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8

2016.10.12

정치

개헌론에 담긴 친박의 꿈

정종섭 ‘대통령 직선 내각제’ 제안…‘반기문 대통령, 친박 총리’로 정권 연장 시도하나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10-10 16:17:1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2014년 10월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중국 상하이에서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라고 개헌을 입에 올리자,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불가를 천명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던 ‘개헌’이 2년 만에 ‘국가 문제’로 탈바꿈했다. 친박근혜(친박)계 대표 격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9월 5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개헌은 정치 문제가 아닌 국가 문제”라며 “제로베이스에서 국민이 주도해 기준과 방식을 명확히 하자”고 제안한 것. 이 대표는 “학계에서부터 (개헌) 논의를 시작해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정치권 합의로 개헌 추진 방법과 일정을 투명하게 제시하자”며 개헌론을 공식화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반대할 이유 없어”

    10월 초에는 친박 중 친박, 이른바 진짜 박근혜(진박)계라는 정종섭 의원이 개헌과 관련한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하고 나섰다. 정 의원은 10월 3일자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다음 달(11월)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연말까지 개헌안을 발의하고 내년 1, 2월이나 늦어도 4월 재·보궐선거 때까지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권 출범 1년 반이 조금 지난, 박 대통령의 집권 2년 차에 나온 김무성 전 대표의 ‘개헌’ 발언은 대통령의 반발을 불러왔지만, 대통령 임기 종료를 1년 반 앞둔 집권 4년 차에 이정현, 정종섭 등 이른바 친박계 인사가 주도하는 ‘개헌론’은 청와대와 교감하에서 주도면밀하게 진행되는 듯하다.



    야권은 친박 인사들이 주도하는 개헌론에 “진정성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거리를 둔다. 야권 한 관계자는 “개헌은 언제든 쟁점화할 수 있는 대형 이슈다. 하지만 굳이 국정감사 기간에 꺼내야 할 만큼 시급한 것은 아니다”라며 “여권에서, 그것도 친박 인사가 개헌 이슈를 들고 나온 배경이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의 반응도 야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박계 한 인사는 “개헌론을 제기하면 언론과 국민의 이목을 잠시 끌 수는 있지만, 의원 몇 사람이 개헌 일정을 제시했다고 개헌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선거(대선)를 1년여 앞둔 정치권에서는 친박계는 물론, 여러 인사가 개헌을 입에 올리고 있다. 의원 200명 모집을 목표로 ‘20대 국회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결성되고 있고, 9월 23일에는 ‘나라 살리는 헌법 개정 국민주권회의’(국민주권회의)도 출범했다. 국민주권회의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물론 이명박 정부에서 활동하던 인사까지 참여하고 있다.

    8월 말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대표에서 물러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9월 19일 김무성 전 대표와 함께 한 ‘동아일보’와 대담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는) 2018년은 대한민국 탄생 70주년”이라며 “70년 동안 운영된 틀을 바꾸지 않으면 효율이 나올 수 없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개헌 작업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내각제로의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김종인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대선 공약으로 국민 앞에 ‘개헌’을 약속하고 차기 대통령이 2020년 제21대 총선 전 개헌을 완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어떤 권력구조로 바뀌든 대통령과 의원의 임기를 맞출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종인 전 대표의 개헌론에 화답하듯 김무성 전 대표도 “영웅의 시대는 갔다”며 “복잡한 사회구조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여야가 권력을 나누고 연정해야 한다”고 동조했다. 김종인, 김무성 두 사람은 “박 대통령도 개헌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 “국회가 개헌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 앞세워 대선판 흔들려는 시도

    대선을 앞두고 여야에서 개헌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뭘까.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대권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대선주자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 개헌론을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합종연횡을 위한 세력 규합용으로 개헌이 활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도 “지금 얘기되는 개헌은 국민적 요구라기보다 개헌을 매개로 대선판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며 “개헌이라는 총론에 동의하는 세력이 아무리 많아도, 각론에 들어가면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달라 실제 개헌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권력구조 개편만 하더라도 내각책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로 나뉘고, 4년 중임제에 대한 찬반이 또다시 갈린다”면서 “그처럼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내년 대선 전까지 짧은 기간 내 수렴할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개헌론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민 눈에 권력을 나눠 먹으려는 권력 놀음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종섭 의원은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권력구조 개편 방향으로 ‘대통령 직선 내각제’를 제시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은 외교, 국방 등 국가원수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총선을 통해 국회 다수당에서 총리 등 내각을 구성하는 형태다. 정 의원의 분권형 개헌은 ‘반기문 영입용’이란 분석을 낳고 있다. 당내 다수를 점한 친박계가 ‘반기문 대통령-실세 친박 총리’ 구도를 염두에 두고 분권형 개헌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

    김형준 교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정치 경험이 적고 세력이 없어 자력으로 대통령에 오르기 어렵고, 친박계는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는 대신 세력이 있어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며 “친박계가 분권형 개헌을 추진하려는 이유는 내년 대선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년 전 ‘개헌’에 대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던 박 대통령이 친박계가 앞장서 개헌론을 제기하고 개헌 시기까지 제시하는 상황에서 어떤 태도 변화를 보일지 주목된다. 우리 헌법 제128조는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며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권을 명시하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