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5

2016.09.14

사회

국토부, 대형 차량 졸음사고 방지 큰소리치더니 비용은 나 몰라라!

차량당 500만 원, 첨단안전장치 장착 시범사업 불투명…정부 “지원 없다” vs 업계 “정부가 내라”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9-09 15: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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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7월 17일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인천 방향 입구에서 방모(57) 씨가 운전하던 관광버스가 승용차 5대를 잇따라 들이받아 4명 사망, 37명 부상.

    #2 8월 14일 전남 여수시 자동차전용도로 마래터널에서 트레일러 운전자 유모(53) 씨가 14중 추돌사고를 내 1명 사망, 25명 부상.

    지난여름 휴가철 2개월 동안 졸음운전으로 일어난 대형 참사의 결과다. 트럭이나 버스 같은 대형 상용차량은 높고 큰 차체와 무거운 중량 때문에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잇따른 교통사고로 국민의 불안이 증폭되자 정부가 관련 대책을 내놓았다.

    8월 23일 국토교통부(국토부)가 발표한 ‘대형 상용차량(20t 이상 화물차, 대형버스) 첨단안전장치 장착 시범사업’이 바로 그것.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할 경우 깨도록 경고하고, 나중에는 차량 스스로 멈추게 하는 첨단안전장치를 대형 상용차량에 의무적으로 달게 해 사고를 원천적으로 막아보자는 게 그 취지다.   

    국토부는 9월 1일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해 교통안전도 강화 효과를 확인한 뒤 2017년부터 신형 대형 상용차량에 첨단안전장치 장착을 의무화할 계획이지만 국토부의 준비 부족과 운송계의 반발로 사업 시행 여부조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준비 부족, 9월 시작도 못 한 시범사업

    “2017년부터 신형 대형 승합·화물 차량에 자동긴급제동장치(AEBS)와 차선이탈경고장치(LDWS) 장착이 의무화됨에 따라 우선적으로 9월부터 전국화물자동차공제조합, 화물복지재단, 전국전세버스공제조합 등과 함께 기존 운행차량에 전방추돌경고장치(FCWS)를 포함한 차선이탈경고장치 장착 시범사업을 실시해 장치의 교통안전도 강화 효과를 확인한다.”  

    국토부가 8월 23일자 보도자료에서 밝힌 시범사업의 내용이다. 여기서 말한 ‘자동긴급제동장치’란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데도 운전자가 차를 세우기 위한 조작을 하지 않을 경우 경고음과 진동으로 운전자에게 1차 경고를 하고, 경고 후에도 별도 조작이 없으면 차량을 자동으로 세우거나 감속해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이다.

    ‘전방추돌경고장치’는 자동 제동은 불가능하지만 전방 센서를 통해 운전자에게 위험을 알린다. 이 밖에 ‘차선이탈경고장치’는 차량이 차로에서 벗어나면 경고음이나 진동으로 운전자에게 주의를 주는 장치다. 즉 전방추돌경고장치와 차선이탈경로장치 두 가지 장비를 현재 운행 중인 차량에 탑재해 사고를 줄이겠다는 것이 시범사업의 요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 두 장치를 기존 차량에 장착하는 데 약 70만 원 비용이 들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국토부가 시범사업 시행 일주일 전인 8월 23일 발표한 보도자료 내용 중 확정된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시범사업을 9월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9월 중순인 추석까지 시범사업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보도자료에서 국토부와 사업을 ‘함께’ 진행하기로 한 단체들과도 정부의 비용 지원을 놓고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와 관련 예산 확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며 정부의 비용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전국화물자동차공제조합, 화물복지재단, 전국전세버스공제조합 등 보도자료에 언급된 단체는 “정부 지원에 대해 전혀 들은 바 없다. 각 단체의 예산으로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화물복지재단 관계자는 “시범사업 발표일 하루 전인 8월 22일 오전 협의 연락을 받아 내부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를 통해 시범사업에 각 단체가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고 현재 예산 규모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2017년부터 신형 대형 상용차량에 첨단안전장치 장착을 의무화한다’는 부분도 확정된 것이 아니다. 국토부가 낸 관련 법 개정안은 올해 3월부터 거론됐지만 운송업계의 반발 때문에 5월 31일 입법예고를 거쳐 현재 규제심사를 앞두고 있다. 장착 의무화 시한인 2017년이 채 4개월도 남지 않았지만 법안이 아직 국회에 도달조차 못 한 것.

    상황이 이러한데도 국토부 관계자는 “2017년 제작되는 신형 대형 상용차량에 첨단안전장치 장착을 의무화하고 2018년에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대형 버스에, 2019년에는 대형 화물차량(20t 이상)에 자동긴급제동장치와 차선이탈경고장치를 의무적으로 달게 할 계획”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차량당 500만 원 설치비, 누가 낼 것인가

    국토부가 추진하려는 시범사업과 관계없이 모든 대형 상용차량에 이들 첨단안전장치가 장착된다면 우리의 도로가 지금보다 더 안전해지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대형 상용차량에 첨단안전장치를 장착하는 데 드는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이냐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대형 상용차량에 자동긴급제동장치와 차선이탈경고장치를 장착할 경우 신차 가격이 450만~500만 원가량 올라갈 것이다. 결국 이 부담은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내년부터 첨단안전장치 장착 의무화를 추진하는 국토부는 수백만 원 이상 드는 이 비용을 지원할 의지가 전혀 없다. 결국 이 상태로 의무화가 강행된다면 모든 비용은 대형 상용차량 차주가 짊어져야 하는 상황. 한 달 운송 수익이 평균 100만~200만 원밖에 안 되는 대형 상용차량 개인사업자에게는 신차 구매 시 발생하는 추가 지출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운송업계 일각에서 “첨단안전장치 장착 비용을 차주에게 전가하는 것은 또 하나의 징벌이다. 이는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도록 규정한 헌법적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

    국토부 관계자는 “대형 버스나 화물차는 차량 가격이 대당 1억 원 정도로 비싼 만큼 500만 원 정도 추가 비용은 큰 부담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정부의 비용 지원 주장을 일축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안전지도부 관계자는 “차량 가격과 상관없이 차주에게 500만 원 추가 지출은 큰 부담이다. 교통안전법 제9조 2항에 ‘교통안전장치 장착을 의무화할 경우 이에 따른 비용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 안전을 위해 첨단안전장치 장착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개인 운수사업자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큰 만큼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윤제 한국자동차안전학회장(성균관대기계공학과 교수)은 “정부가 보조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는다면 영세 사업자의 가계에 치명적 타격을 줄 위험이 있다. 재정이 많이 필요한 사업인 만큼 일괄적으로 시행하기보다 업계 상황을 고려해 장착 대상을 단계에 따라 정하는 식의 세심한 운영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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