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9

2016.10.19

책 읽기 만보

고전과 저절로 친해지는 법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10-14 17: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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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해학’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것은 조선시대 문인 어우당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이라는 설화집이었다. 정확히 말해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해송자(海松子)’라는 글이었다. 상전들끼리 술상 위에 떨어진 해송자(잣)를 보며 그 씨를 심어 나무가 되고 다시 그 나무에서 씨를 받아 심어 큰 나무가 될 때까지 살겠다며 장수(長壽)에 대해 허풍을 떨자, 옆에서 이를 듣던 목수가 “두 합하(閤下) 만세(萬歲) 후에 소인이 관을 짜리다”라고 해 좌중을 웃기는 대목이다. 지금도 입에서 술술 나올 만큼 기억이 선명하다. 이야기는 이처럼 힘이 세다.  

    한국고전문학번역원에서 어린이를 위해 ‘우리 고전 재미있게 읽기’ 시리즈를 내놓았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나는야, 이야기 먹는 도깨비!’(박이담 글/ 배성연 그림)라는 제목의 동화로 만들어졌고, 조선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의 ‘관물편’은 할아버지와 손자가 대화하는 형식의 ‘아하! 자연에서 찾은 비밀’(조경구 글/ 김동성 그림)로 재구성했다. 순조 때 암행어사였던 박내겸의 ‘서수일기’를 바탕으로 한 동화 ‘암행어사를 따라간 복남이’(정혜원 글/ 이경하 그림)는 어린 하인 복남이의 시선을 따라간다는 점이 흥미롭다. 조선시대 문장가 도곡 이의현의 ‘유금강산기’는 ‘궁금증 풍선과 떠나는 금강산 여행’(박은정 글/ 장현정 그림)으로, 이덕무와 박제가의 우정 이야기는 ‘운명아, 덤벼라!’(강민경 글/ 정경심 그림)로 각각 재구성돼 고전이라기보다 옛날이야기처럼 술술 읽힌다.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재창작한 ‘새롭게 읽는 우리 고전’ 시리즈도 벌써 여덟 번째 책이 출간됐다. ‘연암의 뜨락을 거닐다’(김봉진 글/ 양상용 그림)는 연암 박지원의 소설 아홉 편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은 것으로, 연암 선생이 서얼 신분의 소년 서일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호질’ ‘양반전’ ‘허생전’ ‘광문자전’ ‘예덕선생전’ ‘마장전’ ‘우상전’ ‘김신선전’ ‘민옹전’의 핵심 내용과 시대적 의미를 한꺼번에 되새길 수 있는 기회다.

    한시 하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겠지만 한국고전번역원이 ‘고전작품선집’ 시리즈로 엮은 ‘景(경), 자연을 노래하다’와 ‘情(정), 사람을 노래하다’는 사계절의 순환을 바라보는 조상의 따뜻한 시선과 세상사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가슴이 꽉 메어 올 때,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괼 때, 낯이 화끈 달아오르도록 부끄러울 때 넋이 움직여 시가 된다”는 엮자의 말을 음미하게 된다.

    ‘한국고전선집’ 시리즈는 옛 선비의 문집 가운데 대표 작품을 뽑아 시기별·주제별로 엮은 것이다. 정도전, 이이, 남호온, 이가환에 이어 농암 김창협, 점필재 김종직, 청음 김상헌 편이 추가됐다. 그들이 남긴 글에서 시대정신과 만나는 것은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이 될 것이다.






    저항자
    쉬즈위안 지음/ 김택규·이성현 옮김/ 글항아리/ 528쪽/ 1만9800원


    감옥의 철학자 스밍더, 천민의 자부심 우뤼런, 센트럴의 체 게바라 룅궉훙, 수난의 다크호스 류샤오보.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처럼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뤼다오 섬의 정치범수용소에서 수십 년을 보낸 스밍더처럼 낯선 이도 있다. 중화권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저자가 대만, 홍콩, 중국의 ‘저항자들’ 20여 명을 인터뷰해 인물탐구 형식으로 소개했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김영사/ 516쪽/ 1만9000원


    ‘여성은 왜 죄책감을 느끼고 굶주려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오늘날 여성은 몸을 압박하는 코르셋에서 벗어났지만 거식증이라는 새로운 광기에 시달리고 있다. 1991년 첫 출간된 이 책은 ‘페미니즘의 세 번째 물결’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 ‘뉴욕타임스’의 ‘20세기 가장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다. 순종, 모성애, 아름다움으로 대변되는 여성성이 권력과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고발한 문제작.




    영국 양치기의 편지
    제임스 리뱅크스 지음/ 이수경 옮김/ 북폴리오/ 376쪽/ 1만5000원


    영국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고향인 레이크 디스트릭트. 이 한적한 시골마을에 600년 넘게 뿌리 내리고 사는 집안의 한 남자 이야기가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명문대를 나왔지만 산과 언덕으로 둘러싸인 고향으로 돌아가 양치기가 된 저자는 자연의 순리대로 땀 흘리며 살아가면서 대자연에서 배우는 겸손, 자유,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정들
    김성환 지음/ 교양인/ 296쪽/ 1만4000원


    시기와 질투, 열등의식, 불안, 화, 우울과 슬픔, 죄의식. 우리를 불편하고 힘들게 만드는 부정적 감정은 어떻게 생겨나고 움직이며 사라지는가. 시기심은 “상대의 탁월성을 긍정하는 의지와 상대를 향한 어떤 거부감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유발하는 감정”으로 정의되고, 열등의식은 “비교 대상에 대한 매혹을 전제로 한다”고 설명된다. 호의적 웃음과 퇴폐적 웃음의 이중적 의미 분석도 새롭다.




    신라불교의 개척자들
    신종원 지음/ 글마당/ 260쪽/ 1만3000원


    이차돈의 흰 피, 말년에 스님이 된 진흥왕, 황룡사 구층목탑을 건의한 자장스님.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단지 ‘전설’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세계적인 불교 사상가로 꼽히는 원효, 의상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듯 삼국통일 이전 신라불교의 뿌리는 깊다. 샤먼으로부터 불교를 일으킨 성인 3명(아도, 법흥왕, 이차돈), 신라불국토설의 창시자 안홍으로 이어지는 신라불교의 개척자들을 소개했다.




    샤를리는 누구인가?
    엠마뉘엘 토드 지음/ 박아르마 옮김/ 희담/ 288쪽/ 1만6000원


    2015년 1월 프랑스에서 풍자신문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 과격분자에 의해 테러를 당하자 시민 수백만 명이 행진하며 ‘나는 샤를리다’를 외치고 표현의 자유와 공화주의의 가치를 주장했다. 인류학자이자 역사가인 저자는 사건 발생 4개월 뒤 이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의 지리적·사회적 분포를 조사해 이슬람 혐오와 종교적 배타성으로 똘똘 뭉친 중간계층임을 폭로했다. ‘이슬람 혐오증’ 뒤에 숨은 보수주의와 집단이기주의의 지배 및 차별의식을 비판했다.




    어느 여행자의 독백
    홍승기 지음/ 라이프맵/ 362쪽/ 1만3000원


    변호사이자 로스쿨 교수이면서 배우인 사람. 하지만 그의 글에서 서로 다른 활동 영역이 절묘하게 만난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다 ‘표현의 자유’ 문제에 접근하고, 영화 포스터의 서체 때문에 발생한 ‘저작인격권’ 문제를 건드리는 식이다. 글을 쓴 시점도, 발표한 지면도 제각각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열정만큼은 한결같다.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조너선 헤네시·마이클 스미스 지음/ 서연 옮김/ 아론 맥코넬 그림/ 계단/ 180쪽/ 1만6800원


    인류는 1만 년 전부터 크래프트 비어를 만들어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인 맥주의 역사를 기록한 그래픽노블. 시대 상황을 고증한 배경과 역사적 인물의 특징을 잡아낸 캐리커처, 맥주의 맛과 향, 질감까지 표현하고자 한 정교한 그림 속에서 맥주의 역사와 인류문명의 전환점을 절묘하게 연결한 수작이다. ‘농업의 맥주발생설’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만큼 흥미롭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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