다시피 한 것과 전혀 다른 점이다.

물론 구글의 주 수입원도 광고다. 그러나 구글 사이트에서 광고는 검색화면 오른쪽 구석에 글자로만 표시된다. 검색 결과가 광고와 뒤섞이는 일 또한 없다. 이는 “구글의 검색 결과는 불편부당하며 객관적이다. 우리는 돈을 받고 검색 결과를 바꾸지 않는다”는 창업자들의 신념을 반영한 것이다. 경쟁업체들이 검색 결과 순위에 광고주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구글의 이러한 특성은 높은 효율과 정보의 공유, 사이버공간의 지나친 상업화를 경계하는 세계 누리꾼들에게서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는 것이 우리 좌우명”이며 “구글을 도구 삼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당당히 밝히는 두 창업자의 열정과 패기 또한 큰 공감을 자아냈다. 구글은 ‘해커들이 미워하지 않는 유일한 인터넷 재벌’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스톡옵션 덕에 억만장자 직원 수두룩 … 입사지원자 쇄도

2001년 구글이 마침내 순이익을 내기 시작하자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등 경쟁업체의 견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두 창업자는 회사의 계속적 성장을 위해 에릭 슈미트(50)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했다. 슈미트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노벨의 CEO를 지낸 실리콘밸리의 베테랑이다. 대신 회장이던 브린은 기술담당 사장, CEO이던 페이지는 제품담당 사장이 됐다. 슈미트는 ‘에드워드’ ‘에드센스’ 등의 새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 구글이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는 견인차 구실을 해냈다.

2004년 9월 진행된 구글의 기업 공개는 인터넷 업계 최대 이벤트였다. 페이지와 브린은 물론, 6.3%의 지분을 갖고 있던 슈미트도 한숨에 16억 달러의 주인이 됐다. 초기 투자자였던 체리튼 교수와 베흐톨쉐임 또한 높은 ‘안목’에 대한 대가를 넘치도록 받았다. 총 20만 달러를 투자한 베흐톨쉐임은 3억 달러를, 체리튼 교수는 2900만 달러를 거머쥐었다.

스톡옵션으로 인해 직원들 중에도 수많은 억만장자가 나왔다. 꼭 그것이 아니어도 구글의 직원, 즉 ‘구글러’가 되는 것은 세계 IT 엔지니어들의 꿈이다. 때문에 구글에는 하루 약 1000통의 이력서가 쏟아진다.

구글의 개발자들은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보장받는다. 직원들이 대규모 컴퓨터 용량을 요구할 때를 대비해 10만대 이상의 서버로 구성된 ‘서버 팜’을 운영할 정도다.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 ‘구글플럭스’는 일터이자 놀이터이며 ‘유사 가정’이다. 직원들은 주차장에서 롤러 하키 게임을 하거나 전용 마사지실에서 피로를 풀고, 마음이 내키면 현관에 있는 그랜드피아노를 두드리며 노래도 부른다. 일주일에 하루는 애완동물과 함께 출근할 수 있으며 탁아 시설도 완벽하다. 최고의 요리사들이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건강식을 만들어 무료로 제공한다. 사무실에는 공짜 음료와 사탕, 맥주캔, 대형 플라스틱 공이 널려 있다. 치과 치료도 무료다.

이렇듯 자유로운 분위기는 “허무맹랑해도 좋으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으라”는 경영진의 요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노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오히려 구글은 실리콘밸리에서도 가장 업무 강도가 높은 회사로 악명이 높다.

페이지와 브린은 기업 공개 후 몇 가지 경영 원칙을 담은 ‘오너의 매뉴얼’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먼저 “상장 뒤에도 분기별 실적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큰돈을 빨리 벌 욕심이 있는 사람의 투자는 사양한다”며 “단기 목표에 집착하느라 갈팡질팡하는 경영진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30분마다 저울대에 올라서는 꼴”이라며 비꼬기도 했다. 회사를 공개하긴 했지만 (주가를 관리하라는) ‘월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벤처의 창조정신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구글은 지금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등 강적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경쟁자를 걱정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할 뿐”이라는 다짐을 두 창업자는 얼마나 오래도록 지켜나갈 수 있을까. 이는 좋든 싫든, 인터넷에 기반한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된 인류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간동아 2005.05.24 486호 (p24~25)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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