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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기획|탈북 그 후

길수 가족이 떠난 뒤 … 남은 자들의 공포

중국 공안 검문·색출 강화 불 보듯 … 은신 탈북자 10만여 명 전전긍긍

  • < 베이징=이종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 ljhzip@donga.com< 베이징=권기태/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 kkt@donga.com

길수 가족이 떠난 뒤 … 남은 자들의 공포

길수 가족이 떠난 뒤 … 남은 자들의 공포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난 6월30일 장길수군(18) 가족이 필리핀을 통해 한국으로 망명한 뒤 중국의 탈북자들에게 ‘공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사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베이징 사무소에서 농성을 벌이다 제3국으로 ‘망명’하기까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빛’이 크면 ‘그림자’도 큰 법. 길수 가족의 망명을 애타게 기다린 관계자에게 장군의 소식은 분명히 ‘빛’이었지만 중국과 북한 당국의 감시를 피해야 하는 중국 내 탈북자들에게는 ‘그늘’일 수밖에 없다.

최대 10만 명으로 추정하는 탈북자들은 현재 중국 내에서 매우 열악한 은신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 당국의 보도통제로 길수 가족의 ‘한국 망명’ 소식을 까마득히 모르는 이들은 이 소식에 접하자 길수 가족을 동정하면서도 당장 “우리는 어떡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길수 가족이 떠난 직후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 은신해 있는 한 탈북자가 불안한 목소리로 취재진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자기 가족 또한 한국 망명을 준비하고 있지만 당장 발등에 불로 떨어진 자신들의 안전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공안들의 탈북자 검문 색출이 더욱 강화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베이징 외곽 김치공장에서 2년째 일해온 탈북자 김모씨(45, 여)는 “공장에서 언제 떠나라고 할지 몰라 잠을 못 이룬다”고 절박하게 말했다. 김씨는 “탈북자라는 사실이 누구한테라도 알려지면 즉시 떠나겠다”고 조선족 사장과 약속을 하고 일자리를 잡은 터였다. “지난 2년간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해왔는데 중국인 동료들이 내가 조선족이 아니라 북한인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눈치챈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단속이 강화되면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워요…”. 김씨는 새파랗게 질린 목소리였다.



톈진(天津)에서 영세기업을 경영하는 조선족 강모씨(55)도 “탈북자들의 처지가 딱하기도 하지만 임금을 적게 줘도 되기 때문에 일부 업체들이 당국의 눈을 피해 이들을 고용해 왔다”며 “만약 중국 정부가 단속을 개시한다면 그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중국은 탈북자들의 고용을 엄금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한 업체에 대해서는 공장 폐쇄 등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또 탈북자를 도와주거나 숨긴 사람에 대해서는 2000~5000위안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베이징의 택시 운전사들의 두세달치 월급에 해당한다.

탈북자를 지원해 온 민간단체들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5년간 베이징시 외곽에서 비밀리에 탈북자 지원 활동을 벌여온 서울 모교회 소속 P씨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서 한국과 일본의 민간단체가 관여했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밝혀져, 앞으로 민간단체의 활동에 제약이 따를 것 같아 걱정이다”고 털어놓았다.

민간지원단체들은 그동안 탈북자들이 많이 은신해 있는 중국 동북지방과 톈진·칭다오(靑島) 등 연해지역 대도시에서 탈북자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비공개리에 탈북자들을 지원해 왔다. 이들에게 임시거처까지 제공하며 선교 활동을 하는 단체도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길수 일가족 탈출사건에 ‘길수 가족 구명운동본부’와 ‘구하자, 북한민중 긴급 네트워크’ 등 한국과 일본의 민간단체가 적극 관여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앞으로 민간지원단체의 중국 내 활동에 제약이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

길수 가족은 지난 6월26일 UNHCR 사무소 진입 당시 일본 기자를 동행했을 뿐 아니라 진입 직후 거의 모든 외신사에 전화로 진입 사실을 알렸다. 베이징 내 외교 관측통들은 “이번 사건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가려온 탈북자 문제에 눈길을 쏠리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탈(脫)중국의 시간을 기다리는 많은 탈북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담을 안긴 것도 사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주간동아 2001.07.12 292호 (p18~18)

< 베이징=이종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 ljhzip@donga.com< 베이징=권기태/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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