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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98% “캐나다 총리 이름이 뭐지?”

평소 ‘촌스러운 나라’ 무시, 자존심에 또 상처… 거의 단일 생활`-`경제圈 ‘애증의 나라’

  • < 황용복/ 밴쿠버 통신원 >

미국인 98% “캐나다 총리 이름이 뭐지?”

미국인 98% “캐나다 총리 이름이 뭐지?”
세계에서 가장 ‘센’ 나라인 미국 바로 북쪽으로 그렇게 세진 않지만 또 하나의 선진국인 캐나다가 붙어 있다. 미국 독립(1776년) 이래 캐나다와 캐나다인은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지닌 채 지금까지 230여 년을 살아왔다.

미국인들의 상당수는 캐나다를 미국의 변방에 있는 촌스러운 나라로, 캐나다인의 기질을 시골 샌님 정도로 여긴다. 많은 캐나다인은 미국인은 기질이 천박하고, 예의 바르지 못하며, 치안상태가 살벌하고, 경쟁이 치열한 미국에서의 삶의 질이 캐나다의 그것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믿는다. 캐나다인들은 그러면서도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캐나다의 낙후성 또한 사실일 것이라 보며 늘 마음 켕겨한다.

캐나다 반미감정 더 굳어져

지난 4월 중순 실시한 미국의 한 설문조사가 그런 캐나다인의 자존심에 다시 한번 상처를 줬다. 미국인의 98%가 현직 캐나다 연방 총리의 이름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조사는 미국의 CBS 방송이 지난 4월21일부터 이틀간 캐나다의 퀘벡시에서 열린 남·북미 34개국 정상회담(Summit of Americas)을 앞두고 미국인들의 미주지역에 대한 인식을 확인하기 위해 실시했다. 장 크레티엥 캐나다 연방 총리가 갓 취임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그는 1993년 이래 지금까지 현직을 지켜왔다. 만약 캐나다인들에게 미국 대통령 이름을 묻는 조사를 실시하면 대다수가 정답을 댈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 캐나다를 무시하거나 미국인이 캐나다에 관해 의외로 무지함이 밝혀진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이번 설문조사가 이 나라 여론을 크게 들쑤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캐나다인 정서의 밑바닥에 깔린 반미감정이 조금 더 굳어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미국이 독립을 위해 영국과 전쟁을 치르던 기간(1775∼1783)에 북미에 와 있던 유럽계(주로 영국계) 주민들이 한 마음으로 반영전선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전체 주민의 약 3분의 1은 독립에 반대하고 영국 왕에 충성을 바친다는 입장이었다.

독립 지지자들은 전쟁 기간과 그 직후 마이너리티인 반대편 사람들을 심하게 박해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독립 반대자들 중 일부는 유럽으로 되돌아갔고, 약 5만 명은 오늘날의 캐나다 동부지역으로 일종의 망명을 했다.

오늘날의 미국 동부와 캐나다의 동부는 당시 모두 영국 식민지였으나 캐나다 동부에는 퀘벡을 중심으로 프랑스계 주민이 주로 살았고, 노바 스코샤 등지에 약간의 영국계 주민들도 살았으나 독립에 무관심한 사람들이었다. 독립전쟁 초기 독립 세력들은 프랑스계 주민과 노바 스코샤 등지의 영국계 주민을 독립 전선에 동참시키기 위해 무력 침공까지 했으나 영국군이 끝까지 지켰고, 주민들도 독립세력에 냉담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전쟁을 끝냈다. 그 결과로 인해 생긴 것이 오늘날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이다.

캐나다의 영국 식민지 당국은 북으로 온 미국 ‘난민’들을 ‘로열리스트’(충성파)라고 하며 후하게 대접했다. 의복과 식량 등을 지원한 것은 물론 무료로 땅을 나눠주었다. 이들 로열리스트가 오늘날 캐나다 주류사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계 주민의 큰 뿌리다.

로열리스트들은 무제한적 자유를 내세우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중우정치의 폐단을 낳으며, 따라서 유럽식 왕정이 국가의 틀이 되어야 한다는 정치관을 가졌다.

로열리스트들은 기본적으로 반미 성향에 보수적이었다. 그들은 유럽 문화를 북미 땅에서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경제부문에서 민간의 무한경쟁을 근간으로 한 미국식 자본주의보다는 정부가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그들의 소신이 오늘날 미국보다 보수적인 사회, 미국에 비해 유럽 문화가 더 많이 온존하며, 무제한적 시장경제보다는 사회주의적 성향이 많이 지배하는 나라인 캐나다의 바탕이 되었다.

캐나다는 미국이 독립한 뒤에도 약 90년 더 영국의 식민지 상태로 남아 있다가 1867년 자치령으로 사실상 독립했지만, 영국계 조상들의 이런 기질은 그 뒤로도 이어진다. 미국은 독립전쟁 당시에는 물론 그 뒤로도 전면침공(1812년)을 비롯해 여러 차례 캐나다를 병합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영국은 캐나다를 직할식민지 상태로 유지할 경우 신생 미국이 캐나다를 침공할 명분을 제공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영국군을 상주시킬 경우 방위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캐나다의 독립을 기꺼이 인정했다. 그렇다고 영국이 캐나다를 완전히 팽개치고 철수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기는 아깝기도 하거니와 ‘고아’가 된 캐나다가 스스로 허물어져 미국에 병합할 가능성이 있고, 그 결과는 신생 미국의 힘이 더욱 커져 당시까지 여전히 세계 최강이던 대영제국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본 것이다.

이런 점을 다 감안해 당시 영국은 캐나다에 대해 대영제국(British Empire) 내 자치령(Dominion)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실체를 인정했다. 자치령이 된 뒤로도 국제적으로 캐나다의 지위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독립국과는 거리가 멀어 외교·군사 등 여러 면에서 영국에 의존했으나 한 가지 한 가지씩 단계적으로 독립성을 높여 지금 캐나다는 영국 왕이 형식적인 국가원수인 점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완전한 독립국이다.

미국은 캐나다가 자치령이 된 뒤에도 오랫동안 그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영국의 앞잡이라고 생각해 경계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캐나다가 사실상 독립국이자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을 이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국이 캐나다에 대해 군사적으로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와 문화 등의 면에서 미국은 캐나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미국 또는 미국인이 그런 의도가 없다 해도 인구 2억5000만에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6000여km의 긴 국경을 함께하는 인구 3000만의 캐나다에 대단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날마다 엄청난 양의 양국 사람과 물자가 국경을 넘나들 뿐 아니라 TV와 인터넷, 잡지와 서적 등을 통해 미국의 영향은 민감하게 캐나다에 나타난다. 두 나라가 모두 영어권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미국의 영향은 이 나라에서 절대적이다. 지난 97년 기준으로 캐나다 전체 수출의 80.8%가 미국행이었고, 전체 수입의 76.1%가 미제였다. 오타와의 지도자들은 이 때문에 워싱턴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타계한 전 캐나다 연방 총리 피엘 트뤼도는 재임중이던 1969년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옆에 사는 것은 어찌 보면 코끼리 옆에서 잠자는 것과 같다. 코끼리가 아무리 상냥하고 온순하다 하더라도 뒤척이거나 소리를 낼 때마다 영향을 받는다. ”

오직 미국과만 국경을 공유하고 있고, 미국 이외 나라의 외침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라 캐나다에서 ‘민족주의’(nationalism)라는 말은 미국에게서 독립성과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는 정치이념을 가리키는 경우가 보통이다. 캐나다에서의 민족주의는 로열리스트들의 정치성향과 맥을 같이한다. 캐나다 독립 후 이 나라 연방 총리가 얼마나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느냐에 따라 오타와와 워싱턴의 사이에 온난기류와 한랭기류가 번갈아 감돌았다.

캐나다인의 상당수가 반미감정을 공유하였음에도 이같은 미국의 영향 때문에 대다수 캐나다인의 일상은 대단히 친미적인 모습을 보인다. 많은 캐나다인은 아침에 미국 브랜드의 차를 타고 미국 자본이 지배하는 회사에 출근했다가, 점심 때는 미국 브랜드의 패스트 푸드로 식사를 하고, 퇴근길에 미국계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 뒤, 미국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잠든다.



주간동아 2001.05.17 284호 (p44~45)

< 황용복/ 밴쿠버 통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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