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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노는 축제, 어디 없소”

대부분 지역축제 흥청망청 천편일률 … 문화게릴라들 “축제문화 바꿔바꿔”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제대로 노는 축제, 어디 없소”

“제대로 노는 축제, 어디 없소”
문화관광부의 ‘99년 지역문화행사현황’을 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역축제는 793개로 96년 412개에 비하면 거의 두 배나 증가했다. 한국에서 이처럼 축제가 많아진 것은 불과 10년 안팎의 일로, 축제의 절반 가량이 90년대에 새로 시작된 것이다. 사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년 10여개의 축제가 새로 생기는 데 그쳤으나 90년대 중반부터 증가 속도에 탄력이 붙더니 94년 31개, 95년 36개, 96년 62개, 97~99년까지 3년 동안 자그만치 381개나 늘어났다.

이렇게 늘어난 축제의 목적은 대부분 주민화합에 있다. 그러나 화합이라는 애매한 목적 아래 시작된 축제들은 지역 노래자랑 수준의 놀자판이거나 상품판매행사로 전락했다. 내용 없이 예산만 낭비하는 축제는 화합은커녕 오히려 지역주민들을 짜증나게 만든다. 경남지역 축제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축제 예산의 대부분이 연예인 동원에 소요된다. 빈자리는 전국의 축제만 찾아다니는 전문꾼들의 포장마차로 채워져 술판이 되고, 토산품 판매라는 구실로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게 축제다. 한 번 그런 경험을 하면 절대로 이 지역에 다시 오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빈약한 지역축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2001년은 한국 방문의 해이자 지역문화의 해다. 올 1년 동안 수백여 개의 축제가 열릴 것이고 월드컵축구대회가 열리는 내년은 더 많은 행사가 준비돼 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내용의 백화점식 축제가 되풀이되고 있다.

“제대로 노는 축제, 어디 없소”
이처럼 방향을 찾지 못하고 양적 팽창만 거듭해온 우리의 축제문화에 대해 ‘노는 예술, 즐기는 축제’라는 대안을 제시하며 등장한 문화게릴라들이 있다. 김종휘 안이영노 이강명 강원재 조중현 등 5명이 주축으로 구성된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프로젝트 기획단 ‘체인지21’은 지난 2년 동안 축제기획과 준비, 행사를 치르는 전 과정을 담아 ‘놀자 깨자 비틀자’(해냄 펴냄)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먼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펼쳐진 ‘새천년청소년문화축제-유스페스티벌 99’를 떠올려 보자. 이 행사는 애초 문화관광부 직속 ‘문화비전 2000추진위원회’의 ‘평화를 위한 세계 청년문화축제 소위원회’에서 출발했으나, 20~30대 젊은 기획자들이 참여하면서 정부는 예산만 지원하고 민간이 기획과 진행을 맡는 체제로 바뀌었다. 이 축제에 모든 매스컴의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관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실천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체인지21팀은 여세를 몰아 지난해 ‘아시아야 같이 웃자`-유스페스티벌2000’을 치러냈다. 이 보고서는 그 과정에서 벌어진 온갖 해프닝과 좌충우돌 상황을 가감 없이 소개함으로써 스스로 ‘축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김종휘씨는 한국사회에서 축제가 자리잡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일하자’와 ‘공부하자’를 인생의 최고 가치로 여기고 ‘논다는 것’을 죄악시했다는 데서 찾는다. “어른들은 젊어서 제대로 놀아볼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술 마시고 남녀간에 비비는 것 말고는 놀이문화라 할 만한 다양한 유산을 축적하지 못했다. 반면 10대는 언뜻 대단히 풍요로운 놀이문화를 즐기는 듯 보이지만, 대부분이 TV에서 베낀 문화일 뿐 스스로 창조하고 향유하는 체험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듯 한쪽은 모르니까 놀기를 두려워하고, 또 한쪽은 엉터리로 막 놀고 있는 꼴이다.”

그는 축제란 기념식도 아니고 대통령 행차도 아니며, 눈치 보지 않고 신명나게 놀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체인지21팀은 ‘유스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청소년을 위한, 청년들에 의한 행사’로 컨셉트를 잡고 대학생과 아마추어,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여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청년문화예술 작품과 활동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잘 놀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까지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우선 정부가 행사 전액을 지원하는 축제의 경우 공무원의 늑장 행정이 민간 기획자들을 애태웠다. 심지어 축제 개막 한 달을 남기고도 장관의 사인이 떨어지지 않아 예산이 집행되지 않았다. 그 사이 장관이 바뀌고 담당 실국장, 사무관까지 줄줄이 바뀌면서 사업은 처음부터 재검토되어야 했다. 축제는 8월12일 열려야 하는데 장관 사인은 7월14일에 떨어지고, 첫 예산집행은 7월21일에야 나왔다(그것도 원래 예산의 60%만).

이들은 두 차례 축제 집행경험을 바탕으로 ‘놀려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10가지’를 정리했다. 다음은 축제를 제대로 치르려면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점들이다.

● `문화관광부 장관:장관은 문화예술 경영인이 맡아야 한다. 제일 좋은 것은 문화부 공무원 사회에서 그런 장관이 나오는 것이다. 민의 역할이 커졌다 해도 각종 기금은 여전히 문화부 손에 있다.

● `문화관광부 공무원:문화행정 전문가여야 한다. 이들은 민간의 자생성과 창의성을 고무하고 이를 시스템과 매뉴얼로 정착시킬 줄 아는 문화행정을 펼쳐야 한다.

● `주의! 대작주의 풍토:국민 세금으로 대작만 하려는 근성을 버려야 문화가 다양해진다. 동네 축제, 주민 예술, 소수 문화처럼 소액다건으로 문화를 살려야 그 중에서 대작도 나온다.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소통: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하드웨어는 정부 재단 기업이 맡고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는 민간이 마을회관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나랏돈과 공공기금 문턱 없애기:중앙정부에서 또 지방자치단체에서 돈 받는데 왜 꼭 재단법인이어야 하는가. 결국 돈 받고 뚝딱 재단 만드는 ‘선수’들에게만 좋은 일 하는 거다.

● `유식한 민간인 되기:나랏돈 받아 공공의 목적에 맞게 문화사업을 펼치려면 아이디어와 의지만 갖고는 부족하다. 관련 법률, 회계, 행정 등에 대해 기본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 `문화예술경영:‘문화의 시대네, 민관네트워크네’ 하면서 온갖 문화공간과 사업들이 펼쳐지는데 전문인력은 하나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대학에 관련학과를 신설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안이영노씨는 열심히 놀려고 애썼던 90년대를 돌아보면 “놀려는 것이야말로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제 무조건 놀 게 아니라 놀이에 대한 깊은 공부가 필요한 때라는 반성도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축제가 열릴 때마다 자료를 모으고 기록을 남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정보는 공공축제를 만들고자 하는 자치단체와 문화기획자들에게 아낌없이 공유돼야 한다. ‘유스페스티벌’ 보고서 ‘놀자 깨자 비틀자’는 그 시작일 뿐이다.

당장 ‘2001 지역문화의 해’ 홈페이지(http://www.region2001.org)에 들어가 보면 흥청망청 예산만 낭비하는 지역축제에 대한 비판의 글이 가득하다. 반성 없는 한탕주의 축제가 계속되는 한 축제무용론은 더욱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주간동아 2001.03.08 274호 (p66~67)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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