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9

2016.10.19

사회

대필로도 입시 무사통과 구멍 숭숭 불법 자기소개서

외형은 컨설팅, 알고 보면 고액 전문 대필업체…자소서 폐지 주장도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10-14 16: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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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과 대학 입학 등 어떤 선발 전형이든 글을 잘 써야 대접받는 세상이다. 입사 평가용으로만 쓰이던 자기소개서가 대입 전형을 넘어 고교 입시에도 도입됐다. 대입 전형이 과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내신 위주의 정량평가에서 학생부 위주의 정성평가로 변하면서 자기소개서가 중요한 평가척도가 된 것.

    2013년부터 각 중학교에서 시행된 성적 절대평가제(정량평가)로 학생 선발에 어려움을 겪던 자립형사립고도 자기소개서와 면접으로 학생을 뽑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사교육 부담을 줄여준다는 자기소개서 전형이 전혀 반갑지 않다. 내신과 수능 맞춤형 공부만 해온 학생에게 자기소개서는 또 하나의 입시 과목일 뿐이다. 최근에는 논술 대신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가르치는 학원까지 등장했고, 일부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자기소개서 대필이 독버섯처럼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자기소개서 전형이 대입 평가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건당 50만 원에서 200만 원까지

    자기소개서 대필 전문업체를 찾는 작업은 아주 간단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대입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입력하면 관련 컨설팅업체가 줄줄이 나온다. 이 가운데는 ‘첨삭 지도’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대필을 해주는 곳도 적잖다. 개별상담으로 학생 이력을 받은 후 전문 대필자가 자기소개서를 써주고 돈을 받는다. 개중에는 1000편 넘게 자기소개서 대필을 했고 상당수가 합격했다며 대놓고 선전하는 곳도 있다.

    서울 강남지역과 목동 학원가 일대에 포진한 이들 업체의 대입 자기소개서 컨설팅 비용은 50만~60만 원 선. 일부 고가 컨설팅은 200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공통문항 3개와 자율문항 1개로 구성된 자기소개서 대필 가격으로 과하다 싶은 액수지만 수험생들이 본격적으로 대입 수시모집을 준비하는 7~9월, 특히 방학 중에는 상담 요청이 쇄도해 부르는 게 값이라고 컨설팅업체 관계자들은 말한다. 심지어 일부 학부모는 여러 업체에 대필을 의뢰한 후 최선의 내용만 취합해 하나의 자기소개서를 완성하기도 한다.



    이처럼 학생과 학부모가 자기소개서에 매달리는 이유는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와 교사 추천서를 반영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은 2010년 5.4%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20%까지 늘어났다.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자기소개서는 더 중요해진다. 각 대학의 2017학년도 입시 요강에 따르면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 소재 대학의 경우 전체 수시모집 인원의 50% 이상을 자기소개서가 반영된 전형으로 선발한다(‘주간동아’ 1044호 ‘학종이라면 불법이라도 좋다’ 기사 참조). 게다가 자립형사립고와 국제중 입시까지 자기소개서가 확대되면서 대필 시장의 규모는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자 학부모가 소위 명문대 재학생을 찾아가 직접 대필을 의뢰하기도 한다. 서울 소재 대학을 다니는 김모(26·여) 씨는 지난해부터 자기소개서 대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김씨가 받는 돈은 건당 30만~70만 원선. 학생이 작성한 초안을 토대로 고쳐 쓰거나, 간단한 이력 사항만 받아 처음부터 새로 쓰기도 한다.

    김씨는 “다른 일에 비해 급여가 높고 재택근무가 가능해 자기소개서 대필은 대학생 사이에서 괜찮은 아르바이트로 통한다. 대입 수시모집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일감이 몰려 전업작가처럼 하루 종일 자기소개서를 쓰기도 한다. 이때 번 돈이 1년 치 용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이처럼 ‘괜찮은 아르바이트’가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불법행위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학생을 평가해 선발하는 입시는 대학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입시 평가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자기소개서 대필은 대학의 주요 업무를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돼 ‘업무방해죄’(형법 314조)를 적용할 수 있다. 실제로 2010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대필 의심 업체들에 대해 경찰 수사를 의뢰한 경우도 있었다. 대교협에 확인한 결과 수사의뢰가 실제 수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표절은 잡아내도 대필은 못 걸러내

    대학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자기소개서 유사도 비교검증을 하고 있지만 대필을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9월 28일 대교협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진행된 2016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자기소개서를 제출한 수험생 42만8277명 중 214명이 자기소개서 유사도 비교검증 결과 위험(다른 자기소개서와 30% 이상 유사) 판정을 받았다. 의심(5% 이상~30% 미만 유사) 판정을 받은 수험생도 1394명에 달했다. 2015학년도 위험 판정을 받은 학생이 102명(총 수험생 38만8303명)에 불과한 것과 비교할 때 1년 사이 2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유사도 비교검증으로는 표절에 가까운 함량 미달의 대필 자기소개서만 걸러낼 수 있다. 즉 대교협이 발표한 자기소개서 대필 의심 건수는 실제 대필된 자기소개서 가운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한 대입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대입 자기소개서 대부분이 완전 대필이거나 대필에 가까운 첨삭을 거쳐 대학에 낸 것”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대학에서는 자기소개서 표절이나 대필이 확인되면 수험생에게 감점을 주거나 합격을 취소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부산대의 경우 2016학년도 대입 전형(학생부종합전형, 지역인재전형, 사회적배려대상자전형, 고른기회전형)에서 유사도 비교검증을 통해 25건의 표절 의심 자기소개서를 걸러냈다. 이 가운데 17건은 전체 평가에서 감점했다. 고지영 아주대 입학사정관은 “대학이 정성평가로 학생을 선발하는 이유는 학생의 인성과 학업성취를 위한 노력 등 사람됨을 전반적으로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정성평가에서 자기소개서 표절이나 대필이 확인되면 그 이유만으로 탈락할 수 있으며 사후 검증 후 합격 취소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각 대학이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지만 대필 자기소개서를 걸러낼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사도 비교검증으로는 대필이 아닌 표절만 찾아낼 수 있다. 대입과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대필이 생업인 서울 모대학 휴학생 정모(28) 씨는 “자기소개서 대필은 틀을 잡아놓고 그 안에 의뢰인의 이력을 넣어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받을 때마다 완전히 새로 쓴다. 복사, 붙여넣기 식의 질 낮은 대필로는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대학이 현장에서 지원자들에게 직접 글을 쓰게 한 뒤 그것을 자기소개서와 일일이 대조하지 않는 이상 대필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대입 전형에서 자기소개서 없애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중심의 정성평가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커지자 각 대학이 진화에 나섰다. 권오현 서울대 입학본부장은 6월 15일 한양대 서울캠퍼스 백남음악관에서 개최된 ‘학생부종합전형 발전을 위한 고교·대학 연계 포럼’에서 “서울대 입시에서는 학생부가 유일한 평가 서류이고 자기소개서는 참고사항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도 “자기소개서는 당락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수험생의 특성을 대학 측이 파악하기 위한 참고자료일 뿐이다. 자기소개서는 본인이 직접 쓴 뒤 담임교사나 부모 등 수험생 본인을 잘 아는 주변 사람의 조언을 받아 수정, 보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활동하는 한 입시 컨설턴트는 “대필 컨설팅업체를 찾는 경우는 최상위권 아니면 중·하위권으로 양분된다. 최상위권에서 지원하는 일부 대학이 ‘자기소개서 반영 비율이 적다’고 공개해 학생이 직접 쓰기도 하지만 20위권 이하 대학은 합격 정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학부모도 불안한 마음에 컨설팅업체를 찾는다”고 말했다. 수험생 자녀를 둔 경기 수원시의 이모(48) 씨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자기소개서보다 학생부 내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력만 나열한 학생부보다 그 내용을 잘 설명해놓은 자기소개서가 실제 당락을 결정하지 않을까 싶어 비용이 들더라도 컨설팅업체를 찾게 된다”며 답답해했다.

    아예 자기소개서를 평가 항목에서 빼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서울 양천구의 한 고교 교사(53)는 “자기소개서를 반영하는 전형이 늘고 있는데 정작 학교와 학생들은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학생이 직접 쓴 것과 돈을 들여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작성한 것을 보면 차이가 크다. 평가하는 쪽에서는 전문가가 깔끔하게 쓴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자기소개서를 없애고 학생부만으로 평가하는 게 더 공정하다”고 말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기소개서는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이 직접 내용을 채우면서 스스로 진로를 고민해볼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고교생 혼자 자기소개서를 완성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교사의 지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입에서 자기소개서 비중이 갑작스레 확대돼 고3 담임이 학생들에게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가르칠 시간도, 경험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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