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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평론가는 어떤 그림을 살까

‘김종근 컬렉션 이야기’… 피카소, 샤갈, 백남준씨 등 국내외 거장들 작품 21점 전시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미술 평론가는 어떤 그림을 살까

미술 평론가는 어떤 그림을 살까
생전 가야 화랑 근처에도 가지 않던 L씨. 어느 날 거실에 앉아 TV를 시청하다 장식 하나 없이 휑한 벽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기다 멋진 그림 하나 걸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마음은 먹었지만 선뜻 그림 사기가 쉽지 않다. 도대체 어디서 어떤 그림을 사야 한단 말인가. 주위에서는 어느 그림이 좋다더라, 어느 작가가 뜬다더라는 말들을 해주지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화가들의 작품에 대해 시시콜콜 잘 그렸느니, 못 그렸느니 시비를 걸고 가치를 매기는 평론가들 말이야. 그런 사람은 과연 어떤 그림을 살까?’

L씨와 같은 의문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봐야 할 전시회가 열렸다. 이름하여 ‘평론가 K씨의 컬렉션 이야기’(6월20일∼7월4일 인사동 갤러리 사비나). 여기서 K씨는 미술평론가이자 홍익대 미술대학 겸임교수인 김종근씨(45)다.

이 전시에 그는 프랑스 유학시절과 해외여행을 통해 사들인 400여 작품 중 21점을 출품하였다. 피카소, 샤갈, 미로, 로랑생, 레이, 세자르 등 유명작가의 판화작품과 프랑스 자유구상의 멤버였던 레미 블랑샤르의 말년 유화 및 미국 극사실주의 작가 존 케이시어의 선정적인 에로틱 판화 등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여기에는 백남준·홍성담씨 등 국내 작가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고, 세잔 등 유명작가를 발굴한 프랑스의 화상 ‘앙브로아주 볼라르의 초상’(피카소 판화) 같은 귀한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미술 평론가는 어떤 그림을 살까
값나가는 오리지널보다 판화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미술사를 장식하고 있는 거장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를 아는 사람조차 “어디서 빌려온 것 아니냐”고 물어올 정도로 그는 소리 소문 없이 그 많은 작품들을 사 모았다.

“남의 집살이 하는 주제에 ‘웃긴다’는 소리 들을까 봐서요. 82년부터 모으기 시작했으니까 벌써 20년이 되어 가네요. 따로 보관할 곳도 없어 베란다, 침대 밑, 장롱 위마다 그림들이 쌓여 있고 학교 연구실과 처갓집에도 갖다 놨어요. 100호쯤 되는 큰 그림은 아직 가져오지 못한 것도 있고요.”



평론가로 처음 활동한 시절, 신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글을 써주면 가난한 작가들은 그림으로 대신 답례를 했다. 그땐 그게 섭섭했는데, 그렇게 작품이 모이다 보니 그림을 소장해서 곁에 두고 감상한다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란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왜 쇼핑중독증 환자들이 카드 몇 개씩 돌리면서 물건을 사들이잖아요. 제가 꼭 그랬어요. 사고 싶은 그림이 있으면 눈앞에 아른거려 잠도 잘 수가 없었죠. 아무리 돈이 없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고 싶은 그림을 사야 했어요.”

양복을 포함해, 10만 원이 넘어가는 옷을 사본 기억은 없지만 그는 가난한 유학시절에도 몇 백만 원짜리 그림을 사들였다. 아내 볼 면목이 없어 옆집 일본인 친구 집에 맡겨두거나 침대 밑에 숨겨놓았다가 들켜서는 꼼짝없이 집안 청소와 설거지를 도맡아 하며 아내를 달랜 적도 많았다. 교사생활을 하던 아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았을 때도 ‘5배로 불려주겠노라’며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겨(?) 그 돈으로 몽땅 그림을 사들였다. 이제 아내는 ‘이자는 필요없으니 원금이라도 내놓으라’고 하지만 그는 별 대책이 없다.

미술 평론가는 어떤 그림을 살까
김씨는 자신의 컬렉션을 ‘눈물의 컬렉션’이라 했다. 전시장에도 나온 앤디 워홀의 작품 ‘이자벨 아자니’는 지난 겨울 지하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수도관이 터지는 바람에 물에 젖어 왼쪽 귀퉁이가 많이 상한 상태. 작품을 하나씩 건져 난로에 말리면서 그는 엉엉 울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삶의 그릇보다 너무 큰짐을 지고 있구나’ 하는 회한이 몰려왔다. 1년간 담배를 끊고 장기할부로 구입한 브람 보가트의 ‘일요일’, 딸 방에 걸어두었다가 ‘볼썽사납다’는 아내의 면박으로 철수한 존 케이시어의 누드 작품, 너무 비싸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큰 맘 먹고 구입했는데 얼마 뒤 작가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지금은 수천만 원의 가치가 있는 레미 블랑샤르의 작품 등 전시장에 나온 작품마다 사연 없는 것이 없다.

그는 또한 자신을 ‘실패한 컬렉터’라 말한다. 합리적인 컬렉터가 아니라 ‘중독증 환자’에 가까웠고,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거금을 들여 구입한 그림 값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경우도 있다. 남들에게 들려주는 컬렉션의 원칙을 정작 자신은 거의 지키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렇기에 그의 조언은 더 새겨들을 가치가 있어 보인다(상자 기사 참조).

“내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았기에 실패도 했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호주머니에 돈은 없어도 마음은 부자예요. 속으로 생각하는 거죠. ‘난 피카소 그림도 있다’면서…. 앞으론 좀 자제해야지 생각하는데, 며칠 전 어느 화랑에서 본 멧돼지 그림이 자꾸 눈에 밟혀요. 이번 달 카드빚도 다 못 갚았는데….”





주간동아 2001.07.12 292호 (p72~73)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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