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5

2016.09.14

인터뷰 | 전 올림픽 여자 골프 국가대표 감독 박세리

전반 9홀은 선수로, 후반 9홀은 지도자로 새 출발

“은퇴해도 필드 지킬 것”…내년에 골프아카데미 열 계획

  • 김종석 동아일보 기자 kjs0123@dong.acom

    입력2016-09-09 16: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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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리(39·사진)는 요즘 전성기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여자 골프 대표팀 감독을 맡아 116년 만에 탄생한 박인비의 금메달을 이끌어 주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우올림픽을 밝히던 성화가 꺼진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박세리는 골프 관련 행사 참석과 인터뷰 요청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9월 5일 서울 강남구 한 스튜디오에서 박세리와 어렵사리 인터뷰를 했다. 이날은 경기 남양주 한 골프장에서 화보 촬영 등 다양한 일정이 예정돼 있었다. 박세리는 “내가 금메달을 딴 것도 아닌데, 주위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줘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운이 참 좋다”며 웃었다. 그는 또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서 숱하게 우승하며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이번 올림픽만큼은 아니었다. 선수 시절 받은 축하가 지극히 개인적이었던 반면, 국가를 대표한 이번은 차원이 달랐고 벅찬 감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자신을 뛰어넘은 ‘세리키즈’에게 “고맙다”

    리우올림픽 여자 골프 마지막 날 박세리가 경기를 마친 박인비를 껴안으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명장면으로 꼽는 이가 많다. 시대를 뛰어넘어 한국 여자 골프를 빛낸 과거와 현재의 전설이 관통하는 순간이었다.

    박인비는 1998년 7월 7일 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 박세리가 우승하는 순간을 가족과 함께 TV로 지켜본 뒤 골프를 시작했다. 박세리가 맨발 투혼(양말을 벗고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멋지게 공을 쳐낸 것)을 펼쳐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온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 때였다.



    “나도 저렇게 골프로 성공하고 싶다”며 골프채를 잡은 ‘세리키즈’ 박인비는 2008년 박세리가 우승했던 US여자오픈에서 정상에 올라 스타 탄생을 알렸다. 당시 19세 11개월이던 박인비는 박세리의 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까지 깼다. 미국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은 ‘PAK(박세리)의 자리를 PARK(박인비)가 대신했다’며 대서특필했다.

    남다른 인연을 가진 박세리와 박인비. 올해 박인비는 LPGA투어 명예의전당 가입을 확정지었다. LPGA투어에서 통산 25승에 빛나는 박세리에 이어 아시아 선수로서 두 번째로 이룬 쾌거였다.

    한국 골프 개척자인 박세리의 뒤를 따른 박인비는 리우올림픽에서 4대 메이저대회 타이틀에 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거는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박세리는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는 쾌거를 이룬 박인비에 대해 “무척 고맙다. 대표팀 감독을 맡아 선수 때 못지않은 성적 부담에 시달렸다. 그런데 인비가 모든 근심을 눈 녹듯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인비의 마음고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했다. “인비가 올림픽 출전을 둘러싸고 어떤 말 못 할 고민이 있었고 힘겨운 준비과정에서 어떤 고생을 했는지 잘 안다. 인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을 자축하며 두 팔을 번쩍 드는데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나 역시 힘든 시절을 겪었기에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감격의 순간을 떠올리던 박세리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다.

    박세리도 2005년 최악의 부진으로 골프를 그만둘 위기를 맞았다. “슬럼프에 빠지면서 머릿속에 1개였던 물음표가 매일 하나씩 늘었다. 훈련만이 약이라고 여겨 새벽 5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죽어라 공을 쳐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혼란스럽고 모든 게 너무 안 돼 도망가고 싶었다. 당시 여동생이 나를 보며 ‘저러다 언니 죽는 거 아니야’라고 걱정했다는 말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 수렁을 헤매던 박세리에게 탈출구는 특별한 데 있지 않았다. “손목을 다쳐 아예 쉬었던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골프장을 떠나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맥주도 한잔하면서 차츰 나를 돌아보게 됐다. 한 가지만 바라보고 달려온 나 자신이 미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활에 여유를 찾으면서 서서히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즈음 어떤 팬이 ‘웃으니까 좋다’는 말을 했다. 나는 늘 웃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장 보고 요리하고 격려하는 박 감독

    리우올림픽 기간 박세리는 ‘엄마 리더십’ ‘맏언니 리더십’ 등으로 박인비를 비롯해 김세영, 양희영, 전인지로 이뤄진 여자 골프 대표팀을 이끌었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중책을 처음 맡게 됐을 때 그는 “세계 최고 선수들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얘기하는 건 의미가 없다. 큰 무대에서 마음 편하게 평소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겠다”고 말했다.

    리우올림픽에서 대한골프협회는 대회 골프장 인근에 별도 아파트를 마련해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박세리는 올림픽 기간에 숙소 건너편 대형마트에서 매일 장을 봐 음식과 간식 등을 장만하는 정성을 기울였다. “나도 선수를 해봐서 아는데, 큰 대회를 앞두고는 잘 먹어야 힘을 쓴다. 미국 투어 생활 틈틈이 익힌 요리 솜씨를 발휘했을 뿐이다.” 박세리는 부대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을 손수 요리해 선수들에게 먹였다. 신선한 과일을 고르려 직접 마켓을 돌아다녔다. “후배들이 맛있게 먹어줘 고마웠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박세리는 필드와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 7월 특별 초청을 받아 출전한 US여자오픈이 사실상 고별 무대였다. 그는 9월 30일부터 경기 여주시 솔모로컨트리클럽(CC)에서 열리는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인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을 직접 주최한다. 박세리는 “당분간 대회 준비로 정신이 없을 것 같다. 직접 출전하지는 않지만 선수들이 편하게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회를 운영하겠다”고 다짐했다. 10월에는 인천에서 열리는 ‘2016 LPGA KEB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은퇴식을 치르기로 했다. 박세리는 국내에서도 고별전을 해야 한다는 주위 여론에 손사래를 쳤다. “물론 나도 플레이를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출전하면 다른 선수 한 명이 출전하지 못한다. 내 자리를 후배에게 넘겨 기회를 주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래야 박세리, 박인비를 능가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겠는가.”

    미국 집을 매각하며 20년 가까운 객지 생활을 정리한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는 대전 한 아파트 같은 동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세 자매 가운데 둘째인 박세리는 평소에도 한국에 오면 부모 곁을 떠나지 않았다. 셔틀버스 타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조카 마중도 이모의 일과가 됐다고 한다. “그동안 여행 한 번 제대로 간 적이 없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선수 생활을 했지만 다음 대회 장소를 향해 짐을 싸고 떠나는 일상 속에서 불안감이 생겼다. 나 자신에게 너무 인색했다. 휴가 때도 옆에는 늘 골프채가 있었다. 이젠 마음 편히 좋은 데 놀러다니고 싶다.” 올 추석은 모처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에 들떠 있다고도 했다.



    “또 결혼 얘기냐”

    1998년 박세리의 LPGA투어 진출을 계기로 한국 골프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박세리도 “스포츠라는 인식조차 없던 골프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 후배들의 기량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고 자평했다. 박세리가 어린 시절 공동묘지에서 담력을 키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라면만 먹고 금메달을 땄다는 육상 선수 임춘애 스토리만큼 널리 알려졌지만 그는 “그 얘기라면 지친다. 와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CC에서 하루 종일 연습하다 집에 가려면 깜깜한 산속 샛길을 걸어야 했고, 그때 무덤을 지나친 적이 있었을 뿐이다. 하체를 단련하려고 아파트 15층을 매일 5번 이상 오르락내리락했다. 변변한 피트니스클럽 하나 없던 시절이었다.”

    박세리의 활약 속에 체계적인 주니어 육성 프로그램이 도입됐고 국내 투어도 활성화됐다. 그래도 그는 아직 개선될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예전보다 어린 선수의 훈련 여건은 나빠졌다. 골프장에서 연습 라운드 한 번 하려 해도 부킹이 쉽지 않고, 과다한 그린피 등 어려움이 많다.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

    박세리는 내년이면 어느새 40줄에 접어든다. 인터뷰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또 결혼 얘기를 꺼내느냐. 하고는 싶은데,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해달라”며 웃었다. 박세리는 6년 사귄 남자친구와 3년 반 전 헤어진 뒤 소개팅 기회도 좀처럼 없다고 했다. 박세리의 남자라는 자리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선수 때는 운동을 핑계 삼아 미룬 결혼. 이젠 여유가 생겼으니 평생 배필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박세리는 “선수 생활을 그만뒀으니 이젠 백수 아닌가. 새로운 일도 시작해야 하고 더 바쁠 것 같다”고 말한다.  

    박세리는 내년부터 골프아카데미를 열어 새로운 인생을 걸어갈 계획이다.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고자 전국을 돌아다닐 예정이다. ‘세리키즈’들 덕에 한국 여자 골프가 전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만큼, 앞으로 그의 목표는 한국 골프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를 발굴해 키우는 것이다. 이번 리우올림픽을 계기로 박세리는 골프를 떠나 한국 스포츠 전반의 현실에도 눈을 떴다고 했다.

    “비인기 아마추어 종목 선수들은 4년 동안 올림픽만 바라보며 온갖 고생을 다하는데 1~2분 만에 그간의 노력이 결판나기도 하죠. 메달 색깔 같은 결과만 따지는 일은 없어야 해요. 과정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는 또 “나만 해도 늦게까지 선수 생활을 했지만 대부분 너무 이른 나이에 운동을 그만둔다. 어릴 때 운동에만 매달린 탓이다. 의욕을 잃기 쉽고 부상 위험도 많다. 즐겁게 롱런하려면 무엇보다 선수 관리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휴대전화도 재충전 없이는 오래 쓸 수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박세리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골프 전반 9홀을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후반 9홀을 구상하는 시기에 비유했다. “골프의 매력은 알수록 힘들어진다는 데 있다. 그래서 계속 노력하고 연구하게 만든다. 이제 선수 박세리는 없지만 지도자든 어떤 직함을 갖든 필드를 지킬 것이다. 일단 박 감독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든다. 다시 힘차게 10번 홀 티박스를 향해 떠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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