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0

2016.08.10

특집 | ‘동네북’ 외주기사의 외침

“케이블TV방송 원·하청 간 불공정거래 척결돼야”

인터뷰 | 박재범 희망연대노조 사무국장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8-09 16: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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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TV방송 기사들은 삼성전자서비스 외주 수리기사들과 처지가 매우 비슷하다. 이들은 기술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간접고용노동자로 대기업 마크가 새겨진 근무복을 입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지만 사용자에겐 ‘유령’이나 다름없는 하청노동자들이다. 그것도 모자라 재하도급업체 내지 개인사업자로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업무환경 또한 열악하기 짝이 없다. 주당 60~70시간 노동을 강요받는 것은 물론이고 토요일은 정상근무, 일요일은 당직으로 최소 2년 이상 근무해야 하는 등 한 달에 1~2일 정도만 휴일이 가능하고 명절, 공휴일도 쉬지 않고 일했다. 실적 압박에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결국 오랜 투쟁 끝에 2013년 2월 케이블TV방송 씨앤앰(현 딜라이브)을 시작으로 3월 티브로드, 2014년 3월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순으로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잇달아 노동조합(노조)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케이블TV방송 대기업은 원청업체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했고, 외주업체는 탄압과 함께 재하도급업체의 도급기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며 교섭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노조는 장기 파업과 노숙 농성, 점거 투쟁, 단식에 돌입했고 비록 외주업체에서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돼 고용 안정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4대 보험 가입, 퇴직금과 시간외근무수당 지급, 휴일 근무 축소, 토요일 격주 근무, 일부 복지 개선 등 부조리한 업무 관행에 대해 결코 작지 않은 성과를 이룬 듯했다. 하지만 임단협(임금·단체협약) 이후에도 케이블TV방송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전하다. 원청업체와 외주업체가 노조를 탄압한다는 이유에서다.  

    박 재범 희망연대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풍전등화’라고 표현한다.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세력에 맞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청업체는 외주업체가 바뀔 때마다 그 밑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하기로 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티브로드는 2~3월 경기 시흥시 광명, 전주 센터 교체 과정에서 51명의 노동자를 해고했습니다. LG유플러스도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북부산, 서부산, 남인천, 김해 센터 담당업체를 바꿔 절반 가까이 되는 조합원이 사직하거나 탈퇴, 개인도급으로 전환했고요. 신규 업체가 미리 직원을 뽑았다며 기존 센터 직원을 승계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인데, 먹고살 길이 만무한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개인도급으로 신분을 바꿔 다시금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원청업체가 처음 약속한 고용 승계는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티브로드 측은 “협력업체와 업무위탁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협력업체의 해고 문제는 원청업체인 티브로드와는 관련 없다. 하지만 도의적 책임은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티브로드 관계자는 “협력업체가 수리기사를 해고한 것이지 티브로드가 직접 해고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티브로드를 위해 일하는 수리기사인 만큼 도의적 책임을 지고자 노력하고 있다”면서 “티브로드는 협력업체를 바꿀 경우 기존 수리기사의 고용 승계를 위해 신규 협력업체 측에 그들을 고용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원청업체는 노동자들의 노조 탈퇴를 유도하고자 업무상 불이익을 버젓이 자행하고 있다.  LG유플러스의 경우 2014년 3~4월 개통기사가 받던 평균 수수료는 289만3929원이었지만 2015년 임단협 체결 이후 202만5807만 원으로 80만 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유는 조합원의 일감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외주업체(센터)가 조합원에게 배정하던 일감을 줄이고 비조합원이나 개인도급 기사에게 업무를 더 배정한 것. 박 사무국장은 “이를 두고 현장에서는 ‘말려 죽이기’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사무국장은 “차라리 이럴 바엔 원청업체가 외주업체가 아니 개인노동자에게 1차 하청을 주는 방식이 낫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터넷 사업 초기에는 모든 업체가 센터를 활용해 가입자 수를 늘렸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업계가 파이를 나눠 가진 만큼 고객에게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고객 이탈도 막을 수 있다.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무리한 영업방식은 본사에게도, 외주업체에게도, 노동자에게도 득이 될 게 하나 없다. 어느덧 20년 가까이 된 숙련된 노동자들인 만큼 중간 마진(외주업체)을 없애고 원청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는 구조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조가 결성되면서 원청업체가 시행하던 노동자 대상 기술교육도 일절 사라졌다.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인터넷 케이블뿐 아니라 전기단자를 연결해야 하는 만큼 철저한 기술교육이 필요하지만 원청업체도, 외주업체도 특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박 사무국장은 “설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에 대해 원청업체가 어떤 책임을 질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노조가 없으나 있으나 간접고용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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