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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오 마이 갓! 연쇄살인마

31년간 8명 살해 미국 BTK 검거 … 두 자녀 둔 평범한 가장 믿기 힘든 범행에 충격

  • 뉴욕=홍권희 동아일보 특파원 konihong@donga.com

오 마이 갓! 연쇄살인마

묶어놓고, 고문하고, 살해한다(Bind, Torture, Kill)’. BTK는 미국 대륙의 한가운데에 있는 캔자스주 위치토를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범이 스스로에게 붙인 별명이다. 1974년 1월 4명, 4월 1명을 살해한 BTK는 그해 10월 위치토의 한 신문사에 자신이 1월 범행을 저질렀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 범행 현장을 자세히 묘사해놓았다. 이 편지는 위치토 주립대학 복사기에서 복사된 것으로 드러나 이 학교 학생들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 직후 BTK는 종적을 감췄고,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BTK는 77년 다시 나타나 2명을 살해했다.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편지 행각도 계속됐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채집한 범인의 목소리를 방송에 내보내 100여건의 제보를 받았지만 범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BTK는 86년 또 한 건의 살인을 저질렀다. 희생자는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그 뒤 18년간 숨어살던 BTK가 다시 세상의 관심권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3월 말. ‘위치토 이글’이라는 신문사에 86년 희생된 비키 위거리(당시 28세)의 시신 사진과 범행 현장에서 분실된 그녀의 운전면허증 복사본이 배달됐다.

‘묶어놓고, 고문하고, 살해한다’

경찰은 이것이 BTK가 보낸 것임을 확인했다. BTK는 위치토 지역 언론에 수차례 편지를 더 보내 자신이 39년생이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를 잃었다는 등 신상정보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연막을 치기 위한 거짓정보였다.



그 이후 BTK에게서 온 편지와 소포는 모두 11건. 편지에는 암호문구가 가득했다. 2월16일 위치토의 방송국 ‘KSAS TV’에 배달된 봉투에는 컴퓨터 디스켓이 들어 있었다. 31년 묵은 미제 사건을 푸는 데 이 디스켓은 핵심 구실을 하게 된다.

수사당국은 컴퓨터 전문가를 동원해 디스켓을 분석한 결과 이것이 위치토에 위치한 그리스도 루터 교회의 컴퓨터에서 사용된 흔적을 찾아냈다. 수사진은 24일 교회를 찾아가 마이클 클라크 목사에게 컴퓨터 사용자 10∼15명의 명단을 받았다. 여기엔 74년 용의선상에 올랐던 데니스 레이더(59)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그는 79년 위치토 주립대학 졸업생이다.

수사당국은 레이더씨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가족의 DNA 채집에 나섰다. 미시간에 살고 있는 그의 딸(26)이 캔자스주 병원에 떼어놓은 신체조직 일부에서 그녀의 DNA를 확보, BTK가 첫 범행장소에 남겨놓은 범인의 DNA와 대조하는 작업을 했다. 결과는 ‘OK’.

레이더씨는 2월25일 수사진에 체포됐고, 수사당국은 피해자 가족 친지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어 “BTK를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수사당국은 “컴퓨터 분석과 DNA 분석의 합작으로 얻은 개가”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동안 8건의 살인 외에 2건의 추가범행을 밝혀내고, 총 10건의 1급살인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보석금으로는 1000만 달러(약 100억7700만원)가 책정됐다.

수사당국이 디스켓 한 장으로 컴퓨터를 추적한 방법에 대해 컴퓨터 데이터 복구 전문가인 드리에크 프루이트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디스켓에 들어 있던 파일을 복구하거나 디스켓에 남아 있는 컴퓨터의 IP 주소 흔적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디스켓을 사용한 컴퓨터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것.

수사진에게서 레이더씨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당황한 사람은 클라크 목사다. 그는 “다시 이야기해달라”며 세 차례나 설명을 요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더씨는 이 교회의 운영위원장이자 위치토 북쪽 파크 시티의 공무원이었기 때문. 그는 장성한 두 자녀를 두고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며 한때 초등학생 보이스카우트인 ‘컵 스카우트’의 책임자로 일하기도 했다. 노스웨스턴 대학 범죄학자 제임스 앨런 폭스는 “그가 스카우트 지도자나 교회 지도자로 있으면서 만족감을 느껴왔을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그는 관심의 중심에 있었고 권위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남의 관심을 즐기는 것은 연쇄살인범의 공통된 심리다. 레이더씨가 언론에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며 자신에 대한 보도를 촉구한 것도 바로 이런 심리에서 나왔을 것이란 진단이다.

교회 측은 운영위원 명단에 여전히 레이더씨의 이름을 남겨두어 논란이 되고 있다. 레이더씨를 면회한 클라크 목사는 “그는 최대한 차분히 일을 정리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 교회의 일부”라고 말했다. 반면 시청 측은 레이더씨를 즉각 해고했다. 그가 시청에서 맡았던 업무는 주민들이 소란을 피우거나 적합하지 않은 차량을 운행하거나 애완동물에 관한 조례를 어기는 경우 단속하는 것.

연쇄살인범이 주민들과 직접 마주치는 업무를 해왔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을 수사하면서 당국은 BTK가 주민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보험회사 외판원, 부동산중개인 등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레이더씨는 실제로 살인사건이 한창일 때 전국적인 체인을 가진 ADT라는 주택방범회사에 근무하면서 일반 주민들의 집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과 어린이 평범한 시민이 타깃

현재까지 드러나기로는 첫 범행 후 31년, 마지막 범행 후 19년 만에 붙잡힌 BTK. 일각에선 “범인이 단서를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고, 수사당국도 그를 사건 초기부터 용의선상에 올려놓지 않았느냐”면서 너무 늦게 붙잡았다는 지적을 한다. 게다가 사건 장소가 대도시도 아닌 인구 35만명의 소도시였다. 그러나 이런 비난보다는 끈질기고 과학적인 수사 끝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는 격려가 더 많다. 낯선 인물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을 체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스 교수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범인이 사람을 죽이고 경찰을 따돌리는 데 능하지 않았다면 수년 전에 붙잡혔을 것”이라며 “한참 만에 범인을 잡았다고 해서 수사당국이 그동안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연쇄살인범 백과사전’의 저자 마이클 뉴튼은 “20세기의 연쇄살인 사건 1500여건 가운데 5분의 1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도 최근 수년간 피오리아, 베이톤 루즈 등지에서 벌어진 떠들썩한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붙잡히기도 했지만 악명 높은 사건들이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BTK 사건을 해결한 수사당국은 “BTK가 어떻게 희생자를 골랐는지, 왜 살인했는지를 잘 분석해서 다른 미제 사건에도 적용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미국에서 어느 시점이든 20∼50명의 연쇄살인범이 날뛰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범죄학자들은 활동하는 연쇄살인범을 25∼100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두 사람이 붙잡히면 또 다른 인물이 사건을 저지른다. FBI는 일정 기간 3명 이상을 살해한 경우 연쇄살인으로 분류한다. FBI가 수사공조를 하고 있는 연쇄살인 사건이 현재 16건이다.

미국에서 연쇄살인범 10명 중 8명은 백인이며 거의가 남자다. 이들에 의해 희생되는 사람들은 여성과 어린이가 대부분이며 70%는 범인과 모르는 사이다. 몸을 파는 거리의 여자, 떠돌이 노동자, 도망자, 또는 평범한 시민들이 타깃이 된다고 FBI는 밝히고 있다.

왜 죽일까. 연쇄살인범은 대부분 반사회적 정신병 요소를 갖고 있다고 한다. 범인은 희생자를 묶고 처치하면서 그들을 대상으로 어떤 의식을 치르거나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해 범행의 이유로 삼기도 한다는 것.

연쇄살인범들은 희생자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아두는 습성이 있다. 경찰은 이를 트로피(전리품)라고 부른다. 이번 사건의 BTK도 희생자에게서 운전면허증이나 보석류를 빼앗아 갖고 있었고, 때로는 시신 사진을 여러 장 찍어두기도 했다. 연쇄살인에 대한 전문가인 마릴린 바즈레이는 “연쇄살인범들은 이들 전리품을 보고 즐기면서 다른 사람을 압도하고 살인을 저질렀을 때의 환상을 다시 느끼기도 한다”고 분석한다. BTK가 10여년간 연쇄살인의 충동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들 전리품을 보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50년대 위스콘신주 작은 마을의 미치광이 살인마 에디 게인의 경우 희생자의 피부로 전등갓을 만들고 희생자 유골로 컵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주간동아 2005.03.15 476호 (p52~53)

뉴욕=홍권희 동아일보 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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