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7

2016.10.05

책 읽기 만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09-30 18: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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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 이노베이션과 기업가정신 편’이라는 긴 제목의 책 표지만 보고 소녀 감성 학원물로 치부했다면 큰 착각이다. 피터 드러커의 ‘이노베이션과 기업가정신’의 핵심 내용만 쏙쏙 골라 이처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기도 쉽지 않다. 표지에 등장하는 큰 눈망울의 여고생 유메와 마미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유메에게는 꿈이 없었다. 목표도 없었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부터 아이러니하다. 일본어 유메(ゆめ)가 곧 ‘꿈’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유메는 단짝친구 마미의 권유로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 매니지먼트 편’(모시도라)을 읽고 야구부도 없는 아사가와 고교에서 야구부 매니저가 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모시도라’는 2009년 출간돼 일본에서 280만 부가 팔린 밀리언셀러이자 ‘이노베이션과 기업가정신 편’ 1권에 해당한다.

    알고 보니 아사가와 고교에는 야구부가 없는 게 아니라 성적을 내지 못해 25년 넘게 활동 중지 상태였다. 유메와 마미는 선수가 아니라 매니저를 할 학생부터 모집한다. “우리 야구부는 매니저가 주역이 되는 거예요. 매니저들이 매니지먼트를 배우기 위한 조직을 만드는 거죠.”(마미) 선수 없이 매니저만 6명 모인 야구부는 교사나 어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야구부 민영화’라고 했다. 그리고 야구부 사업의 핵심을 ‘인재 확보’에 두고, 목표를 ‘고시엔 대회(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출전’으로 정한다. 다음 과제는 세 가지. 야구를 잘하는 선수를 어떻게 모을 것인가, 누구를 감독으로 선임할 것인가, 그라운드를 비롯한 환경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다. 이를 위해 스스로 ‘최고경영자팀’이 된 6명의 매니저는 다시 드러커의 지침에 따른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묻는 일이야말로 벤처기업에 성공의 징조가 엿보인 시점에 창업자인 기업가가 생각해야 할 문제”라는 데서 착안해 리더, 섭외, 기획, 실무, 전략, 인사 등 각자 할 일을 정했다.

    이제 본격적인 이노베이션이 시작된다. 좋은 감독을 모시고 야구가 하고 싶어지는 환경을 만드니 1년 만에 아사가와 고교 야구부에 들어오려는 신입생이 24명이나 됐다. 매니지먼트를 배우기 위한 조직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1부다. 2부에서는 ‘예상치 못한 실패’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메는 본격적으로 ‘기업가정신’을 배우기 시작한다. 아사가와 고교가 고시엔 대회에서 어떤 성적을 거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들은 이미 다 나왔다. “사람들에게 절로 의욕이 솟는 ‘역할’을 찾아주고 ‘있을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 매니지먼트인 거야.” “사람이 ‘자신이 있을 곳이 있다’라고 느낄 수 있으려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했다.”

    참고로 1편의 애칭 ‘모시도라’는 ‘만약’이란 뜻의 일본어 ‘모시(もし)’와 드러커의 일본식 발음 ‘도라’를 따서 만든 조어이며, 2편은 ‘모시’와 ‘이노베이션’을 합쳐 ‘모시이노’라고 부른다.





    한국 의정사 30년
    이형 지음/ 청아출판사/ 592쪽/ 3만 원


    1948년 개원한 제헌국회부터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함께 막을 내린 10대 국회까지 대한민국 의정사 30여 년을 정리했다. 특히 건국 초기 이승만 대통령이 법을 제대로 지키고, 군 쿠데타만 없었어도 4, 5대 국회가 그처럼 단명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법질서가 어지러워지지도 않았으리란 아쉬움이 책 곳곳에서 묻어난다. 결국 잘못 끼운 첫 단추 때문에 지금도 대한민국 국회는 ‘있으나 마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2차세계대전사(전 3권)
    제러드 L. 와인버그 지음/ 홍희범 옮김/ 길찾기/ 1권 432쪽 1만7000원, 2권 456쪽 1만7000원, 3권 384쪽 1만6000원


    ‘전투사가 아닌 진정한 전쟁사’ ‘제2차 세계대전 연구서 가운데 가장 역사적 걸작’. 1994년 이 책이 처음 발간되자 쏟아진 찬사다. 유대계 독일인인 저자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해 역사학을 전공하며 나치시대 독일 및 세계대전을 연구해왔다. 총 1200쪽이 넘는 이 책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식민지의 구조 변화를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촉발했는지 설명한다. 2005년 개정판을 번역했다.




    공자가 만든 세상
    마이클 슈먼 지음/ 김태성 옮김/ 지식의날개/ 392쪽/ 1만8000원


    미국 시사지 ‘타임’의 중국 베이징 특파원이자 동아시아 전문가, 그리고 유대인인 저자의 눈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나라’다. 한국계 미국인이자 동료 언론인인 유니스와 결혼할 때 부모에게 손과 이마가 땅에 닿도록 큰절을 하는 폐백을 드리며 그는 공자의 유산인 ‘효’를 떠올린다. 2500년 전 살았던 공자가 전 세계 16억 인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저널리스트 시각으로 분석했다.




    로버트 김의 편지
    로버트 김 지음/ 온북미디어출판그룹/ 344쪽/ 1만4000원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은 미국 해군정보국에 근무하던 중 북한 관련 기밀문서를 한국에 넘겨줬다는 혐의로 1996년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복역 9년에 보호관찰 1년 처분을 받았다. 그가 2005년부터 지인과 후원자들에게 쓴 편지 425통 가운데 80여 통을 추려 책으로 엮었다. 한국의 교육, 국방, 외교, 정치 등 전방위적 관심과 혜안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면서 e메일 편지 수신자가 한때 3만 명이 넘기도 했다.




    한국 식물 생태 보감 2
    김종원 지음/ 자연과생태/ 816쪽/ 5만5000원


    ‘주변에서 늘 만나는 식물’이란 주제로 펴낸 ‘한국 식물 생태 보감 1’에 이어 2권은 ‘풀밭에 사는 식물’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에 따르면 풀밭의 단위면적당 식물의 종다양성은 숲보다 풍부하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우리의 ‘나물문화’가 바로 풀밭에서 비롯됐다. 저자는 풀밭에 사는 식물 208종을 선별하고 관련 식물을 함께 다뤄 총 501종의 식물을 형태분류, 생태분류, 이름사전, 에코노트 항목으로 설명했다.




    사회주의 재발명
    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 옮김/ 사월의책/ 192쪽/ 1만8000원


    독일을 대표하는 사회철학자인 저자는 ‘사회주의가 왜 활력을 상실하고 골동품이 됐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왜 다시 사회주의인가’에 대해 말한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주의의 본래 의미인 ‘사회적 자유’라는 근본이념을 통해 경제중심주의, 노동자중심주의, 역사적 법칙주의를 넘어 역사적 실험주의와 민주적 생활양식을 지향하는 21세기 사회주의를 제시한다.




    동아시아 부패의 기원
    유종성 지음/ 김재중 옮김/ 동아시아/ 420쪽/ 2만3000원

    “부패가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 부패를 초래한다.” 저자는 1945년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했고 비슷한 사회·경제적 조건에 놓여 있던 한국, 대만, 필리핀 3국을 비교함으로써 부패와 불평등의 인과적 방향성에 대한 기존 상식을 뒤집는다. 즉 한국의 토지개혁이 식민지시대 심화한 불평등을 어느 정도 바로잡자 그 토대 위에서 공정한 성장이 이뤄질 수 있었고, 필리핀은 반대 길을 걸었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한연 옮김/ 민음사/ 184쪽/ 1만1000원


    ‘보육원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라는 제목의 인터넷 블로그 글이 일본 사회를 흔들었다. 정부는 ‘누구나 아이를 낳기 쉬운 사회’와 ‘여성이 일하기 쉬운 사회’ 실현을 외치지만 정작 보육원에 가지 못해 대기하는 아동이 300만 명에 이른다.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는 나라는 망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출산율을 높이고 국가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해법으로 ‘보육원 의무교육’을 제안한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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