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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는 순간 노예가 됐다”

조선족 밀입국자 P씨가 겪은 악몽… 감금 - 폭행 - 강간당해도 하소연할 곳 없어

  •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

“배 타는 순간 노예가 됐다”

“배 타는 순간 노예가 됐다”
한국에 몰래 들어오려는 외국인에게 밀입국 알선조직은 ‘폭군’처럼 군림한다. 밀입국자들은 알선책의 배에 올라 바다에 떠 있는 동안 그들의 생명과 재산 모두를 알선책에게 일임하는 수밖에 없다. 밀입국 알선조직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밀입국자들을 수시로 감금-폭행-강간한다. 조선족 피해자 P씨(46)는 알선책에 의해 왼쪽 눈을 잃었다. 그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밀입국 알선조직의 ‘끔찍한 인권 유린’ 현장을 생생히 전했다.

랴오닝성의 한 도시에 살던 P씨가 한국으로 가는 밀입국선에 승선한 것은 지난 2월24일. 그는 월 800위안을 버는 중산층 노동자였지만 ‘한국 바람’에 휩쓸린 그의 아내는 “더 많은 돈을 벌어오겠다”며 지난 93년 밀입국 알선책과 함께 한국으로 갔다. 그러나 그녀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향과 연락이 끊긴 상태다. 이번 여행은 아내를 찾기 위해 P씨가 선택한 ‘도박’이었다.

아내 찾기 위해 나선 길… 쇠파이프에 맞아 왼쪽 눈 실명

P씨가 한국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역시 밀입국 알선책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랴오닝성의 웬만한 음식점에서는 쉽게 밀입국 알선책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현지의 유명 폭력단체 일원은 P씨에게 3000위안(한화 540만원 가량)을 수수료로 요구했다. P씨는 자신을 무사히 한국에 데려다 주면 집에 연락해 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밀항 과정에서 끔찍한 꼴을 당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후불 방식’이라면 안심이라는 판단이 서서 밀입국선을 탔다.

배의 운항을 맡은 알선팀은 중국인들로 6명에 지나지 않았고, 이들에게 몸을 맡긴 밀입국자들은 모두 조선족으로 남자가 56명, 여자가 40여 명이었다. 항해의 초반부는 순탄했다.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밥도 잘 주고요. 밀입국자의 수가 더 많아 일이 잘못되면 항의도 먹히겠다 싶었습니다”(P씨). 배가 중국을 출항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밀입국자들은 공해상에서 다른 배로 갈아탔다. 이때부터 상황이 돌변했다.



머리를 짧게 깎고 온몸에 문신을 한 남자 10여 명이 몽둥이와 칼을 휘둘렀다. 새로운 알선팀에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섞여 있었다. “배의 맨 아래 바닥으로 1백여 명이 짐짝처럼 쓸려 들어갔습니다. 몸을 돌리기도 힘든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밥도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P씨). 배 안은 공포의 도가니였다. 알선팀은 ‘말을 했다’는 이유로 P씨를 사정없이 폭행했다. P씨는 이들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머리와 얼굴을 수십여 차례 맞았다. 이 때문에 P씨는 왼쪽 눈이 멀고, 뇌출혈상태에 빠졌다. 대다수 사람들이 P씨처럼 맞았다.

배를 갈아탄 지 사흘이 지난 밤, 밀입국선은 장소를 알 수 없는 한국 서해의 한 포구에 닿았다. 알선책들은 밀입국자 100여 명을 덤프 트럭 화물칸에 모두 태운 뒤 산 속 은신처로 데려갔다. 거기서 밀입국자들은 한 사람씩 중국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으니 알선책들에게 돈을 부치라”는 말을 했다. 밀입국자들의 등 뒤에선 알선책들이 칼을 겨누고 있었다. P씨는 “입금한 것을 확인할 때까지 감금은 계속되었다. 끝없는 폭행에 수많은 밀입국자들이 쓰러졌다”고 말했다. 알선책들은 여성 밀입국자 중 나이가 젊은 10명을 한 명씩 불러 집단 성폭행했다. “딱 죽고 싶었지요. 나도 그랬는데 여자들 심정이야 오죽했겠어요”(P씨).

알선책들은 입금 사실을 모두 확인한 뒤 P씨를 경기도 성남시 부근 야산에 버리고 갔다. 결과적으로 P씨를 한국에 데려다 주겠다는 알선조직의 약속은 어쨌든 지킨 셈이었다. 그러나 P씨는 이미 ‘시체’가 되어 있었다. 이틀간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는 한 마을에서 우연히 조선족 여인을 만났다. “낯익은 말투를 들으니 눈물이 막 나데요. 아주머니가 소개한 조선족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습니다”(P씨). 그를 처음 맞았던 인권단체 관계자는 “얼굴과 머리가 여러 군데 으깨어진 상황이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석 달째 인권단체의 보호를 받는 P씨는 아직까지 일할 수 없는 상태다. 그는 “아내도, 돈도, 직장도, 한쪽 눈도, 건강도 잃었다. 알선책들이 다 가져갔다”고 말했다.

P씨처럼 밀입국 알선책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은 수없이 많다고 한다. 조선족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최황규 목사는 “인권단체가 다롄 현지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도시 조선족 가정 중 60%가 한국에 밀입국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밀입국 알선책들에게 사기-폭행 등의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국의 인권단체들이 보호하는 조선족 여인들 중 상당수는 알선책에게 피해를 본 뒤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병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행 재외동포법은 중국 및 러시아 교포의 자유왕래를 금한다. 국내 노동시장 보호와 사회혼란 방지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지만, 이런 조치가 한편에선 밀입국 알선조직을 살찌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알선단체에게 피해 본 사람을 찾기 위해 그 가족이 다시 알선단체에 몸을 의탁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영토 안에서 국제 범죄조직들이 한 번에 1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끌고다니며 노예처럼 학대해도 전혀 제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피해자가 외국인 신분이라 해도 이는 그냥 보아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게 인권단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최황규 목사는 “우리는 우리의 땅과 바다가 비인륜적 인권유린의 무대가 되었다는 사실에 마땅히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1.05.17 284호 (p22~23)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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