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대표는 몇 해 만에 ‘스포츠경영의 혁신가’로 재평가됐다. 저비용-고효율 구단 운영으로 ‘머니볼’ 이론을 만든 미국 메이저리그의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의 이름을 따 ‘빌리 장석’이라는 멋진 별명도 얻었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를 메이저리그에 진출시키며 이적료로 약 1900만 달러(약 223억 원)를 벌어들이고, 넥센타이어와 연간 100억 원의 네이밍 타이틀 스폰서 계약도 맺었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프로스포츠 구단의 자립 경영에 최초로 도전한 이 대표에게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모두가 나를 처음에는 사기꾼이라고 했다. 그러나 히어로즈 구단을 절대 매각하지 않겠다고 하자 별명이 바보가 됐다”고 말하며 웃던 이 대표는 처음 별명인 ‘사기꾼’처럼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빌리 장석 신화’는 이렇게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다.
사기, 그리고 횡령 혐의

먼저 사기 혐의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표는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했지만 우리담배가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철회하자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린다. 당시 프로야구계에서는 “이 대표가 선수들 월급날만 되면 잠을 자지 못한다” “결국 KBO에 가입금을 내지 못해 구단 경영권을 잃을 것 같다” “히어로즈가 원정 호텔 숙박비를 결제하지 못했다” 등의 소문이 돌기도 했다. 반대로 “이장석에게는 매우 든든한 자금줄이 있다. 재미사업가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이다”라는 말도 있었다.
홍성은(70) 레이니어그룹 회장은 미국에서 부동산투자로 큰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타미먼트 리조트 앤드 콘퍼런스 센터를 인수했다 되팔아 7000만 달러(약 775억3900만 원) 이익을 보기도 했고, 1만4876㎡(약 4500평)의 초대형 사우나도 운영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금 관리원이라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이를 보도한 매체와 기자를 상대로 소송해 승소했다.
홍 회장은 2008년 이 대표에게 제안을 받고 총 20억 원을 빌려줬다. 홍 회장은 이를 지분 40%를 받는 투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 대표는 단순 대여금이라고 반박한다. 2012년부터 법적 분쟁이 이어졌고, 이후 대한상사중재원과 민사 법정에서 주식을 양도하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이 대표는 계속 “투자금이 아니라 빌린 돈”이라고 버텼다. 결국 검찰 수사가 시작됐고, 이 대표는 28억 원에 합의를 시도했지만 홍 회장 측이 거부했다. 이 대표는 8월 8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16시간 가까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20억 원은 투자금이 맞다”고 혐의를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는 2008년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낼 가입금(120억 원)이 부족하던 이 대표에게 돈을 빌려준 홍 회장이 5월 이 대표와 남궁종환 히어로즈 부사장(단장)을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지분 40%를 받는 조건으로 2008년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10억 원씩 총 20억 원을 투자했다는 홍 회장과 ‘단순 대여금’이라고 주장한 이 대표는 2012년부터 법적 분쟁을 벌여왔다. 수차례 법적 처분에도 홍 회장은 약속한 지분을 받지 못했다. 2008년 당시 우리담배의 네이밍 스폰서 철회로 자금 사정이 안 좋아져 ‘구단 지분’과 ‘공동 구단주’ 등을 걸고 투자자를 찾았는데, 이것이 결국 이 대표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이 대표는 2008년 우리담배와 결별하면서 KBO 가입금 120억 원 납부에 쫓겼다. 당시 이 대표는 공동 구단주 등을 걸고 투자자를 찾아나섰다. 이 대표는 그 과정에서 실제로 투자자들에게 구단 지분을 넘기기도 했다. 이 대표는 히어로즈의 지분 69.2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러나 지분 40%를 홍 회장에게 양도할 경우 최대주주 자격을 잃는다. 구단에서 신주를 발행해 홍 회장에게 지급하는 방법으로 타협안을 찾을 수도 있지만, 기존 투자자들의 반대가 거셀 수 있다. 홍 회장이 최대주주가 돼 다른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경영권을 확보한 후 구단을 매각할 수도 있다.
최고의 성공적인 투자?

당장 이 대표가 법적 처벌을 받고 경영권까지 잃는다면 KBO리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수 있다. 만약 구단이 매각된다면 누가 인수할 것인가도 관심거리다. 야구계는 “이 대표가 재미사업가 홍성은 씨와 경영권을 놓고 분쟁 중이고 그 과정에서 사기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횡령 혐의는 매우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홍 회장은 5월 검찰에 이 대표를 고소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 대표가 구단 자금 48억 원을 빼돌린 혐의도 추가했다. 검찰은 이 대표가 2010년부터 최근까지 야구장 내 매점 수익금, 광고 유치금 등 50억 원에 가까운 구단 돈을 개인 계좌에 보관하면서 사적으로 유용한 정황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야구단은 현금 흐름이 많고 이벤트 회사, 매점 등 이권사업도 다양해 각 그룹은 엄격하게 경영관리를 하고 있다. 반면 히어로즈는 사실상 이 대표의 개인회사로 운영돼왔다. 이 대표가 최종적으로 사법 처리를 받게 되면 경영권을 지킨다 해도 ‘KBO 이사는 KBO 정관 제3장 제13조 ②항에 따라 금고 이상 형을 받으면 해임(총회 의결을 통해 확정)된다’는 규약이 있어 구단 대표이사를 맡을 수 없다.
주간동아 1052호 (p5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