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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청탁금지법 후폭풍 “안 먹고 안 쓴다”

알면 알수록 어려워 불안함에 소비 위축…소상공인들 최대 위기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청탁금지법 후폭풍 “안 먹고 안 쓴다”

청탁금지법 후폭풍 “안 먹고 안 쓴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종합민원사무소에 마련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신고접수·상담센터에 민원인들이 방문하고 있다. [뉴시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9월 28일부터 발효됐다. 그리고 2주가 다 돼가는 지금 국민은 혼돈 상태다. 법 시행 전에는 국민 대부분이 김영란법의 핵심을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이하’로 이해했다. 하지만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으면 가액과 상관없이 형사처벌’이라는 규정이 알려지자 아예 소비를 끊기 시작했다. 김영란법 적용 범위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안 주고 안 받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처벌에 대한 공포가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20만 원짜리 난 1만 원에 ‘떨이’

청탁금지법 후폭풍 “안 먹고 안 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손님이 뜸해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 한 상인이 쉬고 있다. 일부 상인은 “꽃 수요가 줄어 가게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왼쪽)[홍태식 기자] . 서울 서초구의 한 쉼터에서 대리운전기사들이 호출을 기다리고 있다. 일부 대리운전기사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콜’이 확 줄었다”고 토로했다. [김지현 기자]

일부 소상공인은 비상이 걸렸다. 화훼, 대리운전, 요식업 종사자들은 “아예 영업을 그만둬야 할 판”이라며 한숨짓고 있다. 김영란법에 대한 막연한 공포 때문에 도저히 생존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김영란법의 영향이 덮친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을 찾았다. 가장 직격탄을 맞은 곳은 난(蘭) 가게들이다. 난을 주로 취급하는 화훼업체 사장 A(56)씨는 “화훼 일을 한 지 25년 됐는데 지금이 최대 위기”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법 시행을 기점으로 난 판매량이 3분의 1로 급감했다. 배달됐다 돌아오는 화분도 많다. ‘김영란법에 걸리는 것 아니냐’며 선물을 취소한 경우다. 그러면 왕복 배송비까지 내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서양난은 2주만 지나도 꽃이 많이 피어 고객들이 찾지 않는다. 20만 원짜리 난 화분을 1만~2만 원에 떨이로 팔아야 한다. 보통 일주일 단위로 판매되는데 지난주에는 한 개도 안 팔렸다.”



A씨가 분홍색 서양난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게 안의 서양난들은 이미 꽃의 80%가 피어 있었다. 꽃바구니를 파는 B(50·여) 씨는 “김영란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내가 이 정도로 피해 볼 줄은 몰랐다”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특히 10만 원 이상 꽃은 아무도 안 사는 추세다. 며칠째 손님이 없다”며 텅 빈 복도를 가리켰다. 옆 건물인 화훼공판장 경매장 관중석도 대부분 비어 불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리운전업계가 입은 타격도 크다. 회식과 모임이 일시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대리운전기사들의 휴식처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쉼터에서는 밤중임에도 ‘콜’을 받지 못해 서성이는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김종용 (사)전국대리기사협회 회장은 “10월 첫 주말 매출이 너무 적어 김영란법의 영향을 실감했다. 골프를 많이 치는 시기고 개천절 연휴까지 감안하면 하루 15만 원 매출은 올려야 하는데 10만 원도 못 채운 대리기사가 많다. 이러면 월 150만 원 수입도 어렵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사회가 청렴해질 것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법 규정이 모호해 작은 소비마저 꺼리면 대리운전기사는 먹고살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요식업계 분위기는 더욱 썰렁하다. 서울 중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김윤선(62·여) 씨는 “저녁 손님이 절반가량 줄어 영업 손실이 크다. 주류를 무료로 제공해서라도 음식을 팔아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답답한 국민, 침묵하는 권익위

국민이 지갑을 닫은 건 김영란법이 제재하거나 제재하지 않는 범위를 정확하게 알기 어려워서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김영란법의 이해를 돕고자 방대한 자료집을 내놨다. 10월 4일까지 권익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온 김영란법 설명·홍보자료는 46개로 직종별 매뉴얼, Q&A 사례집, 해설집을 포함한다. 해설집은 125쪽, 행정기관 및 공직유관단체,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직종별 매뉴얼은 각각 211쪽이나 된다. 여기에 매뉴얼과 사례집 수정사항까지 따로 올려놓았다. ‘지나치게 많은 조항이 혼란을 가중한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무원 C(32)씨는 “지인에게 커피 한 잔 사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C씨는 직장인들이 모인 동아리에서 활동하다 그만두면서 리더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며 모바일 커피 쿠폰을 보냈다. 하지만 언론사 직원인 리더는 “이런 것 보내지 마라”며 손사래를 쳐 C씨를 무안케 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언론사 경영·기술·지원부서 직원은 기자와 동일하게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다.

프리랜서 예술가인 D(51)씨는 자신이 김영란법상 ‘공직자 등’에 해당하는 신분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모 지방자치단체의 부탁으로 맡고 있던 예술전문위원 자리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공직자 등’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 이를 주변에 알리자 미리 잡아놓은 약속이 줄줄이 취소됐다. D씨는 “연 2회 회의 참석 말고는 전문위원으로서 하는 일도 없고 3년 임시직이라 ‘공직자 등’에 해당하는지 몰랐다. 별 이해관계가 없는 친구들조차 식사 모임을 꺼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행위가 김영란법상 처벌 대상인지 아닌지 헷갈려 불안해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하지만 권익위의 인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다. 권익위에서 김영란법을 담당하는 청탁금지제도과 직원은 13명, 조사전담 인력은 5명이다. 기자는 김영란법 시행 혼란에 대한 대책을 묻고자 청탁금지제도과에 수차례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권익위 관계자는 “통화가 안 되면 게시판에 문의하라”고 했지만 즉답을 받기는 어려워 보였다. ‘청탁금지법 문의’ 게시판에는 10월 5일 하루에만 문의 글이 178건 올라왔지만 그중 한 건도 답변을 받지 못했다. ‘빨리 답해달라’는 국민의 요구에도 문의 게시판 답변은 9월 23일 무렵부터 거의 끊겨 있었다.

가장 모호한 것은 ‘직무관련성’의 정의다. 만나는 당사자 간 직무관련성이 없고 원활한 직무수행, 사교, 의례, 부조 목적으로 제공하는 경우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이 상한선이다. 하지만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으면 3만 원 이하라도 예외 없이 뇌물죄에 해당한다. 그럼 직무관련성의 의미는 뭘까. 권익위의 ‘청탁금지법 해설집(최종)’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직무수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하는 금품등의 수수를 금지하고 있는 입법 취지에 비추어 형법상 뇌물죄의 직무관련성과 같은 의미. 청탁금지법상 직무관련성은 향후 개별적 사안에 대한 판례의 형성 축적을 통해 구체화되어야 할 것임’.

여기에도 사례별로 모호한 부분이 많다. 만약 사법고시 동기인 판사와 변호사가 친목을 위해 만났고 한 사람이 상대방의 식사비를 3만 원 이상 냈다면 제재 대상이 될까. 두 사람이 장차 같은 사건을 맡는다면 직무관련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은 권익위가 이러한 개별 사안에 일일이 유권해석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사회상규’는 상식이 아니다

청탁금지법 후폭풍 “안 먹고 안 쓴다”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9월 28일 서울 종로구 한 대형서점에 김영란법을 설명하는 책이 비치돼 있다. [뉴시스]

김영란법에 명시된 ‘사회상규’도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2장 5조 7항에 따르면 공직자 등에게 ‘사회상규(社會常規)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형법 제20조)를 하는 경우에는 부정청탁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사안을 사회상규에만 의존해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그 예로 국립병원에 진료 순위 변경 청탁을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환자의 진료나 입원 순서를 바꿔달라는 요구는 부정청탁이지만, 환자가 위독하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의학적 판단에 따라 순위를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위독함의 기준이 어느 정도이며, 그에 따라 진료 순서를 바꿔도 부정청탁이 아닌지는 모호하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선물을 주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잘 봐준 데 대한 감사 표시로 교사에게 선물을 했다면 전통적인 사회상규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권익위는 “성적이나 수행평가 등과 관련이 있다면 학부모가 교사에게 선물하는 것은 부정청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사안이 명확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은행원 등 일부 직종은 김영란법 제재 대상인지 확인조차 안 돼 있기 때문이다. 10월 3일 전국은행연합회는 정부의 위탁 업무를 하는 ‘공무수행사인’에 은행원이 포함되는지 권익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은행권에서 외국환 업무, 국고금 수납, 외국인 투자 신고서 접수 등 정부의 위임·위탁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업계 종사자 10만여 명은 권익위가 유권해석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쇄도하는 문의로 이미 업무에 과부하가 걸린 권익위가 언제쯤 유권해석을 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영란법의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 건설’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국민이 안심하고 법을 지킬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알쏭달쏭한 법으로 국민에게 공포를 조성하는 상황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김영란법은 전반적으로 명확지 않아 법적 안정성을 약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문제 해결을 위해 ‘부정청탁의 예외조항’을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지금의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법적 제재 대상을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로 제한해야 한다고 본다. 현행법은 그 대상과 사례가 너무 광범위하다.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간소화된 법으로 개정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6.10.12 1058호 (p46~48)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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