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2

2001.07.12

“이젠 남성들이 드시죠”

영국서 남성용 먹는 피임약 임상실험 성공 … 늦어도 5~10년 내 시판 가능할 듯

  • < 전원경/ 자유기고가 > winniejeon@yahoo.co.kr

    입력2005-01-05 16: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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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남성들이 드시죠”
    여성의 피임 부담을 남성과 나누게 된 것은 이번 실험 성공의 큰 보람이다”(중국 상하이 가족계획기술지도연구소 주후이빙 부소장).

    지난해 8월 상하이 가족계획기술지도연구소는 남성용 경구피임약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비슷한 시기 상하이 연구소와 협력관계에 있는 영국 에든버러 대학 데이비드 킨니버그 교수팀도 남성용 경구피임약의 임상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30명의 영국 남성과 36명의 중국 남성에게 새롭게 개발한 경구피임약을 먹여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두었다. 이 약을 하루 1~2알씩 복용한 실험 대상자의 90% 이상이 고환에서 정자를 생산하지 않았고, 복용을 중단하면 2~3개월 이내 정상적으로 정자를 생산했다.

    경구피임약은 더 이상 여성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남성용 경구피임약의 원리는 여성용과 비슷하다.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을 함유한 알약을 복용하면 정자 생산에 필요한 호르몬 분비를 억제한다. 이때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형성도 억제하기 때문에 12주에 한 번씩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는다. 킨니버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남성용 경구피임약의 효능은 매우 뛰어나다. 보통 1mL의 정액에는 2000만~2억 마리의 정자가 들어 있다. 그러나 피임약을 먹으면 정자 개수는 3분의 2 이상 줄어든다. 임상실험에서는 정자가 완전히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학계는 향후 5년 이내 멀리 잡아도 10년 사이에 남성용 경구피임약의 시판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구피임약 외에도 남성용 피임약의 개발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올해 1월 독일 뮌스터 대학교의 에버하르트 니슐라크 박사팀은 한 번 주사로 6주간 피임할 수 있는 남성 피임약을 개발했다. 이들은 남성들에게 테스토스테론과 노르에티스테론 에난테이트(NETE)의 두 가지 호르몬을 주사해서 장기간 피임효과를 지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남성용 피임약이 상용화하기까지는 중요한 변수가 있다. 과연 남성들이 이 약을 복용하느냐의 문제다. 실제 남성용 피임약 개발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이런 심리적 요인 때문에 지연되어 왔다. 1960, 70년대 각각 남성용 피임약 발매 계획이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솔직히 날마다 약을 먹거나 6주마다 주사를 맞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남성용 경구피임약은 여성용과 마찬가지로 두통, 메스꺼움, 체중 증가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성적 욕구와 성적 능력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제약회사의 설득에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번거로움과 부작용, 심리적 압박까지 감수하면서 피임약을 쓰겠다고 나서는 남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최근 영국 BBC방송은 남성 피임약과 관련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는 에든버러·케이프타운·상하이·홍콩 등 세계 4개 도시에 거주하는 2000명의 남성에게 피임약을 복용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조사 결과는 놀랍게도 응답자의 3분의 2가 피임약을 먹겠다고 대답했다. 보수적인 중국인조차 대상자의 반 이상이 남성용 피임약을 먹을 의사가 있다고 대답했다.

    조사 결과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40년 전, 여성들은 경구피임약으로 자신의 몸을 온전히 제어할 수 있는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럼에도 피임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었고(75%의 여성이 피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다) 피임이 실패했을 경우, 그 책임 역시 여성만의 것이었다. 그러나 남성용 피임약의 개발과 상용화는 더 이상 피임이 여성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데 남성과 여성 모두가 동의하고 있음을 뜻한다. 40년 전의 혁명에서 다시 한발자국 나아간 셈이다. 현재 의약계는 비호르몬 남성용 피임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자의 생산을 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자의 기능도 억제하는 것이 목표다. 피임약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여기서는 더 큰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다. 한국 남성이 과연 피임약을 먹겠느냐는 것. “피임약까지 먹으면서 구차하게 관계를 갖느니 차라리 안하겠다”는 말에서 한국 남성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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